고고학자(옛날이야기) [602580] · MS 2015 · 쪽지

2023-09-26 2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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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수능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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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강은 이미 그 시절에도 꽤 보급이 많이 돼있었다.

대부분 PMP라는 기기에 담아서 보거나 집에서 PC로 접속해서 봤다.

그 당시는 대성마이맥은 매우 듣보잡인강회사였다

메가스터디, 비타에듀, 이투스, 스카이에듀가 함께 장악하고 있었고

다만 티치미란 사이트의 경우 수리영역 한석원, 외국어영역 김찬휘의 명성으로 매니아층이 많았다.


2. 수리영역 인강시장은 비타에듀 삽자루, 티치미 한석원, 메가스터디 박승동이 3분하여 장악중이었는데 제가 수능치는 해 7월초에 갑자기 스카이에듀에서 메가스터디로 이적한 신승범이 떠오르는 샛별이 되기 시작


3. 그때도 의치한약수는 높았다.

그런데 의치한약수란 용어보단 의약학계열이라는 용어를 입시판에서 더 많이 썼다.


4. 의대가 27개밖에 없었고, 치대가 4개밖에 없었고, 한의대가 11개밖에 없었고, 약대가 20개밖에 없었다.


5. 메디컬별 마지노선은 치대>의대>=한의대>>>약대>수의대였다.


6. 같은 학교 내에 의대와 한의대가 같이 있는 경우 한의대>의대였다.

동국한>동국의, 원광한>원광의


7. 같은 학교 내에 의대와 치대가 같이 있는 경우 치대>의대였다. 예외가 연세대였는데 의대가 더 높은해도 있었고 치대가 더 높은 해도 있었다.

단치>단의, 원광치>원광의


8. 삼룡의와 동급인 치대와 한의대가 존재했다.


9. 점수 커트라인과는 별개로 의치한 합격하고도 서울대 공대가는 사람이 꽤 있었다.


10. 교대가 많이 높았다.

서울교대는 연고대 중위학과급이었고 그 외 교대가 서성한~중경외시에 걸쳐있었는데 당시 교대 정시가 내신반영이 꽤 높았던거 감안하면 반 티어 정도 더 위였던 위상


11. 지방국립대 사범대의 수교과, 국교과, 영교과도 꽤 많은 인기가 있었다.


12. 군외모집으로 뽑던 경찰대가 문과 기준으로 연고대 중상위과 이상이었다. 이과애들도 지원가능했는데 심지어 의치한버리고 거기가는애들도 있었다.


13. 메디컬 문과 교차지원은 치대는 일절 불허였고 의대 한의대 약대가 몇군데 있었다.

지금과는 달리 문과생들은 지방의대 지방한의대 교차보다 연대 경영, 고대 법학같은 연고대 최상위과를 좀 더 선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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