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니즘(정도환) [376046] · MS 2011 · 쪽지

2015-08-17 23:59:15
조회수 4,169

벌써 8월도 끝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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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환입니다.


이제 말복도 지났고, 입추가 지났다고 하네요.
아직까지는 날씨가 꽤 덥지만.. 이제 곧 쌀쌀해지고 또 다시 수능의 계절은 돌아오겠죠?

항상 저는 이맘때 되면 씁쓸합니다. 
제 고3때 기억과, 재수의 기억이 나면서 정말 치열하게 살았던 과거의 경험들이 
한편으로는 그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련하기도 하구요.

항상 그 기억이 저를 계속 채찍질하고 대학생으로서,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또 일하는 사람으로서 저를 계속 앞으로 달려가게 합니다. 현재 제 삶이 만족스럽기에 그런걸 수도 있고, 과거를 미화하는 경향이 있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좋은 기억이었던 것 같아요, 그 시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통과의례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아프리카 부족에서는 기억은 잘 안나지만 그런 것들 있잖아요.
뭐 달려오는 코뿔소의 코를 잡고 덤블링을 성공하면 성인으로 인정해주고 그런거 (이게 진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문맥상으로 다들 이해하시죠?)

우리나라의 통과의례는 수능, 넓게는 대학입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수능이라는 제도를 모든 국민들이 통과해야하는 것은 아니고, 꼭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좋은 삶을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예외적인 경우고..

그렇기에 많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를 한번씩은 꼭 거쳐가고, 통과의례를 뛰어넘기 위해 인생에서 처음으로 그 중후한 압박을 느끼며 1년 혹은 2년, 그 이상을 버티고 있는것이 아닐까요.

심지어는 수능 시험날 영어듣기가 시행되는 시간에는 비행기 이착륙도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귀가 따갑도록 들어서 아마 사실처럼 인식되는 걸수도 있죠.. 이런 말이 사실처럼 인식되는 것 자체가 그만큼 수능이란 건 온 국민에게 중요한 사실, 중요한 통과의례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 아닐까요.

마음이 아픕니다. 

자신의 최선을 다하고, 그 최선을 다한 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지만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모든 사람의 욕구는 유사하고, 이 때문에 사람들이 원하는 무언가는 희소할 수밖에 없죠. 이 때문에 모두가 그 희소한 것을 얻지 못해 불행한 걸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결과만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너가 어떤 노력을 해도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누가 알아주냐.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포항공대, 카이스트, 의대, 치대, 한의대 못가면 누가 알아주냐.

과정은 무시당하고 결과로서 보여줘야 한다.
저도 수험생일때는 이 말이 맞는 줄 알았는데.. 학생들 가르치고 저도 몇년 더 살아보니

옛날하고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비록 그 시점에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얻어낸 학생들은 꼭 명문대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의 자리에서 또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고, 그렇게 반복되면 결국은 처음에 입시를 성공한 학생들보다 뛰어나지는 경우도 꽤 있더라구요.

사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입시 합격을 위해 글을 쓰고, 가르치는 사람이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것 자체가 모순일 수 있겠죠. 제 역할은 학생을 대학에 합격 시키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학생을 가르칠 때, 절대로 '특정 대학'에 합격 시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학생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학생이 갈 수 있는 최선의 학교에 합격 시키려고 합니다.

어떤 학생의 능력이 100이라면 그 학생은 100의 능력을 모두 발휘해 자신이 갈 수 있는 최선의 학교에 입학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이 그렇지 못하죠. 그렇기에 반수, 재수하고 그 또한 실패하기도 하구요.

반면 어떤 학생은 능력이 70이지만 입시 생활을 치열하게 해 그 학생의 능력에서 갈 수 있는 제일 좋은 대학을 합격했습니다. 이 학생은 그 경험을 통해 대학 이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더욱 가치있는 삶을 살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여러분들이 치열하게 마지막을 공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후회가 남지않게요. 저는 위에서 재수시절의 제 모습이 좋았다고 하지만..
하루라도 그 때 그 생활만큼 살아보라면 절대 못할 것 같습니다.. 정말 토나와요.
근데 그 상황이 토가 나오고 괴로운 상황이라서가 아니라, 제가 그만큼 저 스스로를 압박하고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에 괴로워서 그렇거든요.

말이 길어졌는데..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네요.

여러분들의 능력이 모두 다 다릅니다. 다만, 치열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능력으로 갈 수 있는 최선의 대학을 입학하시길 바랍니다. 꼭 그 학교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명문대일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이 갈 수 있었던 최선의 대학'에 합격 하는 것은 굉장히 보람찬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주절주절.. 의식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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