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가망없나 [1225447] · MS 2023 (수정됨) · 쪽지

2023-05-30 23: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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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짐승'의 어원. 통사적 합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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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짐승'을 '날고기'처럼 접두사 '날-'이 붙은 줄 아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아니라 합성어다. '생고기'를 뜻하는 '날고기'와 달리 '생짐승'을 뜻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날-'을 이제 '날다'의 어간 '날-'로 볼 것이냐 아니면 관형형 '날'로 볼 것이냐는 선뜻 잘 구별이 안 갈 수 있다. 그러나 국국원은 어원 정보를 토대로 통사적 합성어로 본다. 이게 파생어냐 합성어냐 구별하는 문제는 나와도, 통사적 합성어냐 아니면 비통사적 합성어냐를 명확히 구별하라는 문제는 안 나올 것 같지만 통사적 합성어로 보는 게 더 합리적이고 바람직하다. 


혹자는 '길짐승'과의 관계 때문에 '날' 역시 관형형으로 보아야 형평성에 맞아 통사적 합성어라고 하거나 아니면 발음이 [날찜승]이므로 표준발음법의 규정에 따라 관형형 어미 '-ㄹ'로 추론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날짐승'이 왜 통사적 합성어인지 명확히 알려주진 않는다. 문법적인 근거를 알려면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날짐승'은 'ᄂᆞᇙ쥬ᇰᄉᆡᇰ(15C)'으로 소급되는데 '날다'의 고형은 'ᄂᆞᆯ다'였고 'ᄂᆞᆯ'만 쓰였다면 이건 'ᄂᆞᆯ다(날다)'의 어간일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 여린히읗(ᅙ)이 존재한다. 여린히읗은 그 쓰임이 매우 제한적이긴 하지만 성문 파열음을 나타내거나, 뒤의 평음을 경음화하거나, 뒤에 ㄴ이나 ㄹ이 오면 유음화를 막아주는 절음의 역할을 했는데 이때 여린히읗이 붙은 형태는 관형어의 기능을 했다. 이영보래라고도 한다. 여린히읗을 '관형격 조사'로 보기도 하는데 결론이 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으니 경음을 나타내는 표지나 절음의 표지를 나타내고 이때 그 부분은 관형어라는 것만 알면 된다. 여린히읗이 쓰인 환경은 크게 


1) 관형사형 어미 ‘-ㄹ’ 뒤

2) 받침소리 없는 한자어나 고유어의 받침 ‘ㄹ’ 뒤로 나뉜다. 


날짐승의 고형과 1)의 조건을 보면 '날짐승'의 '날'의 옛형태는 관형사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여린히읗을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여린히읗이 쓰일 때 앞말이 ㄹ이라면 이 ㄹ은 관형사형 어미거나 어간이나 명사의 종성 ㄹ일 것이므로 'ᄂᆞᇙ'의 'ㄹ'은 관형형 어미로 보아야 한다. 여기서 여린히읗이 탈락하고 근대 후기에 일어난 아래아의 2차 소실로 ㅏ로 바뀌었는데 이는 19세기의 표기와 일치한다. 즉 통시적으로 보면 '날'의 'ㄹ'이 어간의 ㄹ이 아니라 관형형 어미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날짐승'은 어간+명사의 비통사적 합성어가 아니라 '용언의 관형형+명사'의 꼴인 통사적 합성어라 할 수 있다.


어휘사는 "ᄂᆞᇙ쥬ᇰᄉᆡᇰ→  ᄂᆞᆯ즘ᄉᆡᆼ(여린히읗과 옛이응 소실) → 날즘ᄉᆡᆼ(아래아 음가소실) → 날짐승(전설모음화&아래아 음가소실)"로 정리된다. 


참고로 '짐승'은 옛형태에서 보이듯 '중생(衆生)'에서 온 말이지만 너무나 형태가 원형과 멀어져 현재는 고유어로 처리된다.  짐승이 원래는 사람과 동물을 둘 다 뜻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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