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가망없나 [1225447] · MS 2023 (수정됨) · 쪽지

2023-05-22 22: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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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이'의 어원은 '불 켠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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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이'의 사전 정의가 '불을 켜서 불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갑자기 어떠한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모양.'이라는 점에서 바로 '켜다'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음. '켜다'는 원래 'ᅘᅧ다'로 쓰였는데 원각(15세기 후반) 이후로 각자병서가 폐지되면서 'ᅘᅧ다'도 다른 어휘처럼 자연스레 '혀다'로 쓰이게 됨. 'ᅘᅧ다'는 '당기다'의 의미였는데 '당겨서 불을 일으킨다'와 같이 의미가 확장됐음. 아무튼 근대 국어 시기 ㅎ이 ㅋ이나 ㅌ 등 유기음으로 변하거나 유성음화를 거쳐 ㅇ으로 변하기도 했는데 얘는 전자여서 '혀다'는 '켜다'가 됐음. 


참고로 'ㆅ'은 'ㅎ'의 된소리인데 이걸 증명하는게 근대국어의 'ᄻ'임. 'ㆅ'이었다가 근대국어에 'ᄻ'으로 쓰인 새끼들은 'ㅆ'으로 변화했고 걍 ㅎ으로 쓰인 놈들은 유기음으로 변했음. '불현듯이'란 표현이 정확히 언제 등장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불켠듯이'가 아니라 '불현듯이'란 점에서 대략 17, 18세기쯤에 조어돼서 굳어진 단어라 추측할 수 있음. 실제로 엄씨효문행록나 국조고사 같은 18세기 문헌에 '블현다시' 같은 표현이 등장함


불을 켜서 갑자기 밝아지듯 '갑자기'의 의미에 중점을 두면서 '갑자기'를 뜻하는 관용구였다가 하나의 단어로 굳어졌다고 볼 수 있음. 따라서 '불(을) 현 듯이'의 구조가 어휘화를 거쳐 '불현듯이'가 되고 현대국어에선 하나의 부사로 쓰이는 거임. '부리나케'랑 '부랴부랴', '불현듯' 모두 불(火)과 연관성 있는 관용구에서 하나의 어휘의 지위를 얻었다는 게 재밌음


"요즘에 불을 켜는 것은 전기 스위치를 올리는 행위가 일반적이지만, 옛날이라면 부싯돌을 당겨 불을 일으키는 것을 연상해야 할 것입니 다. 근래에도 성냥을 당기거나 그어서 불을 일으키는 경우에 ‘성냥을 켜다’라고 하는 경우는 중세국어 ‘ᅘᅧ다[引]’의 의미에 잘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김무림



참고 문헌: ‘불현듯이, 썰물, 켜다’의 어원(김무림)



서정범 교수처럼 이상한 대응표를 쓰기보다는 정말 역사비교언어학의 원리에 입각하여 어원을 연구하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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