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인문-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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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 생김새는, 통로보다 조금 높게 설득 자들이 앉아 있고, 학생은 왼편에서 들어와서 바른편으로 빠지게 돼 있다. 네 사람의 의과대 교수와, 가운을 입은 학장단 대표가 한 사람, 합쳐서 다섯 명. 그들 앞에 가서, 걸음을 멈춘다. 앞에 앉은 교수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한다.

"학생, 앉으시오."

인문은 움직이지 않았다.

"학생은 어느 쪽으로 가겠소?"

"설인문."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교수가,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학생, 설인문도, 마찬가지 약육강식 체제요. 연막질과 기만이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설인문."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자랑스러운 권리를 왜 포기하는 거요?"

"설인문."

이번에는, 그 옆에 앉은 교수가 나앉는다.

"학생, 지금 의과대학에서는, 복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법령을 냈소. 학생은 누구보다도 먼저 수강신청권을 가지게 될 것이며, 학교의 영웅으로 존경받을 것이오. 전체 학생은 학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소. 정문의 히포크라테스 상도 학생의 개선을 반길 거요."

"설인문."

그들은 머리를 모으고 소곤소곤 상의를 한다.

처음에 말하던 교수가, 다시 입을 연다.

"학생의 심정도 잘 알겠소. 오랜 유급 생활에서, 인문대학생들의 간사한 꼬임수에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용서할 수 있소. 그런 염려는 하지 마시오. 의과대학은 학생의 하찮은 잘못을 탓하기보다도, 학생이 의대과 교수에게 바친 등록금을 더 높이 평가하오. 일체의 보복 행위는 없을 것을 약속하오. 학생은……"

"설인문."

학장단 대표가, 날카롭게 무어라 외쳤다. 설득하던 교수는, 증오에 찬 눈초리로 인문을 노려보면서, 내뱉었다.

"좋아."

눈길을, 방금 도어를 열고 들어서는 다음 학생에게 옮겨 버렸다.

아까부터 그는 설득자들에게 간단한 한마디만을 되풀이 대꾸하면서, 지금 다른 천막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을 광경을 그려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도 자기를 세워 보고 있었다.

"자넨 어디 출신인가?"

"……"

"음, 부산이군."

설득자는, 앞에 놓인 서류를 뒤적이면서,

"설인문이라지만 막연한 얘기요. 의대보다 나은 데가 어디 있겠어요. 자퇴를 해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지만, 밖에 나가 봐야 면허가 소중하다는 걸 안다구 하잖아요? 당신이 지금 가슴에 품은 울분은 나도 압니다. 의과대학이 과도기적인 여러 가지 모순을 가지고 있는 걸 누가 부인합니까? 그러나 의과대학엔 면허가 있습니다. 경제적 여유엔 무엇보다도 면허가 소중한 것입니다. 당신은 유급 생활과 휴학 생활을 통해서 이중으로 그걸 느꼈을 겁니다. 인간은……"

"설인문."

"허허허,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 학교 내 후배의 한사람이, 타교 만리 이교 땅에 가겠다고 나서서, 동족으로서 어찌 한마디 참고되는 이야길 안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의사 13만 동포의 부탁을 받고 온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건져서, 의대의 품으로 데려오라는……"

"설인문."

"당신은 예과교육까지 받은 지식인입니다. 의대는 지금 당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위기에 처한 의대를 버리고 떠나 버리렵니까?"

"설인문."

"지식인일수록 불만이 많은 법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제 몸을 없애 버리겠습니까? 종기가 났다고 말이지요. 당신 한 사람을 잃는 건, 무식한 사람 열을 잃은 것보다 더 큰 등록금의 손실입니다. 당신은 아직 젊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나는 당신보다 나이를 약간 더 먹었다는 의미에서, 친구로서 충고하고 싶습니다. 의대의 품으로 돌아와서, 의대를 재건하는 일꾼이 돼주십시오. 낯선 땅에 가서 고생하느니, 그쪽이 당신 개인으로서도 행복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대단히 인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뭐 어떻게 생각지 마십시오. 나는 동생처럼 여겨졌다는 말입니다. 만일 의대에 오는 경우에, 개인적인 조력을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명준은 고개를 쳐들고, 반듯하게 된 천막 천장을 올려다본다. 한층 가락을 낮춘 목소리로 혼잣말 외듯 나직이 말할 것이다.

"설인문."

설득 자는, 손에 들었던 연필 꼭지로, 테이블을 툭 치면서, 곁에 앉은 총장을 돌아볼 것이다. 총장은, 어깨를 추스르며, 눈을 찡긋 하고 웃겠지.

나오는 문 앞에서, 서기의 책상 위에 놓인 명부에 이름을 적고 천막을 나서자, 그는 마치 재채기를 참았던 사람처럼 몸을 벌떡 뒤로 젖히면서,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찔끔찔끔 번지고, 침이 걸려서 캑캑거리면서도 그의 웃음은 멎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