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원글싸줘 [1159823] · MS 2022 (수정됨) · 쪽지

2023-02-19 2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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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헹가래'의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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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헹가래'의 어원을 알아보자. 외래어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헹가래'는 순우리말인데 ‘헹'과 ‘가래'로 분석될 수 있다. 여기서 ‘가래'은 杴 즉 흙을 팔 때 쓰는 도구로 보지만 ‘헹'은 확정된 게 없다. 우선 헹가래를 할 때 앞뒤로 내밀었다 들이켰다 하는 것이 가래질을 하는 것과 유사하므로 보아 ‘가래’라는 단어가 쓰였을 것이다. 또 ‘가래질’, ‘넉가래질', ‘외가래' 등에서도 보이다시피 ‘X가래'는 흙을 파헤치는 행위나 이와 관련될 때 자주 쓰이는 어형이다. 따라서 ‘헹가래'의 ‘가래'를 가래질하다 할 때 그 ‘가래'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가래(杴)'는 훈몽자회의 “杴 가래 흠”에서도 보이듯 16세기부터 ‘가래'라는 어형으로 형태 변화 없이 쓰였다. 이 ‘가래'는 ‘갈다'의 어간 ‘갈-’에 중세국어 명파접 ‘-애'가 결합한 것으로 ‘얼개(얽-+-애)’와 ‘마개(막-+-애)’와 같은 경우이다. 즉 ‘가는 것'이라는 뜻에서 ‘가래'라는 어휘가 나왔을 것이다. 근대국어에선 ‘ㅐ'와 ‘ㆎ’의 음운론적 경계가 사라짐에 따라 원래 ‘ㅐ'였던 것이 ‘ㆎ’로 과도교정되기도 ‘ㆎ’였던 것이 ‘ㅐ'로 쓰이기도 하였는데 이 때문에 ‘가래'는 ‘가ㄹㆎ’라는 형태로도 쓰인다. 


그렇다면 ‘헹'은 어디서 온 말일까? 가장 흔하게 퍼진 설은 가래질의 일종인 ‘헛가래'에서 왔다는 것인데 근대 국어 표기와 비교했을 때 그 음운론적 대응을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우선 ‘헹가래'는 20세기 초에는 ‘헤염가래'와 ‘헴가ㄹㆎ', ‘헹가래'로 보이고 19세기에 쓰인 흥부전에는 ‘허영가ㄹㆎ’라는 어휘도 등장한다. 그리고 연대 미상이긴 하나 근대국어 시기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수호지어록해(水滸誌語錄解)’에도 ‘허영가ㄹㆎ’라는 표기가 자주 등장한다. 그보다 과거의 표기는 문증되지 않으므로 일단 고형을 ‘허영가ㄹㆎ’로 잡고 설명해 보자. 


만약 ‘헹가래'의 옛말이 헛가래라면 ‘헛가래>허영가ㄹㆎ>허영가래>헝가래/헹가래' 정도로 설명해야 할 것이나 ‘헛'이 ‘허영'으로 재구조화될 이유는 없다. 이 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헛가래'에서 ‘헌가래’로 변하고 ㄴ이 ㅇ으로 변했다고 하나 애초에 ㅅ이 ㄱ 앞에서 ㄴ으로 변할 리도 없거니와 오히려 ㄱ이 ㄲ이 되거나 ㅺ이 되었을 거다. 여기서 ‘헛’을 ‘虛(허)+속격조사 ㅅ'으로 보지만 애초에 음운론적으로 그 변화를 설명할 수 없기도 하고 고형과도 대응되지 않으므로 이 설은 가능성이 없다시피 하다. 19~20세기 문헌을 본다면 ‘헛가래' 설은 쉽게 논파될 수 있다. 


‘헹가래'의 ‘헹'을 설명하는 설로는 ‘헤염(헤엄의 옛말)’에서 왔다는 설(조항범)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 


‘허영가ㄹㆎ’는 ‘허영’과 ‘가ㄹㆎ’가 결합된 형태이다. ‘가ㄹㆎ’는 앞서 말했든 ‘가래'의 이표기인데 ‘허영'은 ‘헤엄'과 연관일 지을 수 있다는 설이 있다. 사실 ‘헹가래'가 지금의 뜻처럼 기분이 좋을 때 사람을 위로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뜻 밖의 기쁘고 좋은 일을 당한 사람을 치하하는 뜻으로, 또는 여러  총중에서 과실이 있는 사람을 벌주는 뜻으로 여러 사람이 그의 네 활개를 번쩍 들어 잇대어 내밀었다 들이켰다 하는 짓.(조선말 큰사전)”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위로 올렸다 내리는 게 아니라 사지를 잡고 앞으로 내밀었다 뒤로 들이켰다 하는 짓이다. 현재 표국대나 고려대사전도 이 풀이와 비슷하다. 아무튼 내밀었다 들이켰다 하는 것은 가래질의 행위와 유사하고 네 활개를 잡혔을 때 사람이 벗어나려고 할 때 손과 발로 물속을 헤쳐 나가는 헤엄을 할 때의 행위와도 유사하다. 

그러나 이 정의의 헹가래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헹가래와는 다르다. 실제로 20세기 초 문헌에는 위로 올렸다 내리는 것이 헹가래라는 기록이 있으므로 ‘헹가래'의 방식이 두 가지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행위상의 유사성을 보고 ‘허영'과 ‘헤엄'의 음운 대응을 살펴 보자.

‘헤엄'의 옛말은 ‘헤욤'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헤다'의 어간 ‘헤-’에 명사형 전성어미 ‘-옴'이 붙은 것으로 ‘ㅔ'의 반모음 j로 인해 ‘옴'이 ‘욤'으로 변해 ‘헤욤'이 된 것이다. 명사형이 명사로 굳어진 것인데 그러다 단모음화로 17세기에는 ‘헤옴'이 쓰였고 18세기에는 ‘-음'이 붙은 ‘헤음'이 나타나기도 했다. 19세기에는 ‘ㅛ'가 ‘ㅕ'로 바뀐 ‘헤염'과 ‘헤엄'이 등장하였는데 여기서 볼 것은 ‘헤염'이다. 


이 ‘헤염'은 반모음 탈락으로 ‘헤엄'이 됐다. 이는 근대국어에서 흔히 일어난 현상이다. 그리고 이 ‘헤엄'은 모음충돌 회피 현상으로 축약되어 ‘헴'이 됐을 것이다. 실제로 조선어학회의 조선말사전(1938)에선 ‘헴'을 ‘헤염'의 준말로, 한글학회의 조선말 큰사전(1957)에서는 ‘헴'을 ‘헤엄'의 준말로 올려 놓았다. 따라서 ‘헤엄가래'가 ‘헴가래'가 됐다고 하면 ㄱ의 영향으로 연구개 위치가 동화되어 ‘헴'이 ‘헹'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즉 ‘*헤염가래'라는 중세 후기~근대 초기 형태를 상정하면 제1음절에서 반모음 /j/가 탈락한 ‘허염가래'는 ‘허영가래’가 되고, 제2음절에서 반모음 /j/가 탈락한 ‘헤엄가래'는 모음축약으로 ‘헴가래>헹가래'가 됐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실제로 근대 후기와 현대 국어 초기에 보인 이형태와도 비슷한 형태이므로 ‘헤엄'에서 왔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따라서 ‘헹가래'는 앞뒤로 내밀었다 들이켰다 하는 행위가 ‘가래질'의 행위와 비슷하고 네 활개를 잡힌 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헤엄'의 행위와 비슷하기 때문에 ‘헤엄'과 ‘가래'가 합쳐졌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더 옛날의 표기가 나오면 이 설이 확실히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있겠지만. 

참고 문헌: 조항범, ‘헹가래’의 語源과 意味에 대하여


ㄴ 큰사전(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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