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라 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 [1037181] · MS 2021 · 쪽지

2023-02-16 17:3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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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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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오탁번


고려대학교의 정문에는 문패가 없다.


서울대학교나 연세대학교의 정문에는

커다란 동판 문패가 구리빛 찬란하게 붙어있어서

누구나 그 대학의 이름을 쉽게 알 수 있지만,

고려대학교의 정문에는 문패가 없으니

이 대학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것 참 이상하다.

이름도 없는 대학의 이름을 모두다 안다는 듯

아무도 이 대학의 이름을 물어본 사람도 없다.

입학원서 들고 처음 들어오는 고등학생들도

여기가 고려대학교 맞습니까 물어보지 않는다.

매일 교문을 드나드는 수천 명의 학생들도

정문에 문패가 없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얼씨구 절씨구 고려대학생 노릇 잘만 한다.

그것 참 이상하다.

개교한 지 일백년이 다 되는 대학교 정문에

동판으로 만든 문패하나 없다니?

그런데 정말로 이상한 일은

문패가 없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것.

늘 싱거운 짓 잘하는 오탁번 교수가 십년 전에

이 사실을 발견하고 학교 당국에 그 사실을 물었다.

아 그래요? 참 그렇구먼요. 흐흐 정말 그런데요.

싱겁기 짝이 없는 것은 다 마찮가지.

모두들 저마다 가슴 속에 남모르게

금빛의 문패 하나씩 영원히 간직하고 있다는 듯,

구리빛 문패는 통 생각도 없다는 듯.

그것 참 이상하다.

고려대학교.

이 무명의 콧대 높은 선비들의 갓끈

아침 점심 저녁 때의 우리나라 흰 쌀밥처럼

아무 빗깔 없으면서도 모든 맛을 다 지닌

고려대학교 우리 대학교 그냥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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