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원장 [281731] · MS 2009 · 쪽지

2011-01-16 12:4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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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원장의 작품 - 26. 외딴 방(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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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소모적 논쟁에는 뻘글이 제 맛

이 글의 의도는 뻘글을 투척함으로써 지금 서울대포탈에서 벌어지는 논쟁들로 인해 경직된 분위기를 풀고자 하는 것에 있습니다.

원작은 다들 아시겠지만 201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에 나왔던 작품입니다.






※ 읽는이의 댓글과 평점은 쓰는이의 마음을 행복하게 합니다.







원작: 신경숙 - 외딴방





                                <전략>

 학원에 나가지 않으면 나는 10시에 오르비에 접속할 수 없을 것이다. 선생님은 버스 정류장에서 내일은 꼭 학원에 나오라고 한다.
 “우선 학원에 나와서 얘기하자.”
 버스에 올라탄 선생님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선생님의 손 뒤로 문제집들이 울뚝울뚝하다. 처음으로 입시 속에서 사람을 만난 것 같다. 버스가 떠난 자리에 스무살의 나, 우두커니 서 있다. 선생님의 손길이 남아 있는 내 어깨를 내 손으로 만져 보며.
 다음날 교무실로 나를 부른 선생님은 내게 반성문을 써 오라한다.
 “하고 싶은 말 다 써서 사흘 후에 가져와 봐.”
 반성문을 쓰기 위해 학원 앞 문방구에서 대학 노트를 한 권 산다. 지난날, 독동에서 왜 내 친구와 내가 학원에 가야만 하는가를 뭐라구 뭐라구 적었듯이 이젠 선생님에게 학원 가기 싫은 이유를 뭐라구 뭐라구 적는데 어느 참에서 마음속의 이야기들이 왈칵 쏟아져 나온다. 스무살의 나, 쓴다. 내가 생각한 학원 생활이란 이런 것이 아니었으며, 내가 생각한 스무살도 이런 것이 아니었다고.
 나는 수업 듣기도 싫고 EBS도 싫으며 지금은 오로지 마음속에 오르비 생각뿐으로 다시 설포로 돌아가서 잉여짓을 하고 싶다고. 반성문은 노트 삼분의 일은 되게 길어진다.
 반성문을 다 읽은 선생님이 말한다.
 “너 정시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



 내게 떨어진 정시라는 말. 그때 처음 들었다. 정시를 써 보라는 말.



 그는 다시 말한다.
 “수업 듣기 싫으면 안 들어도 좋다. 학원에만 나와. 내가 다른 선생들에게 다 말해 놓겠어. 뭘 하든 니가 하고 싶은 걸 하거라. 대신 학원은 빠지지 말아야 돼.”
 그는 내게 한 권의 책을 건내준다.
 “내가 요즘 최고로 잘 읽은 소설이다.”



                                <중략>




 최홍이 선생님. 이후 나는 그 선생님을 보러 학원에 간다. 어색한 재수로 마음에 가둬졌던 그리움들이 최홍이 선생님을 향해 방향을 돌린다. 스무살의 나, 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가지고 다닌다. 어디서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는다. 다 외울 지경이다. 희재언니가 무슨 책이냐고 묻는다.
 “소설책”
 소설책? 한번 반문해 볼 뿐 관심 없다는 듯이 희재언니가 고갤 떨군다. 최홍이 선생님이 마음 안으로 가득 들어찬다.
 정말 수업을 듣지 않아도 교과 선생님은 그냥 지나간다. EBS를 풀지 않아도 진학부장은 탓하지 않는다. 언어 시간에 수리 노트 뒷장을 펴고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옮겨 본다.

……사람들은 평가원장을 잉여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평가원장은 잉여킹이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평가원장을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나는 수능, 내신, 비교과, 논술, 그리고 눈치를 포함한 대입 입시의 모든 것을 걸고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다. 나의 '모든 것'이라는 표현에는 '서울대학교 합격'이 포함되어 있다.


……이제 스무살의 나는 오르비를 하면서도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옮기고 있다. 합격한 사람들은 발논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그러나 평가원장은 발논을 쓰면서 합격을 생각했다,고. 단 하루라도 합격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고.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고. 우리의 생활은 잉여와 같았다,고.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고. 그런데도 평가원장 모든 것을 잘 참았다,고.


 그가 정시를 써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 대신 지균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으면 나는 지규너를 꿈꾸었을 것이다. 그랬었다. 나는 서울대에 가고 싶었다. 내가 학원에 가기 위해서, EBS드립을 담담하게 받아내기 위해서, 잉여로운 생활을 참아 낼 수 있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정시는 그렇게 내게로 왔다.

 십이월 하순이 지날 때까지 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보낸 성적표를 가방에 넣고 다녔다. 가끔 성적표를 꺼내 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통지표,라는 대목을 읽어 보곤 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몇 번 성적표를 꺼내 읽고 다시 넣고 하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점수를 다 외우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끝내 다 맞지는 못했다. 시간은 자꾸 흘러 정시 논술고사를 치는 기간인 1월초와 중순을 지나갔다. 이제는 채점을 하겠구나, 싶었을 때 가방에서 성적표를 꺼내 서랍에 넣으면서 수능을 친 달수를 헤아려 봤다. 수능친 지 두 달이다. 이제는 그때의 일들이 나에게는 객관화가 되어 있으려니 했다.
 정시를 쓰기로 마음을 먹었을 땐 나는 그 시절을 다 극복한 것도 같았다. 그래서 그 시절에 대해서 할 수 있는 한 자세히 써 보기로 했다. 그때의 기억을 복원시켜 내 말문을 틔어 보고 내 인생의 폐문 앞에서 끊겨 버린 내 발자국을 연결시켜 줘 보기로.







작년의 향수가 피어오르시지 않나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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