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떡봉 [1128843] · MS 2022 · 쪽지

2023-01-22 23: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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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속 작은 문과생의 '입시를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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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고교 3년간 오르비를 비롯해서 수많은 입시 커뮤를 안 보고 살았습니다. 그거 말고도 할 일들이 많았고, 그때나 지금이나 남이 살아가는 모습에 현혹되지 않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정시 지원이 끝나고 나서야 다른 동갑내기들은 이 시기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저보다 어리거나 나이 많으신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해서, 들어와봤고, 생각보다 배울 것도 많은 듯합니다.


고등학교를 나름 빡센 곳을 나와서 다른 오르비언분들처럼 높은 기준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저또한 그랬고요. 고3이 되니 동물적인 직감에 의해, 이대로 수시를 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확히 2021년 12월 28일부터 열심히 정시 공부를 했던 것 같습니다.


문붕이가 하기에 공통수학 준킬러,킬러 문제는 막히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고... 솔직히 국어도 좀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스카이를 가고자 하는 집념 하나로 11개월 가량 되는 시간들을 버틴 것 같습니다. 거의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등교하고. 쉬는시간에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걸 고3이 되어서 꺠달았습니다. 만약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내신 시험을 아주 조금 더 잘 봤을 수도 있겠지만 ㅎㅎ 후회는 없습니다.


여름방학 때 치팅위크 일주일과 가끔씩 친구 만난 주말 며칠을 제외하곤 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참 치열하게 산 것 같습니다.매번 모의고사마다 좌절을 심하게 했었는데, 9모 때 전과목에서 6개 틀리고 커리어 하이를 찍었고, 2달 후 수능도 정말 잘 볼 것 같았습니다.


근데 저는 수능을 망했어요! (한 과목을 거하게 말아먹었습니다. 그것도 6,9 때 만점 받은 탐구를ㅋㅋ) 저희 집안에서도 제가 수능을 평소에 비해 못 본 것에 아쉬움을 가지고, 11월 말까지 엄청 다운된 채로 지냈는데, 그래도 성적표가 막상 나와보고 이것저것 넣어보니까 그냥저냥 '서울 내 명문대' 정도는 갈 성적이 나오더라고요.


결국 원서시즌이 되었고 저는 수시 시즌에 겪은 수많은 뜨거운 합격들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기에, 가나다군을 모두 붙을 수밖에 없는 곳들을 썼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들 생각하는 것이 다를 거라 생각되지만, 저는 성격상 불확실한 걸 너무 싫어해서... 누군가가 보기엔 실패한 원서영역일 수도 있겠지요.)


1월 17일부터 제 1지망 대학교 조발에 대한 떡밥이 오르비에서 열심히 굴러가고... 저도 이 떡밥만큼은 합류해서 이렇다 저렇다 왈가왈부 했는데 진짜 뜬금없이 금요일 3시에 하더라고요!^^ 그 때 학원에서 조교 알바하고 있었는데 같이 일하시던 분이 잠깐 자리 비운 사이에 호다닥 확인하고 떨리는 손으로 부모님께 연락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을 열심히 해보았죠 하핫


퇴근할 때쯤에 저랑 고교 시절을 함께한 친구와 전화를 하면서... 연고전이니 고연전이니 '이젠 나도 당당하게 논의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 순간 저 자신이 좀 자랑스럽긴 하더라고요. (아직 각자 뽕 차있을 시기니 이해부탁드려요)


퇴근하고 와서 돌아오니 부모님께서는 수고 많았다고, 이제 발 뻗고 자라고 말씀해주시면서...ㅠㅠ 주변 가족분들의 축전들도 알려주셨는데... 솔직히 친척분들이 더 기뻐해주시고 축하해주셔서 참 잘 살아왔구나, 좋은 가정에서 살아왔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네요. 물론 친구들도 많이 많이 축하해주고,, 일부 재수하는 친구들은 꼭 내년에는 같은 학교 학생으로 만나자고 나름의 포부를 다지고... 여러모로 감동적인 순간들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머리가 수능 쪽으로 탁월한 사람도 아니고 수학을 이과러들처럼 척척 풀어내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수능이란 시험 자체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난이도도 그렇고, 그 시기를 견디는 것도 저는 솔직히 너어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앞으로 수능을 처음 직면하게 될 수많은 학생들이 느낄 법한 두려움과 불안함을 백번 이해합니다. 오르비언들 중에 우수하신 분들이 많은 만큼 더 걱정되고 무서우실 수도 있겠죠... 분명히 겪을 과정이고, 느낄 정서입니다. 


그래도 너무 위축되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고3 일년이 가지는 의미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클 것이니까요. 절대적으로 과정 중심적인 시험이라고 보기엔 수많은 반례들이 있을 수 있기에 속단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 수능공부라는 과정이 가지는 교훈은 삶을 살아가면서 다른 걸로는 배울 수 없는 교훈이에요. 


20대를 맞이하기 직전에 내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점검해보고, 그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삶에 있어선 몇 안되는 기회니까요.


오르비언분들의 2023년을 누구보다도 응원합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조언 받고 축하 받아서 감사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안온한 2023년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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