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예끼 [534448] · MS 2014 · 쪽지

2015-06-13 01:24:44
조회수 3,504

(오글+똥글주의)갑자기 생각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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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생각이 나서...
청승 싫어하시는 분들은 그냥 나가주세요!


아파트였지만 관심도 없던 바로 옆집에는 매우 늙은 할머니께서 살고계셨다
처음에는 몰랐다. 그 할머니께서 거동이 불편하시고, 자식들은 신경도 안 쓴다는 사실을. 다만 그 할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이시며, 매우 늙으셨다는 딱 그 정도만 알았다.

"왜 그, 있잖아 지은이 엄마, 202호에 할머니, 그 할머니 자식들은 엄청 잘 사는데 그냥 할머니한테 아파트 하나 해 주고 가 버린 거래."
"어머 그래? 난 몰랐는데... 뒷방 늙은이인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나 보네?"
"그렇지 뭐, 근데 그럼 뭐해~ 자식들이 버려놓은 거랑 뭐가 달라?"
"그렇긴 해도 붙어살겠다고 하시면서 사사건건 부딪히는 시어머니들보다는 차라리 저런 분이 낫지~"
또 다른 옆집에서 들려오던 말들, 처음에는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다음날에 학교가 일찍 끝나고 집으로 걸어올라가는 길에, 한 할머니께서 힘겹게 계단을 올라가고 계셨다.
계단 하나 하나, 지팡이로 짚어가며 올라가시는데 어린 마음에도 차마 휙-지나쳐 올라갈 수가 없었다.
엄마는 세상이 무서우니 아무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어도 왠만하면 그냥 지나쳐 오라고 했었다. 인신매매의 많고 창의적인 유형에 치를 떨던 엄마였기에 그 말이 스쳐지나갔지만, 옆집일 거라는 확신에 그냥 할머니께 다가갔다. 최소한 아파트니까 인신매매는 아니겠지 하는 어린 확신이었을 것이다.

할머니, 202호시죠? 도와드릴게요. 여기 잡으세요.
할머니께서는 내 손을 잡으시고는 당신의 집 현관에서 내 손을 부여잡으며 한참동안 눈물을 흘리셨다.
아주 뜨거운 눈물- 가슴에 홧홧하게 떨어지는 아릿아릿한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할머니께서 지금은 살아계신지, 돌아가셨는지는 모르겠다. 너무 연로하신 분이셨고, 걸음 하나하나 힘겨우시던 분이셨으니까.
타인이 흘린 눈물의 온도를 알려주신 분이 생각나는 날은 무덥고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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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대갈거여 · 491457 · 15/06/13 01:27 · MS 2014

    너무 흉흉하고 삭막해져서...진짜 힘드신 분들은 도와드리고 싶은데 요새 워낙 그렇고 그런 소문들이 많으니 무서워요...

  • 이끼예끼 · 534448 · 15/06/13 01:46 · MS 2014

    맞아요.. 영화 아저씨 보고 기겁했어요 전 ㅎ

  • 의대갈거여 · 491457 · 15/06/13 01:47 · MS 2014

    전에 홍대에 일 있어서 갔다가 옆에서 전단지에 사탕 붙여 주는 거 무심결에 먹고 잠깐 쫄아서 두근두근했던 기억이...뭘 주면 의심부터 하게 돼요 ㅋㅋㅋㅋ

  • 이끼예끼 · 534448 · 15/06/13 01:58 · MS 2014

    전 한때 치킨 홍보 하면서 주던 치킨 엄청 받아놓고 집에 와서 먹었어요 ㅋㅋㅋ 주는 커피사탕이고 뭐고 일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아요ㅎ... ... 진짜 세상 무서워요

  • alth125 · 575033 · 15/06/13 01:29 · MS 2019

    ㅜㅜ 전 진짜 할머니들만 보면 짠해요 어렸을때 할머니께서 키워주셔서ㅜㅜ 요새도 할머니댁가면 할머니 파마머리 만지는데 머리가 너무 귀여워요 ㅎㅎㅎ 내년에 같이 여행가기로 했는데 메르스 제발 조심하셨으면ㅠㅠ 진짜 평생 사셨으면 좋겠어요 살면서 자식이 7명 있어도 안해보셨던 사랑한다는 말을 저한테 해주시는 게 너무 좋아요

  • 이끼예끼 · 534448 · 15/06/13 01:38 · MS 2014

    저도요 ㅠㅠ
    할아버지께서는 암 투병 중이신데, 어떻게 되실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절 너무 아껴주시는데 너무 눈물이 핑 돌아서...
    전 어릴 때부터 떨어져 살았지만 돌아가신다면 너무 가슴이 아플 것 같아요

  • · 575903 · 15/06/13 01:38

    마음이 따뜻하시네요.

  • 이끼예끼 · 534448 · 15/06/13 01:41 · MS 2014

    ///////..... 딱히 그런 건 아닌데 그냥 그분 생각이 요새 너무 많이 나서 적어봤어요 ㅎ...

  • 파워문돌이 · 517146 · 15/06/13 01:38

    며칠전에 백년손님에서 이만기 장모님께서 장수사진 찍으러 가시는 걸 봤는데 왜그리 눈물이 나는지..ㅠ 저도 외할머니께 잘해드려야 되는데.. 어렸을때 일 년간 저희 집에서 저를 키우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너무 철없이 굴어서ㅠㅠ 맨날 반찬투정하고..아직도 그때 생각만 하면 너무 죄송해요..ㅠ

  • 이끼예끼 · 534448 · 15/06/13 01:45 · MS 2014

    저도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랑 자랐거든요ㅎ... 어릴 때 제가 과일 좋아한다고 오렌지 알맹이만 그릇에 담아주시고 정작 당신은 껍질만 드시던 외할아버지, 심심해서 책을 그냥 읽는데 심심하니깐 더 빌려준다면서 외할머니, 막내이모, 외국 나간 외삼촌, 그리고 당신의 도서관 회원증을 다 지갑에 넣고 한약 가방 여러 개 챙겨서 책 빌려다 주신 외할아버지, 운동하는 데에 데려가셔서 같이 배드민턴 치고 계모임도 꼭 데려가시던 외할아버지, 그리고 지금은 너무 많이 늙으신, 그래도 잘생기신 외할아버지...
    그냥 돌아가시면 제가 너무 가슴이 아플거에요. 누구나 그러지만요.

  • 시츄 · 455708 · 15/06/13 06:24

    헐 눈물나려한ㄷ...ㄷㄷㄷ,,ㅠㅠㅠ

  • 15학번 칼입학 · 507189 · 15/06/13 08:33 · MS 2014

    그대가 존경스럽습니다ㅜㅜ쉽지않은데..

  • afool4u · 442486 · 15/06/13 12:48 · MS 2013

    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연락을 방금 받았는데, 이 글을 보네요.

    마음 참 예쁘세요.

    따뜻한 글, 고맙습니다.

  • 멘토스레인보우 · 557756 · 15/06/13 13:10 · MS 2015

    할머니 보고싶다

  • 리드미안 · 569795 · 15/06/13 16:37 · MS 2018

    마음이 따뜻한 분이네요

  • 롬량운급 · 562735 · 15/06/13 22:38 · MS 2015

    2띠용 드립니다.

  • 롬량운급 · 562735 · 15/06/13 22:38 · MS 2015

    2띠용 드립니다.

  • 미리메리크리스마스 · 581419 · 15/06/19 22:51

    마음이 너무 예뻐요
    저 정려원에서 닉변함 귀요미님

  • 이끼예끼 · 534448 · 15/06/19 22:55 · MS 2014

    앗! 오랜만이세요!!

  • 미리메리크리스마스 · 581419 · 15/06/19 22:56

    님 여전히 귀여워요 흐흐
    이 글 스크랩해갈게요~

  • 이끼예끼 · 534448 · 15/06/19 22:57 · MS 2014

    고맙습니당 ㅎ
    미리메리크리스마스님도 여전히 다정하세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