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문돌이 [517146] · 쪽지

2015-06-02 01:20:21
조회수 7,409

전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6075532

밑에 특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길래 생각이 나서 써 봐요


저는 매우 특별한 케이스입니다.


보통 소득수준과 교육수준은 비례한다고 말합니다. 저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말에 더욱 공감하고요.

저는 유복한 집에서 자라지 못했습니다. 아빠는 고등학교를 자퇴하셨고, 엄마는 외삼촌의 학비를 위해 대학진학을 포기하셔야만 하셨죠.


하지만 저는 매우 축복받았습니다.

당시 한창 유행하던 영어학습법 중 하나가 바로 영어소리를 듣고 영화를 보면서 영어를 체득하는 방식이었는데, 소득수준과 영어실력이 사실상 비례하는 현실 속에 한 줄기 희망을 가지고 저희 엄마꼐서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그 방법으로 저를 교육하셨습니다. 그 결과 국제중 입시를 위해 처음 쳤던 텝스에서 700점이란 놀라운 점수를 받았고, 중학교 때에는 집에서 학습하는 방법에 대한 책을 하나 써 보자는 제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모든 과목을 사교육 없이 공부하기. 어떻게 보면 가장 이상적인 교육전략일지 모르지만, 저희 집은 그것이 선택이 아닌 불가피한 필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주 주말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고, 정말 사교육의 힘 없이 모든 과목을 다 학습해 왔습니다. 이를 위해 저희 엄마께서는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저에게 할애하셔야만 했고, 덕분에 오늘날의 저와 제 학습역량이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특목고에 진학하게 되었을 때 전 세상에 반기를 든 것 마냥 기뻤습니다. 주변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과고와 영재고 입시를 준비한다고 엄청난 사교육과 과외를 받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경제력이 된다는 사실을 과시하던 친구들을 제친 채 당당하게 1등으로 중학교를 마쳤고,  전국구는 아니지만 문과에서는 나쁘지 않은 특목고를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릴 적부터 꿈꿔오던 개천발 용의 출현이 한발짝 저에게 가까이 다가온 듯한 기분이었죠.


그로부터 3년이 지났고, 이제 19년간의 인생을 매듭짓고 성인으로서의 새 출발을 결정짓는 순간의 과정 앞에 저는 서 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나서 처음으로 알게된 제 내신은 3점대 초반.

사실 제 모의고사 등수에 비하면 내신이 훨씬 낮았는데, 고등학교 입학 이후 1년 반 가까이 태어나서 가장 많이 놀았던 터라 그런지 제 생각보다 낮은 내신에 잠이 확 달아나더군요.

2등급대 후반까지가 서울대 수시가 가능하고, 3등급 초반까지가 연대 특기자가 가능하다는 걸 알았을 때 전 다른 무엇보다도 고민이 앞섰습니다.

'과연 내가 서울대가 아닌 다른 대학을 붙더라도 다닐 수 있을까.'


그렇지만 고등학교 2년 동안 쌓아온 수많은 비교과와 학생부가 아까워 현실적인 문제에는 잠시 눈을 감고, 그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수시와 정시를 함께 고민하며 고3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미련을 버리고 배수진을 치려고 합니다.

어차피 수시보다 정시로 지원가능한 대학의 폭이 더 넓은 상황인데다, 무엇보다도 수시로 붙을 수 있는 대학 중에서 제 만족도와 경제적 비용을 동시에 충족시킬 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눈물이 나곤 했었습니다. 아무래도 특목고이다 보니 집이 부유한 친구들도 많았고, 따라서 대학을 가는 데 있어 비용이라는 고민을 가지고 있는 건 정말 저밖에 없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남들은 일단 성적만 되면 무조건 보내주겠다고 하는 마당에, 왜 나만 경제적인 고민까지 함께 해야만 해야 하는지 슬프기도 했고, 서럽고 화도 많이 났었죠.


그렇지만 이제는 깨끗이 마음을 정리하고,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전진하려고 합니다.

"서울대에 진학하는 것."

제 위에는 평생 대학 문턱을 진학하지 못한 것이 컴플렉스인 아빠의 꿈과, 20년이란 시간을 부와 교육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아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헌신하신 엄마의 꿈이 함께 서려 있습니다.


글이 두서없긴 하지만,

저는 아직까지는 우리 사회가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더욱 열심히 정진하여 꼭 원하는 목표 이루도록 하겠습니다ㅎ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