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가망없나 [1159823] · MS 2022 (수정됨) · 쪽지

2022-10-09 0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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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와 형용사 그 경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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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


학교문법에서 동사란 사물의 동작이나 작용을 나타내는 품사이다. 통사론적으로 ‘무엇이 (무엇을) 어찌한다’의 ‘어찌한다’의 자리를 채우는 것이 바로 동사다. ‘읽다/잡다/사랑하다/생각하다/자다/살다/흐르다/피다' 등의 예시가 있다. 


형용사


형용사는 사물의 성질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품사이다. 동사가 사물을 과정적이고 동태적으로 묘사를 한다면 형용사는 성질이나 상태를 정지적으로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무엇이 어떠하다’의 ‘어떠하다’의 자리를 차지한다. ‘달다/거칠다/착하다/같다/좆같다/아프다’ 등의 예시가 있다.



동사와 형용사를 굳이 분류해야 하는가는 학계에서 뜨거운 감자였지만 의미 면에서도 차이가 있고 형식에 있어서도 특정 어미의 결합에서 차이를 보이므로 둘을 다른 품사로 인정하기로 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고영근 교수의 표준국어문법론에서 다루는데 학교문법에서도 이 기준을 따르니 둘은 엄연히 다른 품사이다. 근데 구분법이 매우 애매해서 그 말이 동작이나 작용을 나타내는지 상태나 성질을 나타내는지로 구분하기는 까다로워 주로 활용하는 형식으로 구분된다. 어떤 용언이 동사인지 아니면 형용사인지 구분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1.명령형/청유형으로 활용될 때 말이 되는지 따져 보는 것.

‘예쁘자/예뻐라(감탄이 아님)’처럼 말이 안 되면 형용사, ‘먹자/먹어라'처럼 말이 되면 동사


2. 동작상에서 진행상으로 활용되는지 따져 보는 것. 

‘빨간 중이다/빨갛고 있다’처럼 말이 안 되면 형용사, ‘생각하는 중이다/생각하고 있다'처럼 말이 되면 동사.



다만 1과 2의 문제는 때에 따라 동사 역시 명령형/청유형으로 쓰이지 않고 진행상으로 활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명령형이나 청유형의 사용 여부나 진행의 의미로 구분하는 것은 모든 동사에 적용되는 사실이 아니며 '모르다'나 '마르다', ‘붐비다'는 각각 '몰라라/모르자', '말라라/마르자' ‘붐비라/붐비자'처럼 쓰지 않는다. 이래서 3이 가장 자주 쓰이는데 이거만 한 방식이 없다. 거의 모든 경우에서 이걸로 구분이 될 것이다



3. 용언의 어간에 '-는다' 또는 '-ㄴ다'를 붙여 보아 말이 되는지 따져 보는 것.(기타 현재형 어미도 사용 가능)


'같는다'처럼 말이 안 되면 형용사, '읽는다'나 '핀다'처럼 말이 되면 동사이다. 


그런데 위 구분법은 '늦다'와 같이 형용사로도 동사로도 쓰이는 말에서는 판단하기 애매할 때가 있다. 이땐 반대말로 치환해서 그 반의어의 품사를 따르는 방식도 있다. 품사를 알고 싶은 말의 반대말을 문장에 넣어 바꾼다. 그리고 반대말로 바꿔도 말이 되면, 그 말은 반대말과 같은 품사로 봐도 된다. 



그렇다면 품사를 결정하기 애매한 놈들은 어떨까? '늙다'나 '낡다', '맞다', 잘생기다' 같은 놈들 말이다. 일단 아래의 글을 먼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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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사 변경에 대한 국립국어원 안내문( 2017년 12월 )


‘잘생기다’ 등 형용사의 품사 변경에 대한 안내


"안녕하십니까? 최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낡다’, ‘못나다’, ‘못생기다’, ‘잘나다’, ‘잘생기다’ 등 5개 어휘의 품사가 형용사에서 동사로, ‘빠지다’, ‘생기다’, ‘터지다’ 등 3개 어휘의 품사가 보조 형용사에서 보조 동사로 변경된 이유에 대하여 많이 질문하셔서 이에 대해 상세한 안내 말씀 드립니다.


품사는 단어의 문법적 특성(문장에서의 기능, 형태적 특성)을 기준으로 분류합니다. 이에 따르면 동사와 형용사는 문장에서 서술어 역할을 하며 어미가 붙어 모양이 변하므로 함께 ‘용언’이라 불립니다. 그러나 동사와 형용사는 동작을 나타내느냐 상태를 나타내느냐의 차이도 있고, 또 대개는 활용 양상에서도 차이를 보여, 이 활용 양상의 차이(형태적 특성)를 기준으로 구분되어 왔습니다.



자다(동사): 잔다 자는구나 자라 자렴


차다(형용사): 차다 차구나 × ×


그런데 용언 중에는 활용을 거의 하지 않아 동사인지 형용사인지 판정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습니다. 위에서 든 ‘잘나다, 못나다, 잘생기다, 못생기다’ 같은 예들이 그러합니다.


잘생기다: 잘생긴다(×) 잘생기는구나(×)


잘생기다(×) 잘생기구나(×)


이들은 활용의 양상이라는 기준을 가지고는 품사를 분별할 수 없기 때문에 학계에서 이들의 품사에 대한 논란이 많이 있었으며, 사전들마다 품사를 조금씩 달리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논의가 축적되어 최근 국어학 분야에서 다음과 같은 이론이 중론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를 반영하여 이번 3/4분기에 앞에서 든 몇몇 용언들의 품사를 형용사에서 동사로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한국어에서 두 요소(A와 B)가 결합하여 복합어를 이룰 때 보통 그 품사는 뒤 요소의 품사로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잘생기다’ 등의 복합어는 뒤의 요소가 동사(생기다, 나다)이기 때문에 그 합성의 결과를 형용사보다는 동사가 되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일반론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보통 형용사 어간에 종결 어미 ‘-다’가 결합하면 현재의 뜻을 나타내고 선어말 어미 ‘-었-’이 결합하면 과거의 뜻을 나타냅니다(‘착하다’, ‘착했다’ 등). 그런데 ‘-었-’이 결합된 ‘잘생겼다, 못생겼다, 잘났다, 못났다’는 모두 과거가 아닌 현재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러한 현상은 동사 ‘늙다, 닮다’ 등의 활용형(‘그 사람 젊냐, 아니면 늙었냐?’, ‘저 학생은 어머니보다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생기다’류가 현재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었-’이 결합해야 하며, 일반적인 형용사처럼은 현재형이 가능하지 않습니다(‘그는 잘생기다’(X)). 만약 이들을 형용사로 본다면 ‘-었-’이 결합하였을 때 현재 상태의 의미를 드러내는 현상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지만, 동사로 본다면 중세 국어 시절의 ‘-어 있-’에서 형성된 ‘-었-’이 붙어 현재 상태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한편 동사라고 하더라도 각 동사의 개별 의미적 특성에 따라 명령형이나 청유형, ‘-는 중이다’ 따위와 호응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므로 이것들과 호응하지 못한다고 하여 형용사로 취급함이 옳지 못함을 확인한 것도 최근 학계의 연구 성과입니다. 예를 들어, ‘관하다’와 같은 일부 동사의 경우에는 품사가 동사임에도 불구하고 ‘관하여라’, ‘관하자’, ‘관하는 중이다’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렇게 지금까지의 국어학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잘생기다’류의 쓰임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관련 위원회의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이들을 형용사보다 동사로 판정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판단하였고, 그 결과 이번에 품사를 형용사에서 동사로 수정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취지를 잘 이해하셔서 국어 생활에 참고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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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일단, 형용사는 선어말어미 없이 어간에 '-다'를 붙인 기본형이 그대로 현재의 상태를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예쁘다'라고 하면 현재 '예쁜' 상태를 나타낸다.


그러나 '달리다'와 같은 동사는 이런 기본형으로 문장에서 쓰일 수 없다. 반드시 시제를 나타내는 '-는-', '-았/었-'과 같은 어미가 필요하다.


즉 '철수가 달리다.'와 같은 문장은 존재하지 않고, '철수가 달린다', '철수가 달렸다.'만 가능한 것이다. 이와 같이 '낡다'도 '집이 낡다.'와 같은 꼴로는 문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드시 '집이 낡았다.'와 같이 시제 선어말 어미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또한 '-었-'의 기능 문제도 존재하는데 형용사는 '꽃이 예뻤다'처럼 ('예쁘-+-었-+-다') 과거시제 선어말어미 '-었-'이 붙으면, 과거의 상태를 나타낸다. '예뻤다'가 현재의 상태까지 나타내지는 않는다. 과거에 꽃이 예뻤다는 뜻이지, 현재도 꽃이 예쁘다는 뜻을 나타내지는 않는 것이며 현재는 어떤지 모르는 것이다.


'낡다'는 선어말어미 없이 어미 '-다'가 붙은 형태로 현재 시제를 나타내지 않는다. 


'*집이 낡다'는 현재 시제를 나타내지 않고, 언중이 저렇게 쓰지도 않는다.


'낡다'는 과거시제 선어말어미 '-었-'이 붙으면, 과거의 상태가 아니라 현재의 상태를 나타낸다. '집이 낡았다'는 과거의 상태를 의미한다기보다는, 현재의 상태를 의미한다 볼 수 있다. 과거에 집이 낡았다는 뜻이 아니라, 현재 집이 낡은 상태라는 뜻이다.


동사에서 '-었-'이 붙어 현재 상태의 의미를 나타내는 예들이 더러 있다. 예를 들어 '(꽃이) 피다'가 있다. '꽃이 핀다'처럼 쓰니 동사가 확실하다. '꽃이 피었다'는 과거에 꽃이 피었다는 사건을 나타내기도 하지만(과거시제), '현재 꽃이 피어 있는 상태'라는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완료상=결과상태 지속).


즉 과거에 꽃이 피어서, 현재에도 꽃이 핀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흔히 봄날에 꽃이 만발한 풍경을 보고 '꽃이 많이도/활짝 폈다(피었다)'고 말한다.  위의 동사 '(꽃이) 피었다'처럼 '집이 낡았다'가 완료상, 곧 결과상태 지속의 의미를 나타낸다고 보면 '낡다'는 동사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낡는 집'과 같은 표현이 어색하다는 점은 이것이 동사인가 하는 것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지만, 기본형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동사의 특성에 맞추어 '동사'로 분류한 것이 아닌가 싶다. 형용사로 보기는 어렵다고 최종 결론을 낸 것이고, 현재 품사 체계에서 다루기는 해야 하니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따져서 한 품사에 넣은 것이다.




'늙다'도 한번 보자. 


먼저 의미상, ‘늙다’는 “사람이나 동물, 식물 따위가 나이를 많이 먹다(여기서 ‘먹다’는 “일정한 나이에 이르거나 나이를 더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로 풀이되므로 '성질이나 상태'보다는'상태의 진행'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며 동사의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과정적인 속성이 동사의 방점이다. 

 

'내가 너 때문에 늙는다'처럼 '-는다'가 붙을 수도 있고, 또 기본형만으로 완전한 서술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도 동사로 볼 근거이다.

 

또 ‘-아라/-어라’가 동사에서는 명령형, 형용사에서는 감탄형으로 쓰이는데, ‘사람이 좀 곱게 늙어라’와 같은 문장은 감탄문이 아니라 명령문이 된다.

 

이처럼 품사 분류 기준인 ‘의미’와 ‘기능’으로 파악할 때, ‘늙다’의 품사를 ‘동사’로 보는 것은 타당하다.



'맞다'도 한번 보자. 

거의 모든 언중이 틀리게 활용을 하는 동사가 아닌가 싶다. 의미로 볼 때는 상태나 성질보다는 작용에 가깝긴 하다. 종결형은 보면 '맞다'로 주로 쓰이는데 이는 형용사적인 활용법이다. 관형사형을 보면 '그게 맞은 답'이 아니라 '그게 맞는 답'처럼 동사적으로 쓰이기도 하며 의문형으로 쓰일 땐 '맞느냐'처럼 쓴다. 이상하게 동사적 용법과 형용사적 용법이 공존하는 희한한 단어다. 다만 진행상을 취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형용사적 성격도 지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동사다. '네 말이 맞는다'가 맞고 '네 말이 맞다'는 엄밀히 따지자면 비문이다.  



이런 류의 놈들은 너무나 애매하다. 의미적 기준과 형태적 기준도 존재하지만 문제는 언중의 쓰임이다. 언중의 인식에 따라 활용이 휙휙 바뀌고 이게 굳어지면 새로운 품사로 바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애매한 경우는 별로 없는 것도 사실이다. 첫 단락에서 제시한 예시를 보면 누가 봐도 동사인 것들만 있다. 언어학이라는 것이 규범을 정리할 수는 있지만 현실과 괴리가 생기는 어쩔 수 없는 건 사실이다. 언중이 누가 규칙대로 말하는가? 규칙이 있고 언어가 생긴 게 아니라 언어가 있고 나서 규칙이 생긴 것이다. 기존의 언어를 정리한 게 문법이고 규칙이다. 이런 규칙대로 언어를 쓸 수도 있겠지만 변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예외는 안고 가야 한다. 정 모르겠으면 그냥 외우자. 외우다 보면 감이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rare-쉬라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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