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자퇴 10주년-어느 못난 아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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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자퇴 10주년
-어느 못난 아비의 기억
아침 5시 30분, 산책에 나섰다. 지난 늦봄 이후, 아침 산책 때 쌀쌀하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 삽상함을 넘어, 소소리바람 같은 느낌을 주는 바람 탓이었을까? 문득 떠오르는 딱 10년 전 기억.
2012년 10월 하순. 아해 1학년 2학기 중간고사 성적표가 나오던 날. 아해의 성적표는 극단적이었다. 그해 3월에 치른 전국모의고사는 전교 5위 안에 들었지만, 내신은 4등급대였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성적이었다. 특목고나 외고도 아닌데. 게다가 당시는 수시 비중이 점차 높아지던 시절이었다.
아해의 꿈은 어느 지역교대를 가서 초등교사를 하는 것이었다. 당시 교대는 정시에서 지금보다 훨씬 비중 있게 내신을 보았다. 예를 들면, 서울교대의 경우 내신 1등급 당 차이를 수능 표준점수 13점 정도로 계산할 때였다. 하여, 특목고나 외고생들은 정시로는 서울교대를 가기 힘들었다. 특목고 내신 3등급대로는 서울대 경제학과 정시 성적으로도 떨어지니까.
내신 4등급대가 나온 1학년 1학기 기말고사 성적표를 보면서 말했다.
“이러면 바라는 대학에 갈 수 없다. 정 교대를 가고 싶다면 2학기 성적을 본 뒤 자퇴를 하든 하자.”
그리고 받아든 1학년 2학기 중간고사 성적표. 성적은 1학기 기말 때보다 더 떨어져 있었다.
아해는 울면서 말했다.
“아부지, 더 잘 할 자신이 없어. 자퇴할게.”
나도 보았다.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 녀석은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다만, 내신 공부가 정말로 맞지 않았다. 교과서 문장 어디 한 군데에 빵꾸를 낸 뒤 채워 넣는 영어 공부를 극혐하던 녀석이었으니까.
중간고사 성적표가 나온 다음 날, 담임 선생님께 상담 신청을 한 뒤 바로 자퇴하겠다고 알렸다.
옥신각신 승강이. 결국 하셨던 말씀.
“11월에 치르는 전국 모의고사라도 보고 자퇴하셨으면 합니다.”
학교 평균, 반 평균을 1점이라도 올릴 수 있는 아해라는 ‘격려’였으리라. 기다릴 수 없었다.
고교 자퇴 신청을 한다고 바로 자퇴 처리가 되지 않음을 그때 알았다. 2주간인가 ‘숙려 기간’을 준 뒤 그래도 결심이 확고하면 최종적으로 교육청 허락을 받고 자퇴시킨다는 것이었다. 청소년 보호를 위해서일 것이다.
자퇴 의사를 학교에 밝힌 뒤 등교시키지 않았다. 그때부터 며칠 간 아해와 함께 했다. 영화 ‘광해’를 아해와 함께 본 것도, 북한산에 함께 오른 것도 그때였다. 북한산 하산 뒤 경복궁 서편 적선시장에서 함께 먹었던 분식집의 만두와 라면은 참 맛있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아무 생각 없이 놀게 한 뒤 그해 12월 초, 어느 대입전문학원 수능 예비반에 보냈다. 집과 학원이 너무 멀었기에, 아해는 아침 5시 50분까지 통학 버스를 타러 나서야 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낸 뒤, 학원에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는 방을 얻어 공부를 했다.
그렇게 공부해서 아해는 진학했고, 임용시험을 거쳐 바라던 초등교사가 됐다.
한데, 지금도 모르겠다. 과연 내가 아비로서 잘한 일이었을까?
대입학원에 다니던 내내 ‘대입에 실패하면 사실상 내 학력은 중졸이다’는 사실에 짓눌렸던 녀석이었다. 또래와 장난도 치고 비릿한 성적 농담도 하면서 꿈을 키워야 할 10대 중후반을, 하루 13시간 이상 2년 이상 형-누나들 사이에서 책상에 앉아 있게 만든 것이 과연 잘 한 일이었을까? 대학이고 뭐고, 고교를 졸업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재수, 아니 삼수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훗날 아해는 말했다. 학원에 오갈 때 휴대폰으로 들었던 힙합과,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피웠던 담배 한 대가 ‘유이한’ 낙이었다.
아해 입시를 마친 뒤, 지금껏 지인들이 입시 조언을 부탁하면 내가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아해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위 명문대학을 가려면, 초등학교 4학년 이후 어찌 됐든 하루 10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하는 이 나라의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고.
이번 11월 하순이면 아해는 ‘찍턴’에 들어간다. 코비드19 때문에 휴가(아해는 군 복무 중이다.)를 못 썼기에, 남은 휴가를 제대 때까지 몰아서 쓰게 된 것이다. 열이틀 휴가 뒤 주말 복귀, 다시 월요일 휴가 뒤 그 다음 주 금요일 밤 귀대. ‘부대에서 주말만 찍고 집으로 턴한다’는 의미에서 ‘찍턴’이라고 한단다.
아해가 찍턴에서 나오면, 10년 전을 회상하면서 영화관과 북한산에 갈 생각이다.
오는 11월 17일 수능을 앞둔 그 모든 푸른 청춘들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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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야기랑 겹쳐서 뭔가 짠하네요..
저도 자퇴하고 수능을 준비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합니다...
자퇴 이후의 삶이 너무 피폐했었으니..
제 아버지도 저런 생각을 하고 계실지..그렇다면 정말 마음 아프네요
유구무언입니다. 행복한 대학 생활 즐기소서.
어쨌든 본인의 선택이니까요 ㅎㅎ 재수학원의 생이 힘들었을것이나 그걸 감안하고 오히려 더 행복하게 지냈을수도 있어요
아하, 그렇군요. 지금은 다 추억이 됐습니다...
제가 한때 고등학교에서 기간제로 일할때 1학년 학생들에게 본인 스스로에게 확신이 있다면 자퇴를 추천한다고 수업시간에 말한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연 제가 학생들에게 할 말이었나.. 하는 생각은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어렵습니다. 저또한 그러하지만 절대다수의 학생들이 메인스트림을 따르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할텐데, 그 메인스트림을 따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심리적 안정을 너무 쉽게 생각하였을까요...
그나저나 저도 전역을 100일정도 남겨놨는데 자제분 찍턴이 저보다 빠르네요ㅋㅋㅋㅋ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이직을 준비하며.. 내년1년은 병행해보고 추후 병가나 면직도 고민중입니다ㅎㅎㅎ
아... 그러셨군요...
한데, 결국은 이직을 생각하시는군요. 선생님 같은 성격에는 교직 생활에 아쉬움 혹은 안타까움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한데... 살다 보니 그렇더군요. 악화가 양화를 쫓더라는...
선생님 같은 분이 교단에 남는 게 좋은데... 하...
항상 글을 읽을 때마다 뭉클한 감정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허 ㅠㅠㅠㅠㅠ
항상 써주시는 좋은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