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국어 소식(과연 바래는 표준어가 될 수 있을까?)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58427594
아래는 그냥 내 노트에 있던 글인데 그냥 공유하고 싶어서 올려 둠.
'어떤 일이 생각대로 이루어지길 기대하다.'를 뜻하는 '바라다'는 어미 '-아'가 붙어 활용되면 '바라아'에서 '바라'가 되는데 이는 동음 탈락의 영향이다. 그러나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바라'를 '바래'로 쓰는 경우가 흔하고 '바람'은 외도의 의미와 겹쳐서인지 '바램'으로 우회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현재의 규정과 기존에 쓰여 온 규칙의 따르면 '바래'와 '바램'은 잘못된 표기이다. 국국원은 이와 관련한 문의를 많이 받았는데 그러한 문의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1. '바라다'를 활용할 때 '바래'로 쓰는 것을 인정하려면 단순히 언중이 많이 쓰인다고 인정하겠다고 할 수 없다. '짜장면'과는 맥락이 다른데 왜냐하면 '바라-바래'는 용언의 활용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용언의 활용은 하나로만 존재하며 '바라다'를 인정하면 '바래다/바래/바래라/바래야지/배랴야만'은 모두 비문이 되고 '바래' 부분을 '바라'로 바꾸어 줘야 한다. 이 '바래'라는 '활용'을 규정화하는 방식은 '여 불규칙'과 비슷하게 처리하는 것 뿐인데 이렇게 처리할 시 '바라/바라야지/바랐어/바라야만' 등은 비문이 된다.
2. '여 불규칙'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전통적으로 '여 불규칙'은 '바라다'에도 존재한다는 말을 펼치지만 사실 '바라다'의 옛말은 'ㅂㆍ라다'이고 남명집언해나 능엄경언해 등의 여러 문헌에서 'ㅂㆍ라(=바라)'로 쓰인 표현이 보인다. 그러나 'ㅂㆍ라야'라는 표현은 일체 보이지 않는다. 즉 "전통적으로 '바라다'는 여불규칙이었느냐?"라고 물어본다면 그러지 않았다라고 대답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니 '바라다'와 '여 불규칙'을 운운할 생각이라면 전통적이라거나 통시적이라거나 이러한 표현을 쓰면 안 된다. 근대까지도 아니고 '현대'에 들어서서 생긴 표현이기 때문이다.
'바라다'의 옛말인 'ㅂㆍ라다'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었는데 주요 의미는 소망하다(wish)였고, 부가적인 의미가 '바라보다'였다. 실제 중세국어 문헌에서는 'ㅂㆍ라'로 시작하는 말이 wish로도, '바라보다'로도 쓰인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 다 같은 형태로 활용되었다. 다의어에서는 활용이 같다. 능엄경언해에서 사용된 'ㅂㆍ라'는'바라보다'의 의미로 사용된 기록도 다수 있지만 wish의 뜻으로도 쓰였다. wish의 뜻으로 쓰인 예시를 몇 개 쓰자면 다음과 같다.
횡혀 다시 사로믈 ㅂ: 행여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分段生ㅇㆍㄹ ㅂㆍ리고 變易을 젼혀 ㅂㆍ라: 분단생사를 버리고 생사를 오로지 바라 (능엄경언해)
ㅂㄷㅡㅅ들 ㅂㆍ라 구펴 좃ㄴㆍㄴ: 뜻을 바라 굽혀 따르는(능엄경언해)
세 번째 예시는 종결형은 아니지만 '-아'가 붙었다 볼 수 있다. 이 당시 '하-'는 '하야'로 활용되었는데 '바라다'는 그와는 달리 불규칙적으로 활용되지 않았다. 근대 국어까지 아래아의 소실로 인해 아래아와 ㅏ가 동시에 존재해 '바라'가 쓰이기도 했고 'ㅂㆍ라'가 쓰이기도 했다. 심지어 '바라아'로 쓰인 용례도 있다. 그러다 아래아가 완전히 소멸되어 현대에 들어서 '바라다'로 변한 것이다. ‘하다’가 ‘하여’, ‘하였다’가 되는 것처럼 불규칙 용언으로 처리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어간의 ‘아’가 ‘애’로 바뀌는 활용이 존재하지 않았고 예전에도 이러한 활용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옛말에서 ‘바라다’는 ‘바래’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불규칙 활용이 아니었던 말이 현대에 와서 갑자기 불규칙 활용을 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므로 일단 국국원 측에서는 불규칙으로 보는 것을 좀 어려워하는 것이다.
3. 동음 탈락의 예외로 보려면 '자라다' 역시 '자래'로, '나무라다' 역시 '나무래'로 써야 하나 그렇지 않다. 즉 ‘바래' 하나를 인정한다는 것은 문법 체계상 예외를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통시적으로나 공시적으로나 같은 음운 구조를 가진 '자라다'나 ‘나무라다'를 '자래', ‘나무래’로 쓰지는 않는데, 만약 ‘바래’가 되는 과정을 문법적으로 설명하려면 어미 ‘-아’가 ‘바라다’ 뒤에서는 ‘-애’로 바뀌는 규칙을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사실 여불규칙과는 다른 것이다. ‘ㅏ+ㅏ → ㅐ'로 보기도 어렵고 ‘ㅏ+ㅕ→ㅐ'로 변하는 경우는 애초에 우리말에 없다. 정말 백번 양보해서 ‘바래'를 인정했다 치자. 그러나 이상한 게 '바램'이다. '바래'는 '하다'의 여불규칙처럼 불규칙으로 인정하면 억지스럽긴 해도 다소 가능은 해 보이는데 '바램'은 '바라다'를 '바래다'로 바꾸지 않는 이상 나올 수 없는 형태이다.(함을 햄으로 안 쓰듯) 언중의 '바라다'의 쓰임을 일률적으로 정리할 규정이 필요한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도 애매한 것이 사실이다.
4. '나무랬다'로도 많이 쓰인다고 하나 문제는 1에서도 얘기했듯 불규칙 활용으로 인정하면 원래의 활용형(규칙 활용)이 틀린 것이 되게 된다는 점이다. '바래'로 쓰면 국국원 입장에선 '바라다'를 불규칙 활용으로 인정하는 꼴이 될 것이다. '바랐어'나 '바랐다', '바라야만', '바라야지', '바라도'는 틀린 표현이 되고 '바랬어/바랬다/바래야만/바래야지/바래도'로 써야 맞는 표현이 될 것이다. '나무라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무라야만/나무랐다/나무라서/나무라도'는 틀리게 되고 '나무래야만/나무랬다/나무래서/나무래도'가 맞게 된다. 국국원 측에서는 이는 일률적으로 정할 규칙이 필요한데 실제로 만들기 힘든 게 사실이다. '라 불규칙'이나 '아 불규칙'으로 부를 수는 있겠지만 '여 불규칙'과 비슷하게 처리한다면 그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지 또한 문제이다.
5. 문맥으로는 구분할 수 있지만 '바래다'의 존재도 표준어로 쉽사리 바꾸게 하기 어렵게 한다. 여러 복합적인 문제가 경계에 겹친 활용의 문제라 볼 수 있겠다.
물론 국국원의 전신인 국어연구소가 1980년대 정도쯤 '나무래'와 '바래'가 많이 쓰였다는 기록을 남겼기에 대략 40~50년 정도가 되었다고 보면 될 것 같긴 한데 문법적인 변화를 인정할 만한가는 모르겠다. 물론 언중의 쓰임이 먼저고 규범이 나중이다. 하지만 그 범위를 설정하고 기존의 규칙 활용을 틀리도록 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지위를 부여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될 듯하다.
앞서 말했던 ‘짜장면 vs 자장면’은 애초에 어원과 발음, 외래어에 관한 문제라 반론이 가능했던 것인데 '바라'는 문법적으로나 어원적으로 ‘바라'로 쓸 확고한 증거가 있다. ‘가아'를 ‘가'로, ‘자라아'를 ‘자라'로 쓰듯이 말이다.
사실 규범주의에 많이 물들어져서 그런 거기도 한데 많이 쓰니까 바꾼다는 조항을 적용하려면, 규범이라는 게 필요없다는 말과 동일하다. 어문 규범과 실제 사용은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 물론 실제 쓰임을 고려하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그 변화를 설명할 때는 ‘타당한 근거’가 존재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 많이 쓰면 그냥 표준어가 되겠네. 짜장면이나 주책이다처럼 인정되는구나'라는 일종의 착각을 한다.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근거를 가지고 바꾼 것인데 말이다. 무턱대고 '사람들이 많이 쓰니까 표준어로 인정하자'라는 주장은 너무 과격하다. '개나 소나 다 쓰는데 이딴 거 가지고 지적을 받아야 되냐?’라는 이유로 규범(문법)적인 이유나 어원적인 이유를 무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내가 제시하는 가장 가능성 있는 해결책은 구어체로서만 인정하거나 방언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가) ‘바라다'의 구어체라고 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냥 '바래' 자체를 '바라'의 구어적인 표현으로 올려두거나 '바라다'를 방언으로 놓고 문법 정보에 "(-아 계열의 어미가 오면 전설모음화가 된다)"라는 느낌의 정보를 추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표준어 제정에는 문제가 있어 보이긴 하나 구어체로 인정하는 것은 괜찮을 것이다.
나) 서울 방언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논의가 이루어진다면 '바래'를 서울/경기 방언으로 처리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경기 방언의 특징은 전설모음화인데 ㅣ 역행 동화가 그 예이다. '하루죙일'이나 '댕기다'가 있다. '핵교'나 '같애' 같은 경우는 협의의ㅣ 역행 동화가 아닌데 이는 서울 지역에서는 전설모음화가 ㅣ에 선행해서 일어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뜻한다. 그러니 '같아>같애'처럼 '바라아>바라애>바래(ㅏ 탈락?)'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서울 방언 화자가 매우 준 것이 현실이기에 앞으로의 연구가 필요하겠으나 서울 방언으로 처리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 같다.
그리고 표준어가 아니라고 쓸 수 없는 표현은 아니고 반드시 표준어만 쓰도록 강제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바래'로 쓴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과 표준어 제정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다른 생각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국국원의 편을 들어주고 싶다.
세줄요약
1. '바라다'를 '바래'로 쓰는 불규칙 활용을 인정할 역사적인 그리고 문법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다
2. 표준어 제정은 단순히 언중이 많이 쓴다고 결정되는 과정이 아니고 충분한 논의와 확실한 근거가 필요하다
3. 단순히 구어적인 표현이나 방언으로 처리할 수는 있겠지만 표준어(규범 표기)로 '바래'를 정하기에는 아직까지 무리가 있어 보인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국어 <<< 리트 피셋 언어논리 경찰대 편입 등등 탐구 << 피셋 상황판단 자료해석...
-
이걸 보는 너 말이다
-
고전시가는 따로 공부할 수 있는 컨텐츠도 많은데 고전소설은 왤케 없는 느낌이지.....
-
생명 커리 개념은 백호 유전은 한종철 섞어들으려고하는데 그럼 백호 섬개완에 있는...
-
수1 엔제 0
2026 이해원 시즌1 vs 볼텍스
-
아 덥다 0
ㅜ 반바지입을껄
-
2026학년도 서강대 참여 지역 박람회 일정( 5월08일 노원 부터 시작) 0
2026학년도 서강대 참여 지역 박람회 일정(.. : 네이버블로그
-
??
-
괜찮을까요? 국어 3등급대긴 합니다
-
독학재수로 국어 백분위 81%에서 99%, 서울대 경영 합격까지 7
우선 인증 박고 시작하겠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냥 갑자기 옛날 생각나서,...
-
인터넷 뚫는법 앉아서 자는법 등등
-
작수랑 재작수 다 연계 꽤 됐나요?
-
공부는 내일의 내가 해준대
-
볼드 처리된 단어의 옳은 뜻을 고르시오 (댓글에 정답) As dawn gets...
-
그러하다
-
문제 수준 팍 꼴아박은거 싹 티남 킬러 배제하면서 정말 교육적으로 훌륭한 24수능...
-
알리오올리오 마제소바 냉면 김치찜 김치찌개 김밥 강아지 고양이 롤체 마크 이불...
-
스킬없이정석으로빨리풀어주기
-
좀 이따가 과외인데
-
중간고사 D-3 1
치타는 슬슬 걷기 시작한다
-
요즘 중간고사 시즌되니까 제 주변 후배들 중에 슬럼프를 슬슬 겪고있는 애들이...
-
물리해야지 3
충격량은p=mv
-
척추치료해줄 남자구함 11
어 변우석닮은 사람 선착순
-
친구중에 6평 약대 9평 전체 2틀 메쟈의 성적 받고 수능 생명 5등급 받고 건대...
-
2017년 2만 달러로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며 인지도를 높인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
피자 다먹었어요 10
간장계란밥도 만들어서 먹을까요
-
그러므로 점심은 뜨끈한 해장국이닷
-
옵치할까 롤할까 4
-
재수생 5월 3일에 콘서트 가는 거 어케 생각하세욥? 5
.... 좀 오반가? 오후까진 공부 쭉 할 건데예..
-
지금은 지웠는데 24수능국어 풀어보고 후기 남겼던 글이었음 독서 2틀 문학 4틀...
-
흠..
-
이과 성향의 끝판왕인 수학이랑 문과 성향의 끝판왕인 철학이나 논리학에 관심이 있는데...
-
어 씨발 4
실수로 고사리 전자렌지에 1분간 돌림 뜨거운고사리는좀그런데
-
으응..?
-
=편식할 최고의 기회 시금치 따위는 내 식탁에 올라올 수 업서 으흐흐
-
근데 대학생이면서 여기에 맨날 글 쓰는 사람은 뭐임ㅋㅋ? 18
점메추 좀
-
infp 인식 어때 11
씹프피라는 나쁜 말은 ㄴㄴ 엠비티아이 물어볼 때마다 말하기 좀 그래
-
1일의 전사 2
105/110 예상 성공적
-
잇올 붕이드라 3
잇올은 점심시간이랑 쉬는시간 몇분이나
-
쓰고남아서 싸게넘겨요 금액 좀 넘어도 댓이나 쪽지주세용
-
나우 암 머 보카킹왕짱 맨이에요 ㅋ
-
뭐가 좋으셨나요???
-
일반인 입장에서 1
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음 보도자료를 참고해 보면 사위(D)가 특혜 채용되어...
-
어라 시발 10
더프 성적표가 왜 지2로 나왔지 마킹 잘못한거임..? 나 지1인데 14점 머지다노
-
차피 땡길만큼 땡겼는데
-
뒤틀린 취향은 확실히 15
결핍에서 온다
-
오늘만 버티자 4
선생님 꿈이 이뤄지길 바라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