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모는 내 친구 [1065628] · MS 2021 · 쪽지

2022-08-11 02: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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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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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뒤늦게 알고 나름 내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적어봄


새벽에 엄마가 도시락 싸준거 받아감. 현역이었지만 학교 비대면이라서 독재 다녔기에 2주 전부터 같은 음식 점심에 먹음. 내용물은 소고기 무국이랑 소세지 야채볶음 계란말이임. 아빠가 경기고 교문 앞까지 태워다줌. 워낙 일찍가서 사람 없는데 그 ㅈ같은 오르막길 오르면서 아무생각도 안듬. 교실 들어가서 주변사람 관상을 보는데 다들 공부 개잘할것 같이 생김. 자연스레 치타는 웃음을 멈춤


 1교시 국어 받고서 화작 문학 비문학 순으로 죠지는데 화작에서 예상보다 5분 더써서 당황함. 그리고 비문학 봤는데 ㅅㅂ 그때 진심 머리가 띵함. 첫번째 지문으로 헤겔 풀었던거 같은데 막혀서 문제 몇개 건너뛰고 경제지문갔는데 또 맨붕옴. 내가 경제파트 너무 약해서 이것만 피하자 했는데 하필 그게 나오더라. 마지막 주차 카메라 지문을 먼저 풀었어야 하는데 시간없어서 황급히 읽고 찍음. 총 7개정도를 감으로 대충 찍은거 같음. 헤겔과 경제파트는 그 소재가 수특에도 있었음. 1교시 끝나고 주변 말 엿듣는데 내 생각보다 쉽다는 뉘앙스길래 절망함. 복도 정처없이 떠돌다가 고딩 친구들 만나서 좆됐다 선언하는데 다들 왠지 태연함. 난 이때 온갖 행복회로 돌려서 1컷 혹은 2 초반 확정으로 나머지 1 찍으면

원하던 연공을 갈수 있다고 세뇌함. 남은 시간 자리에 앉아있는데 집에 있을 엄마와 출근하는 아빠 생각하며 가슴이 미어지더라. 평소에 등교길에 태워주던 아빠가 재수해도 상관없다 하던 말이 진짜가 될것 같아 그때 기분이 ㅈ같았음.

근데 막상 큰일났다는 위기와 패닉이 크게 안옴. 오히려 "ㅈ됐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 라는 생각과 함께 태연해짐.


2교시 수학은 시험지 받으면서 국어가 어려우니 이건 쉽겠지 하는 생각이었음. 실제로 내 생각으론 쉬웠고. 수학은 내 약점이었음. 평소 1컷 간신히 걸침. 원래 같으면 풀고 시간 안남는데 검토까지 하고 나니 15분 남음. 개꿀. 이때 아까 전에 국어에 대해 생각이 들며 착잡해짐. 난 이때까지 국어 모고를 1 놓친적이 없었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2를 받을 생각하니 너무 혼란스럽고 착잡했음.


3교시 영어 평소에 모고치면 30분 남았고 내 유일한 재능이여서 그 시간에 똥싸러감. 남 없을때 화장실 가니 편함.


4교시 탐구. 2차멘붕. 화학1마지막장에서 막힘. 원래 난 19 또는 20  버리고 5지선다 개수로 찍음. 역시 찍고 마킹 간신히 성공.  지구과학 1은 ㄹㅇ 서바보다 어렵단 생각이 들더라 시험장이라 그런지 더 헷갈리고 문제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텐데 안보이는거임. 난 원래 15분컷내고 문제에 숨겨진 함정이랑 나머지 선지들 틀린이유 다 써놓는데 이건 마지막 까지 시간 다씀. 진짜 미친 난이도였음. 마킹하고 선지갯수 세는데 2번이 7개인가 나오더라. 이때 개망했단 생각 들더라. 


끝나고 경기고 내리막길에서 친구 만나서 서로 지구과학 ㅈ됐다고 자랑질하다가 교문에서 아빠 만남. 나름 맨 앞에서있더라.. 기자들 사진도 찍던데 난 황급히 사람 없는데로 가자고 함. 코엑스쪽으로 내려가는데 아빠가 코엑스에서 밥먹자 하더라. 난 시험 개망한거 같아서 그냥 집가자고 했고 택시 내에서 미안하다고 연달아 말했다. 아빠는 논술이라도 잘 마무리하라 하고 그럴줄 알았다고 태연하게 말하더라.아빠가 부정을 안하고 받아들이니까 더 슬픔.. 논술은 준비 1도 안해서 절망적이었고.


집가서 바로 방으로 달려감. 당시 수험생이라고 1년간 내가 안방을 사용했음 ㅋㅋ...  바로 노트북 키고 메가 들어감. 밖에선 아빠가 뭐라도 먹으라고 뭐시킬거냐 묻는데 난 망했는데 모르겠다고 횡설수설함. 아빠는 나폴리 피자 시키고 수능평 보러 뉴스 키심. 난 메가에서 수학 국어 채점했는데 일일히 동그라미칠 자신 없어서 메가 입력란에 다 숫자 넣고 한번에 채점. 국어 4개틀린거 보고 눈을 의심함. 진짜 그 순간 아드레날린 ㅈㄴ 뿜어져나옴. 이정도면 1컷은 확실하니깐. 수학은 예상외로 29를 틀렸는데 상관없었음. 국어 뒤졌다가 살아났는데 그정도야 뭐 안아프니깐. 그러고나서 친구 하나와 전화로 서로 살아있냐 묻고 화학답지 비교함. 얜 원래 나보다 공부 잘하는 애였고 설컴 감. 화학 하나 틀림. 진짜 행복하더라. 아빠한테 가서 연고대 공대 갈수 있을거같다고 말함. 알았다며 수고했다 하더라. 피자 식은거 힘차게 씹어먹음. 다 먹고 지학 답지 올라옴. 그땐 채점표 잘못써서 3개 틀린줄 알았지만 결국은 하나 틀림. 나 가르치던  학원쌤한테서 전화옴. 내 점수 불러주니까 왠일이냐며 의대 가겠다고 말하심. 난 그냥 립서비스인줄 알았고 모르겠다며 지금 혼란스럽다고 말하고 끊음. 좀 뒤에 백분위 뜨고나서 내 수험생활의 2번째로 잘본게 수능이란걸 깨달음. 부모님은 뭐라 안하심. 재수할거같다고 오열하던 애가 갑자기 몇시간 뒤에 웃고있으니까 아마 믿기지 않았겠지. 다음날 반 들어오는데 얘들이 내가 반 들어오는 분위기 보더니 축하해주더라. 



수능 끝난뒤 집와서 몇시간동안의 그 감정과 상황은 아직도 안잊혀짐. 그 뒤로 인생이 무료해지고 가끔씩 난 그때가 그리움. 다시는 못느껴볼 불안과 초조함 희망과 기쁨 정보의 부족에서 오는 혼란스러움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서 진짜 신기한 기분을 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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