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입학식 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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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 축사(소비자아동학부 김난도 교수)
안녕하십니까, 저는 생활과학대학 소비자아동학부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김난도입니다.
평교수인 제가 이렇게 귀한 자리에서 축사를 할 수 있게 되어 커다란 영광으로 생각합니
다. 기회를 주신 총장님과 선배 교수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1963년 3월 2일에 태어났습니다. 3월 2일요. 그렇습니다. 오늘이 제 생일입니다.
어릴 때는 내 생일이 싫었습니다. 학년이 새로 시작되는 날이라 제대로 생일잔치를 해본 적
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늘이 제일 좋습니다. 1년 365일 중에 아무 날이나
생일로 고를 수 있다고 한다면 이제는 주저하지 않고 오늘 3월 2일을 고를 것입니다. 왜냐
하면 저는 선생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일 아침에 전국의 학생들이 모여 일제히 새 학년을
시작한다는데, 선생에게 그보다 더 어울리는 생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사주팔자 같은
것은 믿지 않지만, 그래도 생일만큼은 선생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직업
이 천직이라고 여길 수 있으니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을 가르치게 될 선생으로서 축하와 당부의 말씀을 함께 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53번의 생일 중에서 제가 제일 행복했던 날은 1982년의 오늘이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에 합격해 입학식을 치르는 날이었습니다. 그때는 저 아래 대운동장에서 입학식을 했는데
날씨가 아주 추웠습니다. 바람은 눈물이 나도록 차가웠지만, 가슴은 터질 것처럼 뜨거웠습
니다. 나보다 더 흥분하신 어머니의 표정을 보며 평생 처음 효도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것만
으로도 기뻤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잠시 후 입학식이 끝나거든 뒤에 앉아
계신 어머니, 아버지에게 꼭 진심을 담아 감사하다고 말씀드리십시오. 앞으로 기회가 많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꼭 하십시오.
사실 저희 동기들의 대학생활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나라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잠시 희망을 가졌던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군홧발로 처참하게 짓밟혔습니다. 참
담한 조국의 현실에 눈을 뜬 대학생들에게 자기 자신의 미래를 꿈꾸는 것은 사치 정도가 아
니라 한나 아렌트의 표현을 빌리면, 순전한 무사유의 범죄였습니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엄혹하고 처절한 시기를 저희는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대가 지금보다 더 행복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회는 많았기 때
문입니다. 졸업을 하면 어디든 일자리를 골라서 갈 수 있었습니다. 어떤 영역이든 조금만
진지하게 계속하면 나름 전문가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 세대가 더 총명하
거나 열심히 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대의 행운이었습니다. 1960년대 1인당 국민소
득 100달러가 되지 않던 대한민국이 지금 3만 달러에 육박하기까지, 단군 이래 가장 높은
성장을 누리는 30년 동안 우리는 청춘을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젊은 세대가 힘들다고 합니다. 좋은 데 취직하는 것이 어렵고, 제때 결혼하
는 것이 어렵고, 제대로 된 방 한 칸 마련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유사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졌다고 하는 이 세대가 말이지요. 물론 이것은 시대적 변화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을 누릴 수 없게 됐습니다. 성장의 시대에서 침체의 시대로 접어
들고 있습니다. 경제와 인구의 구조가 변화하면서 그 많았던 기회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습
니다.
하지만 우리를 좌절하게 하는 것은 단지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실업률이 올라간다는 점
때문만은 아닙니다. 경기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었
지만 전 국민이 금반지를 꺼내모으며 재기를 꿈꿨던 때도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를 정말 힘
들게 하는 것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기침체가 영구히 지속될지도 모
른다는 우려 속에서, 이 나라가 난국을 타개할 변화의 역량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절망이 정
녕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얼마 전 인기 있었던 웹툰드라마 <미생>에 ‘사업놀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진짜로 문
제를 해결하지는 않고 그저 열심히 하는 흉내만 내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하지만‘놀이’
를 하고 있는 것은 드라마에서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정치인들은 나라의 분열을 걱정한
다면서 실은 자기 재선을 위해 국민을 이념으로 지역으로 갈라놓고 갈등을 이용하는‘정파
놀이’를, 관료들은 공익을 도모한다면서 실은 자기 예산과 영향력을 확대시키기 위해 나라
의 시스템을 비효율로 몰아넣는‘규제놀이’를, 대기업은 국가경제에 이바지한다면서 단가
후려치기, 사람·기술 빼앗기 등 각종 불공정한 관행으로 시장을 황폐화시키는‘갑질놀이’
를, 일부 고용주들은 취업난을 악용해‘열정페이’다 뭐다 해서 청년 구직자의 노동을 약탈
하는 ‘착취놀이’를, 저를 비롯한 교수들은 이러한 현실적 문제를 수수방관하며 자기 연구
실적만 채우는‘논문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이 교착상태를 풀어낼
리더십은 나라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신입생 여러분,
좋은 날에 답답한 얘기를 꺼내 미안합니다. 저는 오늘의 축사를 준비하면서 새로 대학생활
을 시작하는 여러분에게 어떤 아름다운 축원을 해줘야 할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긴 고민 끝
에 저는 듣기 좋은 덕담보다는 여러분이 앞으로 맞닥뜨려야 할 엄혹한 도전을 솔직하게 얘
기하고 분발을 당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이 소중한
기회를 막연한 인사말로 채우기에는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따끔한 각성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선생이 할 일이기도 하니까요.
지금 여러분이 헤쳐나가야 할 두 가지 도전과제가 있습니다. 나라 안의 도전과 나라 밖의
도전입니다.
먼저 나라 안의 사정을 살펴보면, 가장 걱정되는 것은 ‘세대이기주의’입니다. 영화 <국
제시장>에 이런 대사가 있었습니다.“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게 참 다행이라고”요. 하지만 지금의 기성세대가 나중에 오늘을 뒤돌아볼 때도 이렇게 말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현재의 경제·고용·복지 등 담론의 줄기를 보면 나중에“이 힘
든 세상 풍파를 우리가 아니라 우리 자식이 겪게 해서 참 다행”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높은 자
의 책무라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말은 어느 언론인의 표현을 빌리면‘세니
오르 오블리주(senior oblige)’, 즉 나이 든 자의 책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젊은 자들은 나이
든 자들과 경쟁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기성세대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원과 정보와 인맥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에게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단지 경쟁의 상대가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
갈 희망의 불씨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세대에게 투자하고, 양보하고, 그들의 미숙함을 배려
하지 않는 사회에 내일은 없습니다. 청년들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나라 밖의 도전은 더욱 심상치 않습니다. 작년 여름 저는 연구를 위해 일본을 자주 방문했
습니다. 도쿄에 들를 때마다 혐한 시위대를 만났습니다. 지하철에 붙어 있는 잡지광고며 기
사들의 상당 부분이 한국을 폄훼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다시 유치에 성공
한 올림픽 준비에 들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또 지난 겨울에는 중국에 다녀왔습니다. 갈 때마다 놀랍도록 변하는 곳이지만, 어느새 우
리보다 훌쩍 앞선 나라가 돼 있었습니다. 흔히 중국을 짝퉁의 나라 정도로 낮춰 보는 경향
이 있는데,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중국은 압도적 1위의 외환보유국이고, 이미 우주정거
장, 항공모함, 비행기, 고속철도를 자체 기술로 만들어내는 나라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중국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고도성장을 계속해나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제가 중국에서
가장 놀랍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 또래 젊은 세대의 열정입니다. 흔히‘쥬링허우’라
고 부르는 중국의 90년대생들은 제2의 마윈, 제2의 레이쥔을 꿈꾸며 밤새워 도전의 열기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중국의 대학생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합니다.‘개미굴’이라는 10평 남
짓한 아파트에 십여 명의 학생이 함께 기거하면서 해만 뜨면 도서관으로 뛰어나가 하루종일
공부하다가 돌아옵니다. 우리는 중국 인구의 1/27 정도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중국에 뒤
지지 않으려면 27배 정도 열심히 노력해야 할 텐데, 지금은 중국이 27배 더 노력하는 형국
입니다.
우리를 침략해 식민지로 삼았던 나라에선 증오의 감정이 커지고 있고, 우리와 바다를 맞대
고 있는 나라가 한순간에 세계 최강국으로 자라났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우고,
현명한 자는 역사에서 배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역사적 전환점을 맞고 있습니다.
결국 저는 여러분에게 희망을 겁니다.
단군 이래 최고의 역량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우리 젊은 세대가 교착상태에 빠진 나라에 새
로운 모멘텀을 부여할 세계적인 인재로 성장해주기를 간곡히 바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
해주십시오. 제가 대학시절을 돌이켜 생각할 때 후회되는 일이 참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웠던 것은 역시 치열하게 공부하지 못한 것입니다. 스펙이 아니라 지성의 성장을 위해,
좋은 직업이 아니라 조국의 미래를 위해, 혼신을 다해 공부하십시요.
그러기 위해서 다시 공동체를 이야기할 때입니다. 나 자신만의 이익이 아니라 여러분이 함
께 성장해 나가야 할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이타정신을, 여러분은 이 교정에서 배워나가기
바랍니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선함’을 가슴에 품고 개인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을
때, 인류와 나라와 학교와 그리고 여러분 자신의 성장이 서로 접점을 찾아 만개할 수 있습
니다.
신입생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8848미터를 자랑하는 에베레스트 산입니다. 여기 질문을 하나 드
리겠습니다. 에베레스트 산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왜 제일 높겠
습니까?
답은, 히말라야 산맥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에베레스트 산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이유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히말라야 산맥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레스트 산이 만약 바
다 한가운데 혼자 있었다면 높아봐야 한라산이나 후지산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베레스트 산은 세계의 지붕이라는 티베트 고원의 거봉들과 어깨를 맞대고 있습니
다. 그 준령에서 한 뼘만 더 높으면 바로 세계 최고의 산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나라를, 우리 학교를 히말라야 산맥으로 함께 키워나갑시다. 바다 위에서 혼자
높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나와 함께 가야 할 사회적 약자들과 우
리 공동체를 함께 생각하는, 선하고 책임 있는 인재로 성장해야 합니다. 당신이 여기 앉아
있기 위해 탈락시킨 누군가를 생각하십시오. 당신은 승리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채무자입니
다. 선함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우리 공동체를 히말라야 산맥처럼 만들고 나서, 자신이 한
뼘만 더 성장할 수 있다면, 그때 당신은 바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 되어 있을 것입니
다.
사랑하는 나의 학생들이여,
선해지십시오, 성장하십시오.
당신이 희망입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 3월 2일
김 난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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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책 보고 김난도교수님 많이 까기도 했는데, 적어도 이 분은 자신에게 오는 비난을 긍정적으로 피드백을 하실 수 있는 분이었군요. 제가 뭘 잘났다고 까기만 했는지 좀 반성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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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 때 들었는데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따끔하고 꼭 필요한 말이기도 했구요 ㅎㅎ
근데 글 옆에 초록색으로 오르비 문양붙는건 뭐에요? 그냥궁금해서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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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좋은 말씀을 현장에서 들은 게 참 영광이었네요
다시 읽어봐도 참 좋은 글인듯
와 부럽다....
설의대 치대 가고싶다^^ 즐공하자
우와......... 아직은 아니지만 채무자가 되서 그 빚을 치열하게 갚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문과인데 서울대와 연세대는 격차가 좀 있나요? 경제학과 같은데서
제가 문과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ㄱ격차가 있다고 하긴 하더라구요.
사실 전 어디서든 열심히 하는게 최고라 생각하긴 합니다,
이사람 금수저다 어쩌다해서 깟는데 현실을 정확히 보고 있네요, 지금 우리나라 현실은 놀이뿐이고 싸움뿐임
그 사람의 어떤 주장이 문제가 있다고해도
그 사람의 모든 주장이 문제는 아닌듯합니다
김난도 교수라고해서 그냥 이 글 안 읽을 뻔했는데 한번 읽어보길 잘한듯힙니다
크으..
3월에 스크랩해뒀었는데
수능얼마남지않아서 보고 다시 동기부여받고갑니다
으으으 서울대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