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별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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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 편의 소설과 몇 줄의 시를 써서 내 쇠망해 가는 심신 위에 치욕을 배가 하였다. 이 이상 내가 이 땅에서의 생존을 계속하기가 자못 어려울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나는 하여간 허울 좋게 말하자면 망명해야겠다.
어디로 갈까.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동경으로 가겠다고 호언했다. 그뿐 아니라 어느 친구에게는 전기 기술에 관한 전문 공부를 하러 간다는 둥, 학교 선생님을 만나서는 고급 단식 인쇄술을 연구하겠다는 둥, 친한 친구에게는 내 오 개 국어에 능통할 작정일세 어쩌구, 심하면 법률을 배우겠소까지 허담을 탕탕 하는 것이다.
웬만한 친구는 보통들 속나 보다. 그러나 이 헛선전을 안 믿는 사람도 더러는 있다. 하여간 이것은 영영 빈빈털터리가 되어 버린 이상의 마지막 공포에 지나지 않는 것만은 사실이겠다.
어느 날 나는 이렇게 여전히 공포(空砲)를 놓으면서 친구들과 술을 먹고 있자니까 내 어깨를 툭 치는 사람이 있다. ‘긴상’이라는 이다.
“긴상(이상도 사실은 긴상이다), 참 오래간만이슈. 건데 긴상 꼭 긴상 한번 만나 뵙자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긴상 어떡허시려우.”
“거 누군구. 남자야? 여자야?”
“여자니까 일이 재미있지 않느냐 그런 말야.”
“여자라?”
“긴상 옛날 옥상”
금홍이가 서울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다. 나타났으면 나타났지 나를 왜 찾누?
나는 긴상에게서 금홍이의 숙소를 알아 가지고 어쩔 것인가 망설였다. 숙소는 동생 일심(一心)이 집이다.
드디어 나는 만나 보기로 결심하고 그리고 일심이 집을 찾아가서,
“언니가 왔다지?”
“어유― 아제두, 돌아가신 줄 알았구려! 그래 자그만치 인제 온단 말씀유, 어서들 오슈.”
금홍이는 역시 초췌하다. 생활전선에서의 피로의 빛이 그 얼굴에 여실하였다.
“네놈 하나 보구져서 서울 왔지 내 서울 뭘 허려 왔다디?”
“그러게 또 난 이렇게 널 찾아오지 않었니?”
“너 장가갔다더구나.”
“얘 디끼 싫다. 기 육모초 겉은 소리.”
“안 갔단 말이냐 그럼?”
“그럼.”
당장에 목침이 내 면상을 향하여 날아 들어왔다. 나는 예나 다름이 없이 못나게 웃어 주었다.
술상을 보아 왔다. 나도 한 잔 먹고 금홍이도 한 잔 먹었다. 나는 영변가를 한 마디하고 금홍이는 육자배기를 한마디했다.
밤은 이미 깊었고 우리 이야기는 이게 이 생(生)에서의 영이별이라는 결론으로 밀려갔다. 금홍이는 은수저로 소반전을 딱딱 치면서 내가 한 번도 들은 일이 없는 구슬픈 창가를 한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질러 버려라 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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