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ude​ Debussy [870531] · MS 2019 · 쪽지

2022-05-29 06:4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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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팽이 역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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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모나리사」만을 바라다보니까 맞은편에 앉았는 항라적삼을 입은 비둘기가 참 못난 사람도 다 많다는 듯이 내 얼굴을 보고 나는 그까짓 일에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니까 막 「모나리사」를 보고 싶은대로 보고 「모나리사」는 내 얼굴을 보는 비둘기 부인을 또 좀 조소하는 듯이 바라보고 들어누어 있는 바깥 비둘기가 가만히 보니까 건너편에 앉아있는 「모나리사」가 자기 아내를 그렇게 업신여겨 보는 것이 마음에 좀 흡족하지 못하여서 화를 내이는 기미로 벌떡 일어나 앉는 바람에 들어눕느라고 벗어놓은 구두에 발이 잘 들어맞지 않아서 그만 양말로 담배꽁다리를 밟은 것을 S가 보고 싱그레 웃으니까 나도 그 눈치를 채이고 S를 향하여 마조 싱그레 웃었더니 그것이 대단히 실례 행동 같고 또 한편으로 무슨 음모나 아닌가 퍽 수상스러워서 저편에 앉아 있는 금시계줄과 진흙 묻은 구두가 눈을 뚱그렇게 뜨고 이쪽을 노려보니까 단것장수 할머니는 또 이쪽에 무슨 괴변이나 나지 않았나 해서 역시 눈을 두리번 두리번 하다가 아무일도 없으니까 싱거워서 눈을 도루 그 맞은 편의 금시계줄로 옮겨 놓을 적에 S는 보던 신문을 척척접어서 인생관 가방 속에다가 집어넣더니 정식으로 「모나리사」와 비둘기는 어느 편이 더 어여쁜가를 판단할 작정인 모양으로 안경을 바로잡더니 참 세계에 이런 기차는 다시없으리라고 한 마디 하니까 비둘기와 「모나리사」가 S쪽을 일시에 보는지라 나는 또 창 바깥 논속에 허수아비 같은 황새가 한 마리 나려앉았으니 저것 좀 보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두 미인은 또 일시에 시선을 나 있는 창 바깥으로 옮겨 보았는데 결국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싱그레 웃으면서 내 얼굴을 한 번씩 보더니 「모나리사」는 생각난 듯이 곁에 「비프스테이크」같은 바깥어른의 기름끼 흐르는 콧잔등이 근처를 한번 들여다 보는 것을 본 나는 속마음으로 참 아깝도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S는 무슨 생각으로 알았는지 개발에 편자라는 말이 있지 않으냐고 그러면서 나에게 해태 한 개를 주는지라 성냥을 그어서 불을 붙이려니까 내 곁에 앉았는 갓쓴 해태가 성냥을 좀 달라고 그러길래 주었더니 서울서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간 「카페」 성냥이 되어서 이상스럽다는 듯이 두어번 뒤집어 보더니 집고 들어온 길고도 굵은 얼른 보면 몽둥이 같은 지팽이를 방해 안되도록 한쪽으로 치워노려고 놓자마자 꽤 크게 와직근하는 소리가 나면서 그 길다란 지팽이가 간데 온 데가 없읍니다. 


영감님은 그것도 모르고 담배불을 붙이고 성냥을 나에게 돌려보내더니 건너편 부인도 웃고 곁에 앉아 있는 부인도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웃고 S도 깔깔 웃고 젊은 사람도 웃고 나만이 웃지않고 앉았는지라 좀 이상스러워서 영감은 내 어깨를 꾹 찌르더니 요다음 정거장은 어디냐고 은근히 묻는지라 요다음 정거장은 요다음 정거장이고 영감님 무어 잃어버린 거 없느냐고 그랬더니 또 여러사람이 웃고 영감님은 위선 쌈지 괴불주머니 등속을 만져보고 보따리 한 구퉁이를 어루만져 보고 또 잠간 내 얼굴을 치어다 보더니 참 내 지팽이를 못보았느냐고 그립니다. 


또 여러 사람은 웃는데 나만이 웃지 않고 그 지팽이는 이 구녕으로 빠져 달아났으니 요다음 정거장에서는 꼭 나려서 그 지팽이를 찾으러 가라고 이 철뚝으로 쭉 따라가면 될 것이니까 길은 아조 찾기 쉽지 않느냐고 그리니까 그 지팽이는 돈 주고 산 것은 아니니까 잃어버려도 좋다고 그리면서 태연자약하게 담배를 뻑뻑 빨고 앉았다가 담배를 다 먹은 다음 담뱃대를 그 지팽이 집어먹은 구멍에다 대이고 딱딱 떠는 바람에 나는 그만 전신에 소름이 쫙 끼쳤읍니다. 


다른 사람들도 물론 이때만은 우술 수도없는 업신여길 수도 없는 참 아깃자기한 마음에서 역시 소름이 끼쳤으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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