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ude​ Debussy [870531] · MS 2019 · 쪽지

2022-05-19 11: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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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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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러나 C양의 방에는 지금――고향에서는 스케이트를 지친다는데――국화 두 송이가 참 싱싱하다. 


이 방에는 C군과 C양이 산다. 나는 C양더러 '부인'이라고 그랬더니 C양은 성을 냈다. 그러나 C 군에게 물어 보면 C양은 '아내'란다. 나는 이 두 사람 중의 누구라고 정하지 않고 내 동경생활이 하도 적막해서 지금 이 방에 놀러 왔다. 


언더 더 워치――시계 아래서의 렉처는 끝났는데 C군은 조선 곰방대를 피우고 나는 눈을 뜨지 않는다. C양의 목소리는 꿈같다. 인토네이션이 없다. 흐르는 것 같이 끊임없으면서 아주 조용하다. 


나는 그만 가야겠다. 


"선생님(이것은 실로 이상 옹을 지적하는 참담한 인칭대명사다) 왜 그러세요 ―― 이 방이 기분이 나쁘세요?(기분? 기분이란 말은 필시 조선말은 아니리라) 더 놀다 가세요 ―― 아직 주무실 시간도 멀었는데 가서 뭐 하세요? 네? 얘기나 하세요." 


나는 잠시 그 계간유수(溪間流水) 같은 목소리의 주인 C양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C군이 범과 같 이 건강하니까 C양은 혈색이 없이 입술조차 파르스레하다. 이 오사게 라는 머리를 한 소녀는 내 일 학교에 간다. 가서 언더 더 워치의 계속을 배운다. 


사람이――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 


강사는 C양의 입술이 C양이 좀 횟배를 앓는다는 이유 외에 또 무슨 이유로 조렇게 파르스레한가 를 아마 모르리라. 


강사 는 맹랑한 질문 때문에 잠깐 얼굴을 붉혔다가 다시 제 지위의 현격히 높은 것을 느끼고 그 리고 외쳤다. 


"쪼꾸만 것들이 무얼 안다고――" 


그러나 연이는 히힝 하고 코웃음을 쳤다. 모르기는 왜 몰라 ―― 연이는 지금 방년이 이십, 열여섯 살 때 즉 연이가 여고 때 수신과 체조를 배우는 여가에 간단한 속옷을 찢었다. 그리고 나서 수신과 체조는 여가에 가끔 하였다. 


여섯――일곱――여덟――아홉――열다섯 해――개꼬리도 삼 년만 묻어 두면 황모(黃毛)가 된다든가 안 된다든가 원――수신 시간에는 학감선생님, 할팽(割烹) 시간에는 올드미스 선생님, 국문 시간에는 곰보딱지 선 생님. 


"선생님 선생님 ―― 이 귀염성스럽게 생긴 연이가 엊저녁에 무엇을 했는지 알아내면 용하지." 흑판 위에는 '요조숙녀'라는 액(額)의 흑색이 임리(淋彍)하다. 


"선생님 선생님 ―― 제 입술이 왜 요렇게 파르스레한지 알아맞히신다면 참 용하지." 


연이는 음벽정(飮碧亭)에 가던 날도 R영문과에 재학중이다. 전날 밤에는 나와 만나서 사랑과 장래를 맹세하고 그 이튿날 낮에는 기싱과 호손을 배우고 밤에는 S와 같이 음벽정에 가서 옷을 벗었고 그 이튿날은 월요일이기 때문에 나와 같이 같은 동소문 밖으로 놀러 가서 베제(baiser)했다. S도 K교수도 나도 연이가 엊저녁에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 S도 K교수도 나도 바보요, 연이만이 홀로 눈 가리고 야웅하는데 희대의 천재다. 


연이는 N빌딩에서 나오기 전에 WC라는 데를 잠깐 들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오면 남대문통 십 오간 대로 GO STOP의 인파. 


"여보시오 여보시오, 이 연이가 저 이층 바른편에서부터 둘째 S씨의 사무실 안에서 지금 무엇을 하고 나왔는지 알아맞히면 용하지." 


그때에도 연이의 살결에서는 능금과 같은 신선한 생광(生光)이 나는 법이다. 그러나 불쌍한 이 상 선생님에게는 이 복잡한 교통을 향하여 빈정거릴 아무런 비밀의 재료도 없으니 내가 재산 없는 것보다도 더 가난하고 싱겁다. 


"C양! 내일도 학교에 가셔야 할 테니까 일찍 주무셔야지요." 


나는 부득부득 가야겠다고 우긴다. C양은 그럼 이 꽃 한 송이 가져다가 방에다 꽂아 놓으란다. 


"선생님 방은 아주 살풍경이라지요?" 


내 방에는 화병도 없다. 그러나 나는 두 송이 가운데 흰 것을 달래서 왼편 깃에다가 꽂았다. 꽂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5 


국화 한 송이도 없는 방 안을 휘― 한번 둘러보았다. 잘― 하면 나는 이 추악한 방을 다시 보지 않 아도 좋을 수도 있을까 싶었기 때문에 내 눈에는 눈물도 괼밖에. 


나는 썼다 벗은 모자를 다시 쓰고 나니까 그만하면 내 연이에게 대한 인사도 별로 유루(遺漏)없 이 다 된 것 같았다. 


연이는 내 뒤를 서너 발자국 따라왔던가 싶다. 그러나, 나는 예년 10월 24일경에는 사체(死體) 가 며칠 만이면 상하기 시작하는지 그것이 더 급했다. 


"상! 어디 가세요?" 


나는 얼떨결에 되는 대로, 


"동경." 


물론 이것은 허담이다. 그러나 연이는 나를 만류하지 않는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나왔으니, 자― 어디로 어떻게 가서 무엇을 해야 되누. 


해가 서산에 지기 전에 나는 이삼 일 내로는 반드시 썩기 시작해야 할 한 개 '사체(死體)'가 되어야만 하겠는데, 도리는? 


도리는 막연하다. 나는 십 년 긴――세월을 두고 세수할 때마다 자살을 생각하여 왔다. 그러나 나는 결심하는 방법도 결행하는 방법도 아무것도 모르는 채다. 


나는 온갖 유행약을 암송하여 보았다. 


그리고 나서는 인도교, 변전소, 화신상회 옥상, 경원선 이런 것들도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렇다고――정말 이 온갖 명사의 나열은 가소롭다――아직 웃을 수는 없다. 


웃을 수는 없다. 해가 저물었다. 급하다. 나는 어딘지도 모를 교외에 있다. 나는 어쨌든 시내로 들어가야만 할 것 같았다. 시내――사람들은 여전히 그 알아볼 수 없는 낯짝들을 쳐들고 와글 와글 야단이다. 가등이 안개 속에서 축축해한다. 영경(英京) 윤돈(倫敦)이 이렇다지―― 


 

6 


NAUKA사가 있는 진보초 스즈란도(神保町鈴蘭洞)에는 고본(古本) 야시가 선다. 섣달 대목――이 스즈란도도 곱게 장식되었다. 이슬비에 젖은 아스팔트를 이리 디디고 저리 디디고 저녁 안 먹은 내 발길은 자못 창량(璽崭)하였다. 그러나 나는 최후의 이십 전을 던져 타임스판 상용영어 사 천 자라는 서적을 샀다. 사천 자――사천 자면 많은 수효다. 이 해양(海洋)만한 외국어를 겨드랑에 낀 나는 섣불리 배고파할 수도 없 다. 아― 나는 배부르다. 


진따(ジンタ)――(옛날 활동사진 상설관에서 사용하던 취주악대) 진동야(チンドン屋)의 진따가 슬프다. 


진따는 전원 네 사람으로 조직되었다. 대목의 한몫을 보려는 소백화점의 번영을 위하여 이 네 사 람은 클라리넷과 코넷과 북과 소고(小鼓)를 가지고 선조 유신 당초에 부르던 유행가를 연주한다. 그것은 슬프다 못해 기가 막히는 가각풍경(街角風景)이다. 왜? 이 네 사람은 네 사람이 다 묘령의 여성들이더니라. 그들은 똑같이 진홍색 군복과 군모와 '꼭구마'를 장식하였더니라. 


아스팔트는 젖었다. 스즈란도 좌우에 매달린 그 영란(鈴蘭) 꽃 모양 가등(街燈)도 젖었다. 클라리넷 소리도――눈물에――젖었다. 


그리고 내 머리에는 안개가 자욱이 끼었다. 


영국 윤돈이 이렇다지? 


"이상!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남자의 목소리가 내 어깨를 쳤다. 법정대학 Y군, 인생보다는 연극이 더 재미있다는 이다. 왜? 인생은 귀찮고 연극은 실없으니까. 


"집에 갔더니 안 계시길래!" 


"죄송합니다." 


"엠프레스에 가십시다." 


"좋―지요." 


ADVENTURE IN MANHATTAN에서 진 아서가 커피 한잔 맛있게 먹더라. 크림을 타 먹으면 소설가 구보(仇甫) 씨가 그랬다――쥐 오줌내가 난다고. 그러나 나는 조엘 마크리 만큼은 맛있게 먹을 수 있었으니――MOZART의 41번은 '목성'이다. 나는 몰래 모차르트의 환술(幻術)을 투시하려고 애를 쓰지만 공복으로 하여 적이 어지럽다. 


"신주쿠(新宿) 가십시다." 


"신주쿠라?" 


"NOVA에 가십시다." 


"가십시다 가십시다." 


마담은 루바슈카. 노바는 에스페란토. 헌팅을 얹은 놈의 심장을 아까부터 벌레가 연해 파먹어 들 어간다. 그러면 시인 지용(芝鎔)이여! 이상은 물론 자작의 아들도 아무것도 아니겠습니다그려! 


12월의 맥주는 선뜩선뜩하다. 밤이나 낮이나 감방은 어둡다는 이것은 고리키의「나그네」 구슬픈 노래, 이 노래를 나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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