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공주✨ [1052682] · MS 2021 (수정됨) · 쪽지

2022-05-16 21:4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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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공 일기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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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런 생각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나는 어쩌다가 개발을 전공하게 되었을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나는 모름지기 경제 혹은 경영을 전공할 줄 알았습니다.

인문계이기도 했고, 과학을 싫어하기도 했고, 더군다나 경제 혹은 경영은 당시엔 취업이 굉장히 잘 되어 유망한 과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4의 지금 나는 그것과는 너무도 다른 위치에, 분야에, 패러다임에 안착했습니다. 하지만, 더 웃긴 건 그런 엉터리와 모순이 착종된 현재가 너무도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실력은 잘 없지만, 코딩할 때 너무 재미있고, 전문적인 CS지식을 공부할 때도 너무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더 낯설었습니다. 도대체, 나는 나의 나됨을 어디에서 찾았는가. 왜, 나는 순식간에 이렇게 되었는가....


고민 끝에 답을 찾아보니, 결국은 '4수'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치동에 틀이박혀서, 수능 입시를 준비했지만 사실 그것보다도 내가 더 궁금했던 건, 나의 미래였고 나의 존재였다는 것. 때로는 입시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러셀을 뛰쳐나와서 신논현의 강남 교보문고에 찾아가서 철학책과 소설을 읽기도 했고, 때로는 문학 지문의 뒷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학원을 가지 않고 해당 소설의 추가적인 원문을 읽기도 했습니다. 뿐만인가요. 입시라는 시스템이 너무나도 곤욕스럽고 회의스러워서, 공황장애라는 병을 앓기도 했지요. 그 과정에서 병세와 싸우는 사람들의 에세이를 많이 읽기도 했구요. 그래요, 이 4수라는 시간을 요약해 본다면, '바보스러운 방황'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어리석음 때문에, 4번의 실패는 필연적이었는지 모릅니다.


다만, 그 바보스러움 덕택에, 나는 나를 찾을 수 있었던 듯 싶습니다. 학원을 짼 댓가로 내가 얻은 문학들, 소설들, 예술들, 생각들 속에서 무언가를 '변동'시켜보고 싶은 욕구를  찾았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고, 그것을 '상품화'하면, 나는 돈도 벌고 ... 아니 그것보다 이 세상이 조금은 더 따뜻해지는 데에 나라는 사람이 도움될 수 있지 않을까했습니다. 그런 생각들은 바로 그 바보스러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남들은 어리석다고 얘기했을 지라도, 물음표와 느낌표를 왔다 갔다하며  Maybe라는 단어를 가슴에 푹 새기고 나그네처럼 이리 저리 방황하는 삶이 나는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나의 존재적 소리를, 음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낯선 행복은, 이 바보스러움으로부터 나왔던 것이로구나.


난 앞으로 개발자가 될 겁니다. 다만, 그 개발자로 향하는 길 말입니다. 그것은 정해두지 않을 겁니다. 꿈이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정해지면 꿈이 아닙니다. 남겨둘 때, 방황할 수 있는 여지와 빈칸을 남겨둘 때, 그 진공이야말로 꿈이 되는 것 같습니다. 


햄릿처럼 꿈꾸고, 돈키호테처럼 돌진하는 사람. 여지를 인정하고, 열정을 사랑하는 사람.

정해진 것이 없기에, 어디로든 여행할 수 있는 사람.


그런 개발자가 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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