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ude​ Debussy [870531] · MS 2019 · 쪽지

2022-05-14 07: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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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생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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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초— 10초— 20초— 30초— 일분— 


결코 뒤를 돌아다 보거나 해서는 못쓴다. 어디까지든지 사심없이 패배한 체하고 걷는 체한다. 실심한 체한다. 


나는 사실은 좀 어지럽다. 내 쇠약한 심장으로는 이런 자약한 체조를 그렇게 장시간 계속하기가 썩 어려운 것이다. 


묘지명이라. 일세의 귀재 이상(李箱)은 그 통생의 대작 '종생기' 일편을 남기고 서력 기원후 1937년 정축(丁丑) 3월 3일 미시(未時) 여기 백일(白日) 아래서 그 파란만장(波瀾萬丈)(?)의 생애를 끝막고 문득 졸(卒)하다. 향년 만 25세와 11개월. 오호라! 상심(傷心)커다. 허탈(虛脫)이야. 잔존하는 또 하나의 이상(李箱) 구천(九天)을 우러러 호곡하고 이 한산(寒山) 일편석(一片石)을 세우노라. 애인 정희는 그대의 몰후 수삼인(數三人)의 비첩(秘妾)된 바 있고 오히려 장수하니 지하(地下)의 이상(李箱)아! 바라건댄 명목(瞑目)하라. 


그리 칠칠치는 못하나마 이만큼 해가지고 이 꼴 저 꼴 구지레한 흠집을 살짝 도회(韜晦)하기로 하자. 고만 실수는 여상(如上)의 묘기로 겸사 겸사 메꾸고 다시 나는 내 반생(半生)의 진용(陣容) 후일에 관해 차근차근 고려하기로 한다. 이상(以上). 


역대의 에피그람과 경국의 철칙이 다 내에 있어서는 내 위선(僞善)을 암장(暗葬)하는 한 스무드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실로 나는 내 낙명의 자리에서도 임종의 합리화를 위하여 코로처럼 도색(桃色)의 팔렡을 볼 수도 없거니와 톨스토이처럼 탄식해 주고 싶은 쥐꼬리만한 금언(金言)의 추억도 가지지 않고 그냥 난데없이 다리를 삐어 넘어지듯이 스르르 죽어 가리라. 


거룩하다는 칭호를 휴대하고 나를 찾아오는 '연애'라는 것을 응수하는 데 있어서도 어디서 어떤 노소간(老少間)의 의뭉스러운 선인(先人)들이 발라먹고 내어버린 그런 유훈을 나는 헐값에 걷어드려다가는 제련(製鍊) 재탕(再湯) 다시 써먹는다. 


는 줄로만 알았다가도 또 내게 혼나는 경우가 있으리라. 


나는 찬밥 한 술 냉수 한 모금을 먹고도 넉넉히 일세를 위압할 만한 '고언(苦言)'을 적적(摘摘)할 수 있는 그런 지혜의 실력을 가졌다. 


그러나 자의식의 절정 우에 발돋음을 하고 올라선 단말마의 비결을 보통 야시 국수 버섯을팔러오신 시골 아주먼네에게 서너 푼에 그냥 넘겨주고 그만두는 그렇게까지 자신의 에티켓을 미화시키는 겸허의 방식도 또한 나는 무루(無漏)히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당목(瞠目)할지어다. 이상(以上). 


난마와 같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얼마간 비극적인 자기탐구. 


이런 흙발 같은 남루한 주제는 문벌이 버젓한 나로서 채택할 신세가 아니거니와 나는 태서의 에티켓으로 차 한 잔을 마실 적의 포즈에 대하여도 세심하고 세심한 용의가 필요하다. 


휘파람 한 번을 분다 치더라도 내 극비리에 정선(精選) 은닉(隱匿)된 절차를 오곤(溫古)하여야만 한다. 그런 다음이 아니고는 나는 희망 잃은 황혼에서도 휘파람 한 마디를 마음대로 불 수는 없는 것이다.

 

동물에 대한 고매한 지식? 


사슴, 물오리, 이 밖의 어떤 종류의 동물도 내 애니멀 킹돔에서는 탈락되어 있어야 한다. 나는 이 수렵용으로 귀여이 가엾이 되어 먹어 있는 동물 외의동물에 언제든지 무가내하로 무지하다.

 

또— 


그럼 풍경에 대한 오만한 처신법? 


어떤 풍경을 묻지 않고 풍경의 근원, 중심, 초점이 말하자면 나 하나 '도련님'다운 소행에 있어야 할 것을 방약무인으로 강조한다. 나는 이 맹목적 신조를 두 눈을 그대로 딱 부르감고 믿어야 된다. 


자진(自進)한 '우매(愚昧)', '몰각(歿覺)'이 참 어렵다. 


보아라. 이 자득하는 우매의 절기(絶技)를! 몰각의 절기를. 


백구(白鷗)는 의백사(宜白沙)하니 막부춘초벽(莫赴春草碧)하라.(이상 355면) 


이태백(李太白). 이 전후만고(前後萬古)의 으리으리한 '화족(華族)'. 나는 이태백을 닮기도 해야 한다. 그렇기 위하여 오언절구 한 줄에서도 한 자 가량의 태연자약한 실수를 범해야만 한다. 현란한 문벌이 풍기는 가히 범할 수 없는 기품과 세도(勢道)가 넉넉히 고시(古詩) 한 절쯤 서슴지 않고 생채기를 내어놓아도 다들 어수룩한 체들하고 속느니 하는 교만한 미신(迷信)이다. 


곱게 빨아서 곱게 다리미질을 해놓은 한 벌 슈미즈에 꼬빡 속는 청절처럼 그렇게 아담하게 나는 어떠한 질차에서도 거뜬하게 얄미운 미소와 함께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니까— 


오늘날 내 한 씨족이 분명치 못한 소녀에게 섣불리 딴죽을 걸어 넘어진다기로서니 이대로 내 숙망의 호화유려(豪華流麗)한 종생을 한 방울 하잘것없는 오점을 내이는 채 투시(投匙)해서야 어찌 초지(初志)의 만일(萬一)에 응답할 수 있는 면목(面目)이 족히 서겠는가, 하는 허울좋은 구실이 영일(永日) 밤보다도 오히려 한 뼘 짧은 내 전정(前程)에 대두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완만(漫), 착실(着實)한 서술(敍述)! 


나는 과(過)히 눈에 띠울 성싶지 않은 한 지점을 재재바르게 붙들어서 거기서 공중 담배를 한 갑 사(주머니에넣고) 피워물고 정희의 뻔한 걸음을 다시 뒤따랐다. 


나는 그저 일상의 다반사를 간과하듯이 범연하게 휘파람을 불고 내 구두 뒤축이 아스팔트를 디디는 템포 음향, 이런 것들의 귀찮은 조절에도 깔끔히 정신 차리면서 넉넉잡고 3분, 다시 돌친 걸음은 정희와 어깨를 나란히 걸을 수 있었다. 부질없는 세상(世上)에 제 심각(深刻)하면, 침통(沈痛)하면 또 어쩌겠느냐는 듯싶은 서운한 눈의 위치를 동소문(東小門) 밖 신개지 풍경 어디라고 정(定)치 않은 한 점에 두어두었으니 보라는 듯한 부득부득 지근거리는 자세면서도 또 그렇지도 않을 성싶은 내 묘기 중에도 묘기를 더 한층 허겁지겁 연마(鍊磨)하기에 골돌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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