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ude​ Debussy [870531] · MS 2019 · 쪽지

2022-05-11 07:29:11
조회수 956

종생기(1)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56612633

극유산호(郤遺珊瑚)— 요 다섯 자(宇) 동안에 나는 두 자 이상의 오자를 범했는가 싶다. 이것은 나 스스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워할 일이겠으나 인지가 발달해가는 면목이 실로 약여하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산호(珊瑚) 채찍일랑 꽉 쥐고 죽으리라. 내 폐포파립(廢袍破笠) 우에 퇴색한 망해 우에 봉황이 와 앉으리라. 


나는 내 '종생기(終生記)'가 천하 눈 있는 선비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 놓기를 애틋이 바라는 일념 아래의만큼 인색한 내 맵씨의 절약법을 피력하여보인다. 


일발포성(一發砲聲)에 부득이 영웅이 되고 만 희대의 군인 모(某)는 아흔에 귀를 단 황송한 일생을 끝막던 날 이렇다는 유언 한 마디를 지껄이지 않고 그 임종의 장면을 곧잘 (무사히 후― 한숨이 나올 만큼) 넘겼다. 


그런데 우리들의 레우오치카— 애칭 톨스토이— 는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나선 데까지는 기껏 그럴 성싶게 꾸며 가지고 마지막 오분에 가서 그만 잡았다. 자지레한 유언 나부랭이로 말미암아 70년 공든 탑을 무너뜨렸고 허울 좋은 일생에 가실 수없는 흠집을 하나 내어놓고 말았다. 


나는 일개 교활한 옵서버— 의 자격으로 그런 우매한 성인들의 생애를 방청하여 있으니 내가 그런 따위 실수를 알고도 재범할 리가 없는 것이다. 


거울을 향하여 면도질을 한다. 잘못해서 나는 생채기를 내인다. 나는 골을 벌컥 내인다. 


그러나 와글와글 들끓는 여러 '나'와 나는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그들은 제각기 베스트를 다하여 제 자신만을 변호하는 때문에 나는 좀처럼 범인(犯人)을 찾아내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기에 대저 어리석은 민중들은 '원숭이가 사람흉내를 내이네.' 하고 마음을 놓고 지내는 모양이지만 사실 사람이 원숭이 흉내를 내이고 지내는 바 짜 지당한 전고(典故)를 이해하지 못하는 탓이리라. 


오호라. 일거수일투족이 이미 아담 이브의 그런 충동적 습관에서는 탈각(脫却)한 지 오래다. 반사운동과 반사운동 틈사구니에 끼워서 잠시 실로 전광석화만큼 손꾸락이 자의식의 포로가 되었을 때 나는 모처럼 내 허무한 세월 가운데 한각(閑却)되어 있는 기암(奇岩), 내 콧잔등이를 좀 만지작만지작했다거나, 고귀한 대화와 대화 늘어선 쇠사슬 사이에도 정히 간발을 허용하는 들창이 있나니 그 서슬 퍼런 날〔刃〕이 자의식을 걷잡을 사이도 없이 양단하는 순간 나는 내 명경 같이 맑아야 할 지보(至寶) 두 눈에 혹시 눈꼽이 끼지나 않았나 하는 듯이 적절하게 주름살 잡힌 손수건을 꺼내어서는 그 두 눈을 만지작 만지작 했다거나— 


내 혼백(魂魄)과 사대(四大)의 점잖은 태만성(怠慢性)이 그런 사소한 연화들을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보고 와서) 내 통괄되는 처소에다 일러 바쳐야만 하는 그런 압도적 망쇄(忙殺)를 나는 이루 감당해 내이는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내 지중한 산호편(珊瑚鞭)을 자랑하고 싶다. 


'쓰레기', '우거지' 


이 구지레한 단자(單字)의 분위기를 족하(足下)는 족히 이해하십니까. 


족하는 족하가 기독교식으로 결혼하던 날 네이브 · 앤드 · 아일에서 이 '쓰레기' '우거지'에 근이(近邇)한 감흥을 맛보았으리라고 생각이 되는데 과연 그렇지는 않으십니까. 


나는 그런 '쓰레기'나 '우거지'같은 테잎을— 내 종생기 처처(處處)에다 가련히 심어놓은 자지레한 치레를 위하여— 뿌려 보려는 것인데— 


다행히 박수(拍手)하다. 이상(以上).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