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시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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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었다.
취했다.
몽롱한 가운데 나는 이 땅을 떠나리라 생각했다.
머얼리 동경으로 가 버리리라, 갈 테야 갈 테야 가 버릴 테야(동경으로).
아이 더 놀다 가세요. 벌써 가시면 주무시나요? 네? 송(宋)선생님―
송(宋)선생님은 점(占)을 쳐보나보다. 괘(卦)는 이상(李箱)에게 <고기>를 대접하라 이렇게 나온 모양이다. 그래서 송(宋)군은 나보다도 먼저 일어섰다. 자동차를 타자는 것이다. 나는 한사코 말렸다. 그의 재(財)정을 생각해서도 나는 그를 그의 하숙까지 데려다 주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하숙 이층 그의 방에서 그는 몹시 게웠다. 말간 맥주만이 올라왔다. 나는 송(宋)군을 청결하기 위하여 한 시간을 진땀을 흘렸다. 그를 눕히고 밖으로 나왔을 때에는 유월(六月)의 밤바람이 아카시아의 향기를 가지고 내 피곤한 피부를 간지르는 것이었다. 나는 멕시코에서 코오피를 마시면서 토하면서 울고 울다가 잠이 든 송(宋)군을 생각했다.
순영에게 전화나 걸어 볼까?
순영이? 나 상(箱)이야―송(宋)군 집에 잘 갖다 두었으니 안심헐 일―
오늘은 어쩐지 그냥 울적해서 견딜 수가 없단다. 집으로 가 일찍 잠이나 자리라 했는데 멕시코에―
와두 좋지―헐 이얘기도 좀 있구―
조용히 마주보는 순영의 얼굴에는 사 년 동안에 확실히 피로의 자취가 늘어 보였다. 직업에 대한 극도의 염증을 순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호소한다. 나는 정색하고,
송(宋)군과 결혼하지 응? 그야말루 송(宋)군은 지금 절벽에 매달린 사람이오―송(宋)군이 가진 양심(良心) 그와 배치되는 현실의 박해로 말미암은 갈등 자살(自殺)하고 싶은 고민을 누가 알아주나―
송(宋)선생님이 불현듯이 만나뵙구 싶군요.
십 분 후 나와 순영이 송(宋)군 방 미닫이를 열었을 때 자살(自殺)하고 싶은 송(宋)군의 고민은 사실화하여 우리들 눈앞에 놓여져 있었다.
아로나르 서른 여섯 개의 공동(空洞) 곁에 이상(李箱)의 주소와 순영의 주소가 적힌 종이조각이 한 자루 칼보다도 더 냉담한 촉각을 내쏘면서 무엇을 재촉하는 듯이 놓여 있었다.
나는 밤 깊은 거리를 무릎이 척척 접히도록 쏘다녀 보았다. 그러나 한 사람의 생명은 병원을 가진 의사에게 있어서 마작(麻雀)의 패 한 조각 한 컵의 맥주보다도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한 시간만에 나는 그냥 돌아왔다. 순영은 쩡 쩡 천장이 울리도록 코를 풀며 인사불성된 송(宋)군 위에 엎뎌 입술이 파르스레하다.
어쨌든 나는 코고는 <사(死)체>를 업어내려 자동차에 실었다. 그리고 단숨에 의전병원(醫專病院)으로 달렸다. 한 마리의 세퍼드와 두 사람의 간호부와 한 분의 의사가 세 사람(?)의 환자를 맞아 주었다.
독약은 위에서 아직 얼마밖에 흡수되지 않았다. 생명에는 <별조>가 없으나 한 시간에 한 번씩 강심제 주사를 맞아야겠고 또 이 밤중에 별달리 어쩌는 도리도 없고 해서 입원했다.
시게를 들고 송(宋)군의 어지러운 손목을 잡아 맥박을 계산하면서 한 밤을 새라는 의사의 명령이었다. 맥박은 <백삼십(百三十)>을 드나들면서 곤두박질을 친다. 순영은 자기도 밤을 새우겠다는 것을 나는 굳이 보냈다.
가서 자구 아침에 일찍 와요. 그래야 아침에 내가 좀 자지 둘이 다 지쳐 버리면 큰일 아냐?
동이 훤히 터 왔다. 복도로 유령 같은 입원 환자의 발자취 소리가 잦아 간다. 수도는 쏴―기침은 쿨룩쿨룩―어린애는 으아―
거기는 완연 석탄산수 냄새 나는 활지옥에 틀림없었다. 맥박은 <백(百)>을 조금 넘나보다.
병원 문이 열리면서 순영은 왔다. 조그만 보따리 속에는 송(宋)군을 위한 깨끗한 내의 한 벌이 들어 있었다.
나는 소태같이 써 들어오는 입을 수도에 가서 양치질했다.
내가 밥을 먹고 와도 송(宋)군은 역시 깨지 않은 채다. 오전 중에 송(宋)군 회사에 전화를 걸고 입원 수속도 끝내고 내가 있는 공장에도 전화를 걸고 하느라고 나는 병실에 없었다. 오후 두 시쯤 해서야 겨우 병실로 돌아와 보니 두 사람은 손을 맞붙들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당장 눈에서 불이 번쩍 나면서,
망신―아니 나는 대체 지금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냐 순간 나 자신이 한없이 미워졌다. 얼마든지 나 자신에 매질하고 싶었고 침뱉으며 조소하여 주고 싶었다.
나는 커다란 목소리로,
자네는 미친 놈인가? 그럼 천친가? 그럼 극악무도한 사기한인가? 부처님 허리 토막인가?
이렇게 부르짖는 외에 나는 맵시를 수습하는 도리가 없지 않은가. 울음이 곧 터질 것 같았다. 지난 밤에 풀린 아랫도리가 덜덜 떨려 들어왔다.
태산이 무너지는 줄만 알구 나는 십년(十年) 감수를 하다시피 했네―그래 이 병실 어느 구석에 쥐 한 마리나 있단 말인가 없단 말인가?
순영은 창백한 얼굴을 푹 숙이고 있다. 송(宋)군은 우는 것도 같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면서,
미안하이―
나는 이 이상 더 방 안에 머무를 의무도 필요도 없어진 것을 느꼈다. 병실 뒤 종친부로 통하는 곳에 무성한 화단이 있다. 슬리퍼를 이끈 채 나는 그 화단 있는 곳으로 나갔다. 이름 모를 가지가지 서양 화초가 유월(六月) 볕 아래 피어 어울어졌다. 하나같이 향기 없는 색채만의 꽃들―그러나 그 남국적인 정열이 애타게 목말라서 벌들과 몇 사람의 환자가 화단 속을 초조히 거니는 것이었다.
어째서 나는 하는 족족 이따위 못난 짓밖에 못 하나―그렇지만 이 허리가 부러질 희(喜)극두 인제 아마 어떻게 종막이 되 왔나부다.
잔디 위에 앉아서 볕을 쬐었다. 피로가 일시에 쏟아지는 것 같다. 눈이 스르르 저절로 감기면서 사지가 노곤해 들어온다. 다리를 쭉 뻗고,
이번에야말루 동경으로 가 버리리라―
잔디 위에는 곳곳이 가아제와 붕대 끄트럭이가 널려 있었다. 순간 먹은 것을 당장에라도 게우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울 것 같은 극도의 오예(汚穢)감이 오관(五官)을 스쳤다. 동시에 그 불붙는 듯한 열대성 식물들의 풍염한 화변조차가 무서운 독을 품은 요화(妖花)로 변해 보였다. 건드리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손가락이 썩어문들어져서 뭉청뭉청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마누라 얼굴이 왼쪽으로 삐뚜러져 보이거든 슬쩍 바른쪽으로 한 번 비켜서 보게나―
흥―
자네 마누라가 회령서 났다능 건 거 정말이던가―
요샌 또 블라디보스톡에서 났다구 그리데―내 무슨 수작인지 모르지―그래 난 동경서 났다구 그랬지―좀더 멀찌감치 해 둘 걸 그랬나봐―
블라디보스톡허구 동경이면 남북(南北)이 일만리(一萬里)로구나 굉장한 거리다.
자꾸 삐뚜러졌다구 그랬더니 요샌 곧 화를 내에데―
아까 바른쪽으루 비켜스란 소리는 괜헌 소리구 비켜스기 전에 자네 시각을 정(訂)정―그 때문에 다른 물건이 되다 바른쪽으루 삐두러져 보이드래두 사랑하는 아내 얼굴이 똑바루만 보인다면 시각의 직능은 그만 아닌가―그러면 자연 그 블라디보스톡 동경 사이 남북 만리 거리두 배제처럼 바싹 맞다가스구 말 테니.
(2월 13일 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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