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scha Heifetz [870531] · MS 2019 (수정됨) · 쪽지

2022-05-01 09:02:08
조회수 599

12월 12일(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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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디까지라도 자신을 비판하여 보았고 반성하여 보았다. 


그는 다달이 잊지 않고 적지 않은 돈을 T씨의 아내 손에 쥐어 주었다. T씨의 아내는 그것을 차마 T씨의 앞에 내놓지 못하였으리라. T씨의 아내는 그것을 업에게 그대로 내어주었으리라. 업은 그것을 가지고 경조부박한 도락(道樂)을 탐하였으리라. 우연히 간호부를 만나 해수욕행까지 결정하였으리라. 애비(T씨가)가 다쳐서 드러누웠건마는 집에는 한 번도 들르지 않는 자식, 그 돈을― 그 피가 나는 돈을 그대로 철없고 방탕한 자식에게 내어주는 어머니―그는 이런 것들이 미웠다. C간호부만 하더라도 반드시 유혹의 팔길을 업의 위에 내리밀었을 것이다. 그는 이것이 괘씸하였다. 


그러나 한 장 C간호부의 그 편지는 모든 그의 추측과 단안을 전복시키고도 오히려 남음이 있었다. 


「역시 모―든 죄는 나에게 있다」 


그의 속주머니에는 적지아니한 돈이 들어 있었다. C간호부는 삼층 한귀퉁이 조고만 다다미방에 누워 있었다. 그 품에 전에 볼 수 없던 젖먹이 간난아이가 들어 있었다. 


「C양! 과거는 어찌되었든 지금에 이것은 도무지 어찌된 일이오?」 


「선생님! 아무것도 저는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일생은 이렇게 죄악만으로 얽어서 놓지 아니하면 유지가 안되는 것입니까?」 


「C양! 나는 그 말에 대답할 아무 말도 가지지 못하오. 오해와 용서! 그리기에 인류사회(人類社會)는 그다지 큰 풍파가 없이 지지되어 가지 않소?」 


「선생님! 저는 지금 아무것도 후회치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후회하지 아니하면 아니될 것이니까요. 선생님! 이것을 부탁합니다.」 


C간호부의 눈에서는 맑은 눈물방울이 흘렀다. 그는 C간호부의 내어미는 젖먹이를 의식없이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따뜻한 온기가 얼고 식어빠진 그의 손에 전하여 왔다. 그때에 그는 누워 있는 C간호부의 초췌한 얼굴에서 십여 년 전에 저 세상으로 간 아내의 면영을 발견하였다. 그는 기쁨, 슬픔 교착된 무한한 애착을 느꼈다. 그리고 C간호부의 그 편지 가운데의 어느 구절을 생각내어 보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모―든 C간호부의 일들에 조건 없는 용서―라느니보다도 호의를 붙였다. 


「선생님! 오늘 이곳을 떠나가시거든 다시는 저를 찾지는 말아 주셔요. 이것은 제가 낳은 것이라 생각하셔도 좋고, 안 낳은 것이라 생각하셔도 좋고, 아무쪼록 선생님 이것을 부탁합니다」 


하려던 말도 시키려던 계획도 모두 허사로 다만 그는 그의 포켓 속에 들었던 돈을 C간호부 머리 밑에 놓고는 뜻도 아니한 선물을 품에 안은 채 첫눈 부실거리는 거리를 나섰다. 


「사람이란 그 추억의 사람과 같은 면영의 사람에게서 어떤 연연한 정서를 느끼는 것인가」 


이런 것을 생각하여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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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의 병세는 겨울에 들어서 오히려 점점 더하여 가는 것이었다. 전신은 거의 뼈만 남고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눈과 입 이 둘뿐이었다. 그 방 웃목에는 철 아닌 해수욕 도구로 차 있었다. 업은 앉아서나 누워서나 종일토록 눈이 빠지게 그것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아버지― 말쑥한 새 기와집 안방에 가 누워서 앓았으면 병이 나을 것 같애― 아버지 기와집 하나 삽시다. 말쑥하고 정결한……」 


업의 말이었다는 이 말이 그의 귀에 듣자 어찌 며칠이라는 날짜가 갈 수 있으랴. 즉시 업의 유원은 풀릴 수 있었다. 새 집에 간 지 이틀, 업은 못 먹던 밥도 먹었다. 집안 사람들과 그는 기뻐하였다. 그저 한없이… 


그러나 이미 때는 돌아왔다. 사흘되던 날 아침 (그 아침은 몹시 추운 아침이었다) 업은 해수욕을 가겠다는 출발이었다. 새 옷을 갈아 입고 방문을 죄다 열어 놓고 방 웃목에 쌓여 있는 해수욕 도구를 모두 다 마당으로 끄집어 내게 하였다. 그리고는 그 위에 적지 않은 해수욕 도구의 산에 알콜을 들어부으라는 업의 명령이었다. 


「큰아버지께 작별의 인사를 드리겠으니 좀 오시라고 그래 주시요. 어서 어서 곧― 지금 곧」 


그와 업의 시선이 오래― 참으로 오래간만에 서로 마주치었을 때 쌍방에서 다 창백색의 인광을 발사하는 것 같았다. 


「불! 인제 게다가 불을 지르시오」 


몽몽한 흑연(黑煙)이 둔한 음향을 반주시키며 차고 건조한 천공을 향하여 올라갔다. 그것은 한 괴기(怪氣)를 띄운 그다지 성(聖)스럽지 않은 광경이었다. 


가련한 백부의 그를 입회시킨 다음 업은 골수에 사무친 복수를 수행하였다(이것은 과연 인세의 일이 아닐까? 작자의 한 상상의 유희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일까?) 뜰 가운데에 타고 남아 있는 재부스러기와 조곰도 못함이 없을 때까지 그의 주름살 잡힌 심장도 아주 새까맣도록 다 탔다. 


그날 저녁때 업은 드디어 운명(殞命)하였다. 동시에 그의 신경의 전부는 다 죽었다. 지금의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아득하고 캄캄한 무한대의 태허(太虛) 가 있을 뿐이었다. 


(여― 요에헤―요) 그리고 종소리 상두군의 입 고운 소리가 차고 높은 하늘에 울렸다. 


그의 발은 마치 공중에 떠서 옮겨지는 것만 같았다. 심장이 타고 전신의 신경이 운전을 정지하고― 그의 그 힘없는 발은 아름다운 생기에 충만한 지구(地球) 표면에 부착될 만한 자격도 없는 것 같았다. 


그의 눈앞에서는 그 몽몽 한 흑연― 업의 새 집 마당에서 피어오르던 그 몽몽한 흑연의 일상이 언제까지라도 아른거려 사라지려고는 하지 않았다. 


뼈만 남은 가로수(街路樹)도 넘어가고 나머지 빈약한 석양(夕陽)에 비추어가며 기운 시진해 하는 건축물들도 공중을 횡단하는 헐벗은 참새의 떼들도― 아니 가장 창창(蒼蒼)하여야만 할 대공(大空) 그것까지도― 다―한 가지 흑색으로밖에는 그이 눈에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의 호흡하고 있는 산소(酸素)와 탄산와사의 몇 ‘리틀’도 그의 모세관(毛細管)을 흐르는 가느다란 핏줄의 그 어느 한 방울까지도 다 흑색 그 몽몽한 흑연과 조곰도 다름이 없는―이 아니라고는 그에게 느끼지 않았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 아니― 이것이 나일까― 이것이 무엇일까. 나일까, 나일 수가 있을까」 


가로등 건축물 자동차 피곤한 마차와 짐구루마― 하나도 그의 눈에 이상치 아니한 것은 없었다. 


「저것들은 다 무슨 맛에 저짓들이람!」 


그러나 그의 본기를 상실치는 아니한 일신의 제 기관들은 그로 하여금 다시 그의 집에 돌아가게 하지 않고는 두지 않았다. 


손을 들어 그의 집 문을 밀어 열려 하여 보았으나 팔뚝의 관절은 굳었는지 조곰도 들리지는 않았다. 소리를 질러 집안 사람들을 불러보려 하였으나 성대는 진동관성(振動慣性)을 망각(忘却)하였는지 음성(音聲)은 나오지 아니하였다. 


「창조의 신(創造神)은 나로부터 그 조종(操縱)의 실줄[絲線]을 이미 거두었는가?」 


눈썹 밑에는 굵다란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도 그것을 감각할 수 없었다. 그위 등 뒤에에 웬 사람인지 외투에 내려앉은 눈을 터느라고 옷자락을 흔들고 있었다. 


「무엇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 


「응? 누구― 누구요」 


「왜 그렇게 놀라나? 날세 나야」 


M군이었다. 병원에서 이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업이가 갔어」 


「응? 기어코?」 


두 사람은 이 이상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둠침침한 그의 방 안에는 몇 권의 책이 시체(屍體)와 같이 이곳 저곳에 조리 없이 산재하여 있을 뿐이었다. 


위풍이 반자 를 울리며 휙 스쳤다. 


「으아―」 


「하하 잠이 깨였구나. 잘 잤느냐, 아아 울지 마라. 울 까닭은 없지 않느냐. 젖 달라고, ―아이 ‘고무’ 젖꼭지가 어디 갔을까. 우유(牛乳)를 뎁히어 놓았는지 웬― 아아아 울지 마라, 울지 말아야 착한 아이이지. ―아― 이런이런!」 


가슴에 끓어오르는 무량한 감개를 그는 억제할 수 없었다. 그저 쏟아져 흐르기만 하는 그 뜨거운 눈물을 그 어린것의 뺨에 부비며 씻었다. 그리고 힘껏힘껏 그것을 껴안았다. 어린것은 젖을 얻어먹을 수 있을 때까지는 염치 없는 울음을 그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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