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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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또한 그의 절름발이의 발길은 T씨의 집 문지방을 넘어섰다. T씨의 아내만이 만면한 수색으로 그를 대하여 주었다. 물론 이야기 있을 까닭이 없었다. 비스듬히 열린 어둠컴컴한 방문 속에서는 T씨의 앓는 소리 섞인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좀 어떤가요?」
「차차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의사는?」
「다녀갔습니다.」
「무어라고 그럽니까요?」
「염려할 것 없다고.」
그만하여도 그의 마음은 기뻤다. 마루 끝에 걸터앉아 이마에 맺힌 땀을 씻으려 할 때 그의 머리 위 하늘은 시커멓게 흐리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가보다 하는 사이에 주먹 같은 빗방울이 마당의 마른 먼지를 폭발시키기 시작하였다. 서늘한 바람이 한번 휙 불어 스치더니 지구를 싸고 있는 대기는 벼란간 완연 전쟁을 일으킨 것 같았다. T씨의 초가지붕에서는 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는 더러운 액체가 줄줄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치어다보았다. 그저 무한히 검기만 하였다. 다만 가끔 번쩍거리는 번개가 푸른 빛의 절선을 큰 소리와 함께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얼마나 새롭고 감사의 것일 것이었으랴마는― 그에게는 다만 그의 눈과 귀에 감각되는 한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새로울 것도 감사할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피곤한 인생― 그는 얼마 동안이나 멀거니 앉아 있다가 정말 인간들이 내어다버린 것 모양으로 앉아 있는 T씨의 앞에 예의 것을 내어밀었다. T씨의 아내는 그저 고개를 숙이었을 뿐이었고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그는 또 거북한 기분 속에서 벗어나려고,
「업이는 어딜 갔나요 요새는 도무지 볼 수가 없으니― 더러 들어앉아서 T 간병도 좀 하고 하지.」
「벌써 나간 지가 닷새― 도무지 말을 할 수도 없고.」
「왜 말을 못하시나요.」
「…………」
우연한 회화의 한 토막이 그에게 적지아니한 의아의 파문을 일으키었다.(속으로 분하였다)
「에― 못된 자식― 애비가 죽어 들어 누웠는데.」
그는 비 오는 속으로 그대로 나섰다. 머리 위에서는 우뢰와 번개가 여전히 끊이지 아니하고 일었다.
「신은 이제 나를 징벌하려 드는 것인가.」
「나는 죄가 없다― 자― 내가 무슨 죄가 있는가 좀 보아라― 나는 죄가 없다!」
그는 자기의 선인임을 나아가 역설하기에는 너무나 약한 인간이었다. 자기의 오직 죄 없음을 죽어가며 변명하는 데 그칠 줄밖에는 몰랐다.
「만인의 신! 나의 신! 아! 무죄!」
모든 것은 걷어잡을 수 없이 뒤죽박죽이었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빗속에서 번개와 어울어져서 번쩍이었다.
그것이 벌써 찌는 듯한 여름 어느 날의 일이었었다면 세월은 과연 빠른 것이다. 축 늘어진 나뭇잎에는 윤택이랄 것이 없었다. 영원히 윤택이 나지 못할 투명한 수증기가 세계에 차 있는 것 같았다.
꼬박꼬박 오는 졸음을 참을 수 없어 그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무거운 발길을 옮기어 놓으며 있었다. 서로 만나는 사람은 담화를 하는 것도 같았다. 장사도 지나갔다. 무엇이라고 소리높이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입만 뻥긋거리는 데에 그치는 것같이 소리나지 아니하였다. ‘고요한 담화인가’ 그에게는 그렇게 생각이 되었다. 벽돌집의 한 덩어리는 구름이 해를 가렸다 터놓을 때마다 흐렸다 개였다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지극히 고요한 이동(移動)이었다. 그의 윗 눈썹은 차차 무게를 늘리는 것 같았다. 얼마 가지 아니하여는 아랫 눈썹 위에 가만히 얹혔다. 공기가 겨우 통할만한 작은 그 틈에서는 참을 수 없는 졸음이― 그것도 소리없이― 새어나왔다.
병원은 호흡(呼吸)을― 불규칙(不規則)한 호흡을 무겁게 계속하고 있었다. 그 불규칙한 호흡은 그의 졸음에 혼화되어 저으기 얼마간 규칙적인 것같이 보였다.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아래층에서 들렸다. 그러나 그것도 그의 엿가락처럼 늘어진 졸음의 줄을 건드려 볼 수도 없었다. 한번 지나가는 바람과 같았다. 그 뒤에는 또 피곤한 그의 졸음이 그대로 계속되어 갔을 뿐이다.
그가 있는 방 ‘도어’가 이상한 음향을 내이며 가만히 열렸다. 둔(鈍)한 슬리퍼 소리가 둘, 셋, 넷 하고 하나가 끝나기 전에 또 하나가 났다. 저절로 돌아가는 도어의 장식[蝶番]은 도어를 도어틀[額框] 틈 사이에― 무거운 짐을 내려 놓는 모양으로 갖다 낑끼웠다. 그리고는 가느다란 숨소리―혹 전연 침묵이었는지도 모를― 남아 날 듯한 비중(比重) 늘은 공기가 실내(室內)에 속도 더딘 파도를 장난하고 있었다.
일분― 이분― 삼분……
「선생님! 선생님! 주무세요? 선생님.」
C간호부(看護婦)는 몇 번이나 그의 어깨를 흔들어 보았다. 그의 어깨에 닿은 C간호부의 손은 젊디 젊은 것이었다. 그는 쾌감 있는 탄력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때문에 더욱이나 졸음은 두께 두꺼운[厚] 것이 되어갔다.
「선생님! 잠에 취하셨세요? 선생님!」
구루마 바퀴 도는 소리― 매암이 잡으러 몰려 다니는 아이들의 소리―이런 것들은 아직도 그대로 그의 귓바퀴에 붙어 남아 있어서 손으로 몰래 훑으면 우수수 떨어질 것도 같았다. 그렇게 그의 잠! 졸음!은 졸음 그것만으로 단순한 것이었다.
장주(壯周)의 꿈 과 같이―눈을 비비어 보았을 때 머리는 무겁고 무엇인가 어둡기가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 짧은 동안에 지나간 그의 반생의 축도를 그는 졸음 속에서도 피곤한 날개로 한 번 휘거쳐 날아 보았는지도 몰랐다. 꿈을 기억할 수는 없었으나 꿈을 꾸었는지도 혹은 안 꾸었는지도 그것까지도 알 수는 없었다. 그는 어디인가 풍경 없는 세계에 가서 실컷 울다 그 울음이 다하기 전에 깨워진 것만 같은 모―든 그의 사고(思考)의 상태는 무겁고 어두운 것이었다.
「선생님! 잠에 취하셨세요? 퍽 곤하시지요 깨워 드려서― 곤하신데 주무시게 둘걸!」
그는 하품을 한 번 큼직하게 하여 보았다. 머리와 그리고 머리에 딸리지 아니하면 아니될 모든 것은 한 번에 번쩍 가벼워졌다. 동시에 짧은 동안의 기다란 꿈도 한 번에 다― 날아간 것과 같았다. 그리고는 그의 몸은 또다시 어찌할 수도 없는 현실의 한모퉁이로 다시금 돌아온 것 같았다.
「선생님! 그리기에 저는 선생님께 아무런 짓을 하여도 관계치 않지요! 다 용서해 주세요」
「그야!」
「선생님 졸리셔서 단잠이 폭 드신 걸 깨워 놓아―서 그래도 선생님은 저를 용서해 주시지요」
「글쎄!」
「용서하여 주시고 싶지 않으세요? 선생님」
「혹시!」
「선생님 오늘 일은 용서하여 주시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렇지만은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더위에 괴로우신 선생님을 잠깐만 버려도 그것은 정말 선생님 용서해 주실는지요」
「즉 그렇다면!」
「며칠 동안만 선생님 곁을 떠나 더위의 선생님을 내어버리고 저만 선선한 데를 찾아서 정말 잠깐 며칠 동안만―선생님 혹시 용서해 주실 수가 있을는지요? 정말 며칠 동안만!」
「선선한 데가 있거든 가오. 며칠 동안만이랄 것이 아니라 선선한 것이 싫어질 때까지 있다 오오. 제 발로 걷겠다 용서 여부가 붙겠소? 하하」
그의 얼굴에서는 웃을 때에 움직이는 근육이 확실히 움직이고는 있었다. 그러나 평상시에 아니 보이던 몇 줄기의 혈관이 뚜렷이 새로 보였다.
「선생님 그렇게 하시는 것은 싫습니다. 선생님 저를 미워하십니까? 저를 미워하시지는 않으시지요. 절더러 어디로 가라고 그러시는 것입니까? 그러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 회화에는 나는 관계가 없는 것 같소 하하, 그러나 다 천만의 말씀이오」
「그러시면 못 가게 하시는 걸 제가 졸르다 졸르다 겨우 허락―용서를 받게―이렇게 하셔야 저도 가는 보람도 있고 또 가고 얼른 오고― 선생님도 보내시는― 용서하시는 보람이 계시지 않습니까?」
「허락할 것은 얼른 허락하는 것이 질질 끄으는 것보다 좋지」
「그것은 그렇지만 재미가 없습니다」
「나는 늙어서 아마 그런 재미를 모르는 모양이오.」
「선생님은!」
「늙어서! 하하……」
돌아앉은 C간호부는 품 속에서 손바닥보다도 작은 원형의 거울을 끄집어내어 또 무엇으로인지 뺨, 이마를 싹싹 문지르고 있었다. 잊지 않은 동안 같이 있던 그들 사이였건마는 그로서는 실로 처음 보는 일이오 그의 눈에는 한 이상한 광경으로 비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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