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17)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56361573
T씨에 관한 그의 근심은 그가 그의 생에 대한 신조의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커가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 원인이 어느 곳에 있든지는 하여간 그가 T씨의 집을 나온 것은 한낱 도의적으로만 생각할 때에는 한 ‘잘못’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그의 그러한 결정적 일이 동인(動因)에 있어서는 추호의 ‘잘못’도 섞이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그가 변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역설할 수까지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인상(人相)이 몹시 나빠서 그랬던지 M군의 가족으로부터도 그는 환영받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M군의 어린아이들까지도 딸치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 때문에 자신의 불복을 느끼거나 혹은 M군의 집을 떠날 생각이나 다시 T씨의 집으로 들어갈 생각 같은 것은 하지도 아니하였다. 그까짓 것들은 그에게 있어 별로 문제 안되는 자기는 그 이상 더 크나큰 문제에 조우하여 있는 것으로만 여겼다. 밤이면 밤마다 자신의 실추(失墜)된 인생을 명상하고 멀지아니한 병원을 아침마다 또 저녁마다 오고가는 것이 어찌 그다지 단조할 것 같았으나 그에게 있어서는 실로 긴장 그것이었다. 언제나 저는 다리를 이끌고서 홀로 그 길과 그 길을 오르내리는 것은 부근 사람들에게 한 철학적 인상까지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에게 말 한마디나 한 번의 주의를 베풀어 보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그러한 똑같은 모양으로 가끔 T씨의 집을 방문한다. 그것은 대개는 밤이었다. 그가 넉 달 동안 T씨의 문지방을 넘어 다녔으나 그가 T씨를 설복할 수는 없었다.
「오너라 같이 가자!」
「형님에게 신세 끼치고 싶지 않소」
그들의 회화는 일상에 이렇게 간단하였다. 그리고는 그 뒤에 반드시 길다란 침묵이 끝가지 낑기우고 말고는 하였다. 때로는 그가 눈물까지 흘리어가며 T씨의 소매에 매어달려 보았으나 T씨의 따뜻한 대답은 얻어들을 수는 없었다.
늦은 봄의 저녁은 어지러웠다. 인간과 온갖 물상과 그리고 그런 것들 사이에 낑기워 있는 공기까지도 느른한 난무(亂舞)를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젖빛 하늘은 달을 중심으로 하여 타기만만(墮氣滿滿) 한 폭죽(爆竹)을 계속하여 방사하고 있으며 마비된 것 같은 별들은 조잡한 회화(會話)를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온갖 것들은 한참동안만의 광란에 지쳐서 고요하다. 그러나 대지는 넘치는 자기 열락을 이기지 못하여 몸 비트는 것같이 저음(低音)의 아우성 소리를 그대로 단조로이 헤뜨리고만 있는 것도 같았다. 그 속에 지팡이를 의지하여 T씨의 집으로 걸어가는 그의 모양은 전연히 세계에 존재할 만한 것이 아닌만치 타계에서 꾸어 온 괴존재라도 같았다. 물론 그 자신은 그런 것을 인식할 수 없었으나(또 없었어야 할 것이다. 만일 그가 그런 것을 인식할 수 있었던들 그가 첫째 그대로 살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니까) 때로 맹렬한 기세로 그의 가슴을 습격하는 치명적 적요는 반드시 그것을 상증한 것이거나 적어도 그런 것에 원인되는 것이었다. 보는 것과 듣는 것과 그리고 생각하는 것에 피곤한 그의 이마 위에는 그의 마음과 살을 한데 쥐어 짜내어 놓은 것과도 같은 무색 투명의 땀이 몇 방울인가 엉키었었다. 그는 보기 싫게 절며 움직이는 다리를 잠시 동안 멈추고 그 땀을 씻어가면서 ‘후―’ 한숨을 쉬었다.
「아― 인생은 극도로 피로하였다」
T씨의 문지방을 그는 그날 밤에 또한 넘어섰다. 그리고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사양하는 듯한 옅은 목소리로
「업이야― 업이야」를 불렀다.
T씨는 아직 일터에서 돌아오지 아니하였었다. 업이도 어디를 나갔는지 보이지 아니하였다. T씨의 아내만이 희미한 불 밑에서 헐어빠진 옷자락을 주무르고 앉아 있었다. 편리하지 아니한 침묵이 어디가지라도 두 사람의 사이에 심연을 지었다. 그는 생각과 생각 끝에 준비하였던 주머니의 돈을 꺼내어 T씨의 아내의 앞에 놓았다.
「자― 그만하면― 그만큼이나 하였으면 나의 정성을 생각해 주실게요― 자―」
몇 번이었던가 이러한 그의 피와 정성을 한데 뭉치어 (그 정성은 오로지 T씨 한 사람에게 향하여 바치는 정성이었다느니보다도 그가 인간 전체에게 눈물로 헌상하는 과연 살신적 정성이었다) T씨들의 앞에 드린 이 돈이 그의 손으로 다시금 쫓기어 돌아온 것이 헤아려서 몇 번이었던가. 그 여러 번 가운데 T씨들이 그것을 받기만이라도 한 일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그러나 참으로 개[犬]와 같이 충실한 그는 이것을 바치기를 잊어버리지는 아니하였다. 일어나는 반감의 힘보다도 자기의 마음이 부족하였음과 수만의 무능하였음을 회오하는 힘이 도리어 더 컸던 것이다.
T씨의 아내는 주물르던 옷자락을 한편에 놓고 핏기 없는 두 팔을 아래로 축 처뜨리었다. 그러나 입은 열릴 것 같기도 하면서 한 마디의 말은 없었다.
「자― 그만하였으면― 자―」
두 사람의 고개는 말없는 사이에 수그러졌다. 그의 눈에서 굵다란 눈물이 더 뚝뚝 떨어졌을 때에 T씨의 아내의 눈에서도 그만 못지 아니한 눈물이 흘렀다. 대기는 여전히 단조로이 울었다.
「자― 그만하면―」
「네―」
그대로 계속되는 침묵이 그들의 주위의 모든 것을 점령하였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꾸준추!좋아요 1 답글 달기 신고
-
질받 0
.
-
잠 충분히 못 자고 밥 잘 안먹어서 그른가 ㅋㅌㅌㅌㅋ 머리가 핑핑 돌아... 수명...
-
하루에 미적 1시간 수1 1시간 수2 1시간에 1시간 추가로 해서 수학만 4시간...
-
라고 생각하는 저 딸피인가요? 근데 틀닥들 보고 딸피라고 하는거 먼가 구라같은데...
-
작수 23414 백분위 89 84 97 6x
-
매디칼은 쉽지 않구나.
-
자기 허수라면서 2등급이라고 함 3등급 후반은 한강 갑니더.....
-
어차피모름
-
. 0
몬가 입맛을 잃었다 그냥 안먹고 싶은디 먹으러옴 ㅇㅁㅇ
-
약간 잡생각이 덮쳐오는느낌? 진짜 그만하고싶은데 조절이 안 되니까 잡생각이 들기...
-
2025학년도 한정 학부로는 안뽑는다는거같은데... 메디컬 준비하는 수험생으로써...
-
흰색으로 계속 떠요
-
기출 뭘로할까 고민즁인데.
-
노인과 N수생 0
어두운 밤길, 굽이진 산길에 한 서생이 쉬고 있었다. 서생은 가쁜 숨을 몰아쉬고,...
-
수학내신 망함 2
서울 일반고인데요.. 고2 인데 내신수학이 처음으로 2뜰거같은데 어떡하죠......
-
인강안듣고 혼자하려는데
-
건데셍 어셈블 3
건데 근처 혼밥 추천 좀 기기
-
궁그미..
-
재밌음 수험생일땐 개노잼이었는데
-
시발 6이라고 그냥 나 죽자 와 이렇게 막판에 3.8점 짜리를 통으로 날리네 미쳤구나 내가
-
설마 정시 모집인원 전부 내신반영하려나
-
슈퍼싸이 vs 골든맥앤
-
무지성 N수박기 방지용인가
-
중간고사기간이라 시험본거 말곤 딱히 이야기할게 없는데... 노잼티비 될듯..그렇다고...
-
저 방정맞은 다리를 어떻게 할꼬
-
N수생 늦깍이 혼자 공부하시는 분들 캠스터디 단톡방 들어오실 분~ 0
안녕하세요. 집에서 혼자 공부하시는 만학도 분들 중 캠스터디 하실 분 계시나요?...
-
수험판뜨고봐도 0
이미지쌤은 이쁘구나
-
아니 진짜 해본 사람들만 제발 내신에서는 100점 맞고 싶다... 저게 그냥...
-
수시러들 중에 12
바이브온 같이 ai 학종 분석 프로그램? 같은 거 써보신 분 계신가요?
-
오늘 한것 나비효과~11강 일기. 너무 피곤함. 머리가 안움직임 내일 친구들이랑...
-
오래쓰고싶어
-
수학 커리 3
현역부터 삼수까지 쭉 현우진 들었었는데 신성규 쌤 더프 해설 보니까 진짜 좀 지리는...
-
돈이업어 3
그지먼지탱이
-
저는 피어싱 ㅇㅇ… 고3때 첫 3모 망하고 스트레스 받을때마다 뚫었더니 지금...
-
수시하면됨 ㅇㅇ 행복하다
-
저녁 추천 좀 3
배고파여
-
친구가 곧 설대말고도 다른곳들도 내신반영 할수도 있다던데 8
ㄹㅇ임? 그래사 내신을 못놓는대 아예 정시로돌려도
-
처음에 이 시리즈를 계획했을 때는 오르비에 해당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무의미한 글이...
-
입시데이인지 그거 아는 이야기만 나오길래 자습할 분위기도 아니고해서 점심만 먹고...
-
한지 ㅈㄴ재미없다 진짜 14
지구과학이 그립다……….. 나름 69만점에 수능도 1컷이었는데…………… 누나가...
-
볼때마다 웃기네
-
집갈때쯤 나왔으면 좋겄다
-
지금 고2인데 지금 제 실력(내신 3~4등급정도 뜰듯)으로는 언제 한번 빡세게 다시...
-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요 수학2등급, 물리 3등급입니다
-
내 친구들은 다 술 안좋아해서 그런지 무슨 재미로 먹는지 잘 모르겠음 마실일 있으면...
-
문제집 추천해드립니다 51
국영수 과목들 문제집 등급대 말해주시면 까리한거로 추천해드려용
-
한번 흥미있게 본 만화가 알고보니 ㄱㅊ인것에 대하여 2
(대충 얼탱짤) ㄹㅇ어이가없네 이게 그설정이라고??
-
국어 개허수의 잘못된 생각 찾아주면 100덕 드림 16
3. 치평요람은 자치통감강목의 편찬 형식에 따라 역대 국가를 정통과 비정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