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scha Heifetz [870531] · MS 2019 (수정됨) · 쪽지

2022-04-24 06: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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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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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는 찾아보았으나 나무도 없는 마른 풀 밭에는 천 개나 만 개나한 모양의 무덤들이 일면으로 널려 있기만 할 뿐이었다. 찾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서기 전부터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나섰다. 또 찾을 수가 있었대야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었으나 그러나 그의 마음 가운데는 무엇이나 영감이 있을 것만 같았다. 


「반가이 맞아 주겠지! 적어도 반갑기는 하겠지!」 


지팡이를 쥐인 손―손등은 바람에 터져 새빨간 피가 흘렀으나 손바닥에는 축축이 식은땀이 배었다. 수건을 꺼내어 손바닥을 닦을 때마다 하염없는 눈물에 젖은 눈가와 뺨을 씻는 것도 잊지는 않았다. 눈물은 뺨에 흘러서 그대로 찬 바람에 어[凍]는지 싸늘하였다― 두 줄기만이 더욱이나. 


「왜 눈물이 흐를까― 무엇이 설울까?」 


그에게는 다만 찬바람 때문인 것만 같았다. 바람이 소리 지르며 불 때마다 그의 눈은 더한층이나 젖었다. 키 작은 잔디의 벌판은 소리날 것도 없이 다만 바람과 바람이 서로 어여드는 칼날 같은 비명이 있을 뿐이었다. 


해가 훨씬 높았을 때까지 그는 그대로 헤매었다. 손바닥의 땀과 눈의 눈물을 한 번씩 더 씻어내인 다음 그는 아무데이고 그럴 법한 자리에 가 앉았다. 


그곳에도 한 개의 큰 무덤과 그 옆에 작은 무덤이 어깨를 마주대인 것처럼 놓여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이나 물끄러미 그것을 내려다 보았다. 


「세상에 또 나와 같은 젊은 안해와 어린 자식을 한꺼번에 갖다 파묻은 사람이 또 있는가 보다.」 


그는 그러한 남과 이러한 자기를 비교하여 보았다. 


「그러한 사람도 있다면 그 사람도 지금은 나같이 세상을 떠돌아다닐 터이지. 그리고 또 지금쯤은 벌써 그 사람도 죽어 세상에서 없어져 버렸는지도 모르지.」 


그는 자기가 지금 무엇하러 이곳에 와 있는지 몰랐다. 반가와하여 주는 사람이 없는 것은 그래도 고사하고라도 그에게 반가운 것의 아무 것을 찾을 수도 없었다. 이렇게 마른 풀밭에 앉아 있는 그의 모양이 그의 눈으로도 ‘남이 보이듯이’ 보이는 것 같았다. 


「가자― 가― 이곳에 오래 있을 필요는 없다― 아니 처음부터 올 필요도 없다― 


사람은 살아야만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이고는 반드시 죽고야 말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어디까지라도 살아야만 할 것이다. 


죽는 것은 사람의 사는 것을 없이하는 것이므로 사람에게는 중대한 일이겠다―죽는 것―죽는 것―과연 죽는 것이란 사람이 사는 가운데에는 가장 두려운 것이다―그러나― 


죽는 것은 사는 것의 크낙한 한 부분이겠으나 그러나 죽는 것은 벌써 사는 것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다. 사람은 죽는 것에 철저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죽는 것에는 벌써 눈이라도 주어 볼 아무 값[價]도 없어지는 것이다. 


죽는 것에 대한 미적지근한 미련은 깨끗이 버리자― 그리하여 죽는 것에 철저하도록 힘차게 살아 볼 것이다―」 


인생은 결코 실험(實驗)이 아니다. 실행(實行)이다. 


사람은 놀랄 만한 긴장 속에서 일각의 여유조차도 가지지 아니하였다. 


「보아라 이 언덕에 널려 있는 수도 없는 무덤들을. 그들이 대체 무엇이냐, 그것들은 모든 점에 있어서 무(無) 이하의 것이다.」 


해는 비최일 땅을 가졌으므로 행복하다. 그러나 땅은 해의 비최임을 받는 것만으로는 행복되지 않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까. 


「보아라 해의 비최임을 받고 있는 저 무덤들은 무엇이 행복되랴 ―해는 무엇이 행복되며!」 


그것은 현상이 아니다. 존재도 아니다. 의의 없는 모양(?)이다 (만일 이러한 말이 통할 수 있다면) 


「생성하고 자라나고 살고―아―그리하여 해도 땅도 비로소 행복된 것이 아니랴!」 


그의 머리 위를 비스듬히 비최이고 있는 그가 사십 년 동안을 낯익히 보아오던 그 해가 오늘에 있어서는 유달리도 숭엄하여 보였고 영광(靈光)에 빛나는 것만 같았다. 더욱이나 따뜻한 것만 같았고 더욱이나 밝은 것만 같았다. 


십여 년 전에 M군과 함께 어린것을 파묻고 힘없는 몸이 다시 집을 향하여 걷던 이 좁고 더러운 길과 그리고 길가의 집들은 오늘 역시 조곰도 변한 곳은 없었다. 


「사람이란 꽤 우스운 것이야」 


그는 의식없이 발길을 아무 데로나 죽은 것들을 피하여 옮기었다. 어디를 어느 곳으로 헤매었는지 그가 이 촌락(?)을 들어설 수가 있었을 때에는 세상은 벌써 어둠컴컴한 암흑 속에 잠긴 지 오래였다. 


집에는 피곤한 사람들의 코고는 무거운 소리가 흐릿한 등광과 함께 찢어진 들창으로 새어 나왔다. 바람은 더한층이나 불고 그대로 찼다[冷]. 다 쓰러져 가는 집들이 작은 키로 늘어선 것은 그 곳이 빈민굴인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래도 이곳이 얼마나 ‘사람사는 것’같고 따스해 보이는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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