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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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씨의 집에서 이것 저것 맛있는 음식을 시켜다 먹었다. 그 자리에 M군도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자리는 어리석기 쉬웠다. 그래 그는 입을 열었다.
「오래간만에 오고 보니―그것도 그래―만나고 보면 할말도 없거든―사람이란 도무지 이상한 것이거든―얼싸안고 한― 두어 시간 뒹굴 것 같지―하기야― 그렇지만― 떡― 당하고 보면 그저 한량없이 반갑다 뿐이지―또 별 무슨―」
자기 말이 자기 눈에 띄울 때처럼 싱거운 때는 없다.
그는 이렇게 늘어놓는 동안에 ‘자기 말이 자기 눈에 띄었’다. 자리는 또 어리석어 갔다.
「이 세상에 벙어리나 귀머거리처럼―어쨌든 그런 병신이 차라리 나을 것이야―」
이런 말을 하고 나서 보니 너무 지나친 말인 것도 같았던 것이 눈에 띄었다. 그는 멈칫했다.
「X군― 말 끝에 말이지― 그래도 눈먼 장님은 아니니까 자네 편지는 자세 보아서 아네. 자네도 인제 고생 끝에 낙이 나느라― 고하기는 우리 같은 사람도 자네 덕을 입지 않나! 하……」
M군의 이 말 끝에 웃음은 너무나 기교적(技巧的)이었다. 차라리 웃을 만하였다.
「웃을 만한 희극(喜劇)!」
그는 누구의 이런 말을 생각하여 보았다. 그리고는 M군의 이 웃음이 정히 그것에 해당(該當)치 않는 것인가도 생각하여 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웃었다.
「형님 언제나 심평이 필까 ‘필까’했더니…… 인제는 나도 기지개 좀 펴겠소―허……」
이렇게도 모든 ‘웃을 만한 희극’은 자꾸만 일어났다.
「하……! 하……」
그는 나가는 데 맡겨서 그대로 막 웃어 버렸다. 눈 감고 칼쌈 하는 세 사람처럼 관계도 없는 세 가지 웃음이 서로 어울어져서 스치고 부딪고 맞닥치는 꼴은 “웃을 만한” 희극 중에서도 진기한 광경이었다.
열한시쯤하여 M군은 돌아갔다. 그리고 나서 그는 곧 자리에 쓰러졌다. 곧 깊은 꿈 속에서 떨어진 그는 여러 날만에 극도로 피곤한 그의 몸을 처음으로 편안히 쉬이게 하였다.
얼마를 잤는지 (그것은 하여간 그에게는 며칠 동안만 같았다) 귀가 간지러움을 견디다 못하여 억지로 깨었다. 깨이고 난 그는 그의 귀가 그렇게 간지러웠던 까닭이 무엇이었던가를 찾아 보았으나 어두컴컴한 방안에는 아무것도 집어내일 것이 없었다.
「꿈을 꾸었나― 그럼―」
꿈이었던가 아니었던가를 생각하여 보는 동안에 그의 의식은 일순간에 명료하여졌다. 따라서 그의 귀도 그것이 무엇인가를 구분해 내일만치 정확히 간지러움을 가만히 느끼고 있었다.
「시계 소리― 밤(夜) 소리(그런 것이 있다면)― 그리고― 그리고―」
분명히 퉁소 소리다.
「이럴 내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알 수 없이 감상적(感傷的)으로 변하여 갔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까를 생각하여 보았으나 알 수 없었다. 얼마 동안이나 어둠침침한 공간 속에서 초점 잃은 두 눈을 유희시키다가 별안간 그는 「퉁소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의 생각에는 그 퉁소의 크기는 그가 짚고 다니는 ‘스틱’ 기러기만은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아니하면 저런 굵은 옅은 소리가 날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여 보고 나서 그는 혼자 웃었다.
「아까 그 신사나 따라갈 것을! 차라리!」
어찌하여 이런 생각이 들까, 그는 몇 번이나 생각하여 보았다. M군과 T는 나를 얼마나 반가와하여 주었느냐― 나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아니하였느냐― 업의 손목을 잡지 아니하였느냐― M군과 T는 나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아니하냐― 나는― 그들을 믿고― 오직― 이곳에 돌아온 것이 아니냐―.
「아― 확실히 그들은 나를 반가와하고 있음에 틀림은 없을까? 나는 지금 어디로 들어가느냐」
그는 지금 그윽한 곳으로 통하여 있는― 그 그윽한 곳에는 행복이 있을지 불행이 있을는지 모른다― 층계를 한 단 한 단 디디며 올라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의 가슴은 아지 못할 것으로 꽉 차 있었다. 그것을 그가 의식할 때에 그는 그것이 무엇인가를 황황히 들여다 본다. 그때에 그는 이때까지 무엇에인지 꽉 채워져 있는 것 같은 그의 가슴 속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비인 것으로 그의 눈앞에 나타난다―
「아무것도 없었구나― 역시」
그가 다시 고래를 들었을 때에는 비인 것으로만 알아졌던 그의 가슴 속은 역시 무엇으로인지 차 있는 것을 다시 느껴지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모순이다. 그러나 모순된 것이 이 세상에 있는 것만큼 모순이라는 것은 진리이다. 모순은 그것이 모순된 것이 아니다. 다만 모순된 모양으로 되어져 있는 진리의 한 형식이다.
「나는 그들을 반가와하여야만 한다― 나는 그들을 믿어 오지 아니하였느냐? 그렇다 확실히 나는 그들이 반가왔다― 아― 나는 그들을 믿어―야 한다― 아니다. 나는 벌써 그들을 믿어 온 지 오래다―내가 참으로 그들을 반가와하였던가― 그것도 아니다― 반갑지 아니하면 아니될 이 경우에는 반가운 모양외에 아무런 모든 모양도 나에게― 이 경우에― 나타날 수는 없다― 어쨌든 반가왔다―」
시계는 가느단 소리로 네 시를 쳤다. 다음은 다시 끔찍끔찍한 침묵 속에 잠기고 만다. T씨의 코고는 소리와 업의 가냘픈 숨소리가 들려올 뿐이다. 그의 귀를 간지럽히던 퉁소 소리도 어느 사이에인지 없어졌다.
「혹시 내가 속지나 않은 것일까. ―사람은 모두 다 서로 속이려고 드는 것이니까. 그러나 설마 그들이― 나는 그들에게 진심을 바치리라―」
사람은 속이려 한다. 서로서로―그러나 속이려는 자기가 어언간 속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속이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속는 것은 더 쉬운 일이다― 그 점에 있어 속이는 것이란 어려운 것이다. 사람은 반성(反省)한다. 그 반성은 이러한 토대 위에 선 것이므로 그들은 그들이 속이는 것이고 속는 것이고 아무 것도 반성치는 못한다.
이때에 그도 확실히 반성하여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반성할 수 없었다.
「나는 아무도 속이지 않는다. 그 대신에 아무도 나를 속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반가와하지 아니하면 안된다― 사랑하지 아니하면 안된다― 믿지 아니하면 안된다」 등의 ‘……지 아니하면 안되’는 의무를 늘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 아니하면 안된다’라는 것이 도덕상에 있어 어떠한 좌표 위에 놓여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는 없었다. ―따라서 이 그의 소위 ‘의무’라는 것이 참말 의미의 ‘죄악’과 얼마나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 없었는 것도 물론이다.
사람은 도덕의 근본성을 고구하기 전에 우선 자기의 일신을 관념 위에 세워 놓고 주위의 사물에 당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최후적 실망과 공허를 어느 때이고 반드시 가져온다. 그러나 그것이 왔을 때에 그가 모든 근본 착오를 깨닫는다 하여도 때는 그에게 있어 이미 너무 늦어지고야 말고 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사람은 얼마나 오류(誤謬)를 반복하여 왔던가 이 점에 있어서 인류의 정신적 진보는 실로 가엾을만치 지지(遲遲)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주위를 나의 몸으로써 사랑함으로써 나의 일생을 바치자……」
그는 이 ‘사랑’이라는 것을 아무 비판도 없이 실행을 ‘결정’하여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내가 아까 그 신사를 따라갔던들? 나는 속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드시 속을 것을 보증할 사람이 또 누구냐 ―그 신사에게 나의 마음과 같은 참마음이 없다는 것을 보증할 사람은 또 누구냐……」
이러한 자기 반역도 그에게 있어서는 관념에 상쇄(相殺)될 만큼도 없는 극히 소규모의 것이었다. ―집을 떠나 천애를 떠다닌 저 십여 년. 그는 한 번도 이만큼이라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머리는 냉수에 끄어낸 것같이 맑고 투명하였다. 모든 것이 이상하였다.
「밤이라는 것은 사람이 생각하여야만 할 시간으로 신이 사람에게 준 것이다」
그는 새삼스러이 밤의 신비를 느꼈다.
「그 여자는 누구며 지금쯤은 어디 가서 무엇을 생각하고는 울고 있을까?」
그의 눈앞에는 그 인상 없는 여자의 얼굴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얼굴의 평범이라는 것은 특이(못생긴 편으로라도) 보다 얼마나 못한 것인가를 그는 그 여자의 경우에서 느꼈다.
「그 여자를 따라갔어도」
이것은 그에게 탈선 같았다. 그리하여 그는 생각하기를 그쳤다. 그는 몸 괴로운 듯이(사실에) 한 번 자리 속에서 돌아 누웠다. 방안은 여전히 단조로이 시간만 삭이고 있다. 그때 그의 눈은 건너편 벽에 걸린 조고마한 일력 위에 머물렀다.
DECEMBER12
이 숫자는 확실히 그의 일생에 있어서 기념하여도 좋을 만한 (그 이상의) 것인 것 같았다.
「무엇하려 내가 여기를 돌아왔나」
그러나 그 곳에는 벌써 그러한 ‘이유’를 캐어 보아야 할 아무 이유도 없었다. 그는 말 안 듣는 몸을 억지로 가만히 일으키었다. 그리하고는 손을 내어밀어 일력의 ‘12’쪽을 떼어 내었다.
「벌써 간 지 오래다」
머리맡에 벗어 놓은 웃옷의 ‘포켓’ 속에서 지갑을 꺼내어서는 그 일력쪽을 집어넣었다 ―마치 그는 정신 잃은 사람이 무의식으로 하는 꼴로― 천장을 향하여 눈을 꽉 감고 누웠다. 그의 혈관에는 인제 피가 한 방울씩 두 방울씩 돌기를 시작한 것 같았다. 완전히 편안한 상태였다.
주위는 침묵 속에서 단조로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생명은 의지다」
무의미한 자연 속에 오직 자기의 생명만이 넘치는 힘을 소유한 것 같은 것이 그에게는 퍽 기뻤다. 그때에 퍽 가까운 곳에서 닭이 홰를 ‘탁탁’ 몇 번 겹쳐 치더니 청신한 목소리로 이튿날의 첫 번 울음을 울었다. 그 소리가 그에게는 얼마나 생명의 기쁨과 의지의 힘을 표상하는 것 같았었는지 몰랐다. 그는 소리 안 나게 속으로 마음껏 웃었다―.
조금 후에는 아까 그 소리 난 곳보다도 더 가까운 곳에서 더 한층이나 우렁찬 목소리로의 ‘꼬끼오’가 들려왔다. 그는 더없이 기뻤다. 어찌할 수도 없이 기뻤다. 그가 만일 춤출 수 있었다 하면 그는 반드시 일어나서 춤추었을 것이다. 그는 견딜 수 없었다.
「T― T― 집에서 닭을 치나?」
「T― 업아― 집에서……」
그러나 아무 대답도 없었다. 다만 T씨의 코고는 소리와 업의 가냘픈 숨소리가 전과 조곰도 다름없이 계속되고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는 다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아니한 때와 도로 마찬가지로 변하였다. (사실에 아무일이고 일어나지는 않았으나)
「승리! 승리!」
어언간 그는 또다시 괴로운 꿈속으로 들어가 버렸다―해가 미닫이에 꽤 높았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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