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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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것을 당신이― 슬쩍 이렇게 했다는 말인 것이요 그려 하……따는……참……횡재는……」
「아― 천만에 제 생각에는 그것을 죄다 사회사업(社會事業)에 기부할 생각이었지요 물론―」
「그런데 안했다는 말이지―」
「그런데 그가 죽기 전에 벌써 그가 저 죽을 날이 가까워 오는 것을 알고 그랬던지 다 저에게다 상속하도록 수속을 하여 놓고는 유서에다가는 떠―ㄱ 무엇이라고 써 놓았는고 하니」
「사회사업에 기부하라고 써―」
「아― 그게 아니거든요. 이것을 그대의 마음 같아서는 반드시 사회사업에 기부할 줄 믿는다. 그러나 죽는 사람의 소원이니 아무쪼록 그대로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친척 친구와 함께 노후(老後)의 편안한 날을 맞고 보내도록 하라. 만일 그렇지 아니하고 내 말을 어길 때에는 나의 영혼은 명도에서도 그대의 몸을 우려하여 안정(安靜)할 날이 없을 것이라고―」
「하― 대단히 편리한 유서로군! 당신 그 창작……」
신사는 말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어디까지든지 냉소와 조롱의 빛으로 차 있었다.
「그래서 그의 죽은 혼령도 위로할 겸 저도 좀 인제는 편안한 날을 좀 보내 보기도 할 겸해서 이렇게 돌아오는 길이오―」
「하― 그럴 듯하거든. 그래 대체 그 돈은 얼마나 되며 무엇에다 쓸 모양이오.」
「얼마요 많대야 실상 얼마되지는 않습니다. 제게는― 무얼 하겠느냐― 먹고 살고 하는데 쓰지요」
「아 그래 그저 그 돈에서 자꾸 긁어다 먹기만 할 모양이란 말이오. 사회사업에 기부하겠다는 사람의 사람은 딴 사람인 모양이로군!」
「그저 자꾸 긁어다 먹기만이야 하겠습니까. 설마하기는 시방 계획은 크답니다.」
「한번 다부지게 먹어 보겠다는 말이로구료」
「제게 한 친구가 의사지요. 그 전에는 그 사람도 남부럽지 않게 상당히 살았건만 그 부친되는 이가 미두(米豆)라나요 그런 것을 해서 우리 친구 병원까지를 들어먹었지요. 그래 시방은 어떤 관립병원에 촉탁의(囑託醫)로 월급생활(月給生活)을 하고 있다고 그렇게 몇 해 전부터 편지거든요. 그래서 친구 좋은 일도 할 겸 또 세상에 나처럼 아픈 사람 병든 사람을 위하여 사회사업도 할 겸― 가서 그 친구와 같이 병원을 하나 내일까 생각인데요. 크기야 생각만은―」
「당신은 집이나 지키려요」
「왜요 저도 의사랍니다. 친구의 그 소식을 들었대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 몸이 병신이니까 그런지 세상에 하고많은 불쌍한 사람 중에도 병든 사람 앓는 사람처럼 불쌍한 이는 없는 것 같애서 저도 의학을 좀 배워 두었지요」
신사는 가벼운 미소(微笑)를 얼굴에 띄우면서 ‘의학’을 배운 사람치고는 너무도 무식하고 유치하고 저급인 그의 말에 놀란다는 듯이 ‘쩍’ ‘쩍’ 혀를 몇 번 찼다.
「그래 당신이 의학을 안단 말이오」
「네― 안다고 까지야― 그저 좀 뜅겼지요― 가갸거겨― 왜 그리십니까― 어디 편치 않으신 데가 있다면 제가 시방이라도 보아 드리겠습니다. 있습니까― 있으면」
두 사람은 크게 소리치며 웃었다. 차창(車窓) 밖은 어느 사이에 날이 저물어 흐린 하늘에 가뜩이나 음울한 기분이 떠돌았다.
차안에는 전등까지도 켜졌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도 깨닫지 못하였었다. 그는 밖을 좀 내다 보려고 유리창의 성에를 또 닦았다. 닦기운 부분에는 밖으로 수없는 물방울이 마치 말못할 설움에 소리없이 우는 사람의 뺨에 묻은 몇 방울 눈물처럼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다. 그것들은 차의 움직임으로 일순 후에는 곧 자취도 없이 떨어지고 그리면 또 새로운 물방울이 또 어느 사이엔지 와 붙고 하여 그 물방울은 늘 거의 같은 수효로 널려 있었다.
「눈이 오시는 게로군」
두 사람은 이야기를 멈추고 고개를 모아 창밖을 내어다 보았다. 눈은 ‘너는 서울 가니? 나는 부산 간다’ 하는 듯이 옆으로만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이야기에 팔리어 얼마 동안은 잊었던 외인편 다리는 여전히 아까보다도 더하게 아프고 쑤시었다 저렸다. 그는 그 다리를 옷 바깥으로 내리 쓰다듬으며 순식간에 ‘싀―ㅅ’소리를 내이며 입에 군침을 한 모금이나 꿀떡 삼켰다. 그 침은 몹시도 끈적끈적한 것으로 마치 ‘콘덴스트 밀크’나 엿을 삼키는 기분이었다. 신사는 양미(兩眉)간에 조고만 내 천(川)자를 그린 채 그 모양을 한참이나 내려다보고 앉았더니 별안간 쾌활한 어조(語調)로 바꾸어 입을 열었다.
「의사(醫師)가 다리를 앓는 것은 회괴한 일이로군!」
「제 똥 귄 줄 모른다고!」
두 사람은 이전보다도 더 크게 소리쳐 웃었다. 그 웃음은 추위에 원기를 지질리운 차안의 승객들의 멍멍한 귀에 벽력 같은 파동을 주었음인지 그들은 이 웃음소리의 발원지를 향하여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은 이 모든 시선의 화살에 살이 간지러웠다. 그리하여 고개를 다시 창 쪽으로 향하여 보았다가 다시 또 숙여도 보았다.
얼마만에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 통로(通路) 건너편에 그를 향하여 앉아 있는 젊은 여자 하나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는 것을 그는 발견할 수 있었다.
「우나?―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게지― 누구와 생이별이라도 한 게지!」
그는 이런 유치한 생각도 하여 보았다.
「그러면 그 돈을 시방 당신의 몸에 지니고 있겠구려 그렇지 않으면!」
신사의 이 말소리에 그는 졸도할 듯이 나로 돌아왔다. 그 순간에 그의 머리에는 전광(電光) 같은 그 무엇이 떠도는 것이 있었다.
「아―니요 벌써 아우 친구에게 보냈세요. 그런 것을 이렇게 몸에다 지니고 다닐 수가 있나요」
하며 그는 그 수형에 들은 웃 포켓트의 것을 손바닥으로 가만히 어루만져 보았다. 한 장의 종이를 싸고 또 싸고 몇 겹이나 쌌던지 그의 손바닥에는 풍부한 질량의 쾌감이 느껴졌다. 그의 입안에는 만족과 안심의 미소가 맴돌았다.
차안은 제법 어두워졌다. (그것은 더욱이 창밖이었을는지도 모르나 지금에 그의 세계는 이 차안이었으므로이다) 생각없이 그는 아까 그가 바라보던 젊은 여자의 앉아 있는 곳으로 머리를 돌려 보았다. 그때에 여자는 들었던 얼굴을 놀란 듯이 숙이고는 수건으로 가려 버리었다. 더욱 놀란 것은 그였다.
「흥― 원 도무지 별일이로군!」
그는 군입을 다셔 보았다. 창밖에는 희미한 가운데에도 수없는 전등이 우는 눈으로 보는 별들과도 같이 이지러져 번쩍이고 있었다.
「서울이 아마 가까운 게로군요」
「가까운 게 아니라 예가 서울이오」
그는 이 빈약한 창밖 풍경(風景)에 놀랐다.
「서울! 서울! 기어코―어디 내 이를 갈고―」
그는 이 ‘이를 갈고’ 소리를 벌써 몇 번이나 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기도 또 듣는 사람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어찌 하겠다는 소리인지 깨달을 수 없었다. 차안은 이제 극도로 식어온 것이었다. 그는 별안간 시베리아 철도를 타면 안이 어떠할까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을 하여 보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부시럭 부시럭 일어났다. 그는 얼른 변소에를 안전하도록 다녀온 다음 신사의 조력을 얻어 다나 위의 가방을 내렸다. 그리고 그것을 바른 손아귀에 꽉 쥐고서 내릴 준비를 하였다. 차는 벌써 역 구내에 들어왔는지 무수한 검고 무거운 화물차 사이를 서서히 걷고 있는 것이었다.
차는 ‘치―ㄱ’ 소리를 지르며 졸도할만치 큰 기적 소리를 한번 울리고는 승강장에 닿았다. 소란한 천지는 시작되었다.
그는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그 여자의 있던 곳을 또 한 번 돌아다 보았다. 그러나 그 때에는 그 여자는 반대편 문으로 나갔었기 때문에 그는 여자의 등과 머리 뒷모양밖에는 볼 수 없었다.
「에― 그러나 도무지― 이렇게 기억 안되는 얼굴은 처음 보겠어. 불완전 불완전!」
그는 밀려 나가며 이런 생각도 하여 보았다. 그 여자의 잠깐 본 얼굴을 아무리 다시 그의 머리 속에 나타내어 보려 하였으나 종시 정돈되지 아니하는 채 희미하게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아픈 다리, 차안의 추위에 몹시 식은 다리를 이끌고 사람 틈에 그럭저럭 밀려 나가는 그의 머리는 이러한 쓸데없는 초조로 불끈 화가 나서 어지러운 것이었다.
승강대를 내릴 때에 그는 그 신사 손목을 한 번 잡아 보았다. 아픈 다리를 가지고 내리는데 신사의 힘을 빈다는 것처럼. 그러나 그것은 그가 무엇인지 유혹하여지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쥐고 보았으나 그는 할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아니하였다. 그는 잠깐 머뭇머뭇하였다.
「저 오늘이 며칠입니까?」
「십이월 십이일(十二月十二日)!」
「십이월 십이일! 네, 십이월 십이일!」
신사의 손목을 쥐인 채 그는 이렇게 중얼거려 보았다. 순식간에 신사의 모양은 잡다한 사람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찾고 또 찾았다. 그러나 누구인지 아지 못할 사람이 그의 손목을 달려 잡았을 때까지 그는 아무도 찾지는 못하였다. 희미한 전등 밑에 우쭐대는 사람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다 똑같은 것만 같았다. 그는 그의 손목을 잡는 사람의 얼굴을 거의 저절로 내려다 보았다. 그러나― 눈― 코― 입―.
「하…… 두 개의 눈― 한 개씩의 코와 입!」
소리 안 나는 웃음을 혼자 웃었다. 눈을 뜬 채!
「X군! 나를 못 알아보나 X군!」
한참 동안이나 두 사람의 시선은 그대로 늘어붙은 채 마구 매어달려 있었다.
「M군! 아! 하! 이거 얼마만이십니까 ―얼마―에 얼마만인가」
그의 눈에는 그대로 눈물이 괴었다.
「M군! 분명히 M군이시지요! 그렇지?」
침묵…… 이 부득이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아니 찾아올 수 없었다. ―입을 꽉 다문 채 그는 눈물을 흘린 눈으로 M군의 옷으로 신발로 또 옷으로 이렇게 보기를 오르내리켰다. 그의 머리(?)에 가까운 곳에는(?) 이상한 생각(같은 것)이 떠올랐다.
「M군― 그 M군은 나의 친구였다. 분명히 역시」
M군보다 키는 차라리 그가 더 컸다. 그러나 그가 M군을 바라보는 것은 분명히 ‘치어다보는 것’이었다. 그의 이 모순된 눈에서는 눈물이 그대로 쏟아지기만 하였다 ―어느 때까지라도―.
군중의 잡다한 소음은 하나도 그리 귀에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그의 눈이 초점을 잃어버렸던 것도,
「차라리 아까 그 신사나 따라갈 것을」
전광 같은 생각이 또 떠올랐다. 그때 그는 그의 귀가 ‘형님’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던 기억’까지 쫓아 버렸다.
「차라리―아―」
「이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었던가―아―」
모든 것은 다 간다. 가는 것은 어언간 간 것이다. 그에게 있어도 모든 것은 벌써 다 간 것이었다.
다만― 그리고는 오지 아니하면 아니될 것이 그 뒤를 이어서 ‘가기 위하여’ 줄대어 오고 있을 뿐이었다.
「아― 갔구나[去]― 간 것은 없는 것만도 못한 ‘없는 것’이다―모―든……」
그는 M군과 T씨와 그리고 T씨의 아들 업―이 세 사람의 손목을 번갈아 한 번씩 쥐어 보았다. 어느 것이나 다 뻣뻣하고 핏기없이 마른 것이었다.
「아우야―T―
조카―업―네가 업이지……」
그들도 그의 눈물을 보았다. 그리고 어두운 낯빛에 아무 말들도 없었다. 간단한 해석을 내리운 것이었다.
「바깥에는 눈이 오지?」
「떨어지면 녹고―떨어지면 녹고 그러니까 뭐」
떨어지면 녹고―그에게는 오직 눈만이 그런 것도 아닐 것 같았다―그리고 비유할 곳 없는 자기의 몸을 생각하여도 보았다.
네 사람은 걷기를 시작하였다. 어느 틈엔지 그는 업의 손목을 꽉 잡고 있었다.
「네 얼굴이 그렇게 잘생긴 것은―최상의 행복이요 동시에 최하의 불행이다.」
그는 업의 붉게 익은 두 뺨부터 코 밑에 인중을 한참이나 훔쳐 보았다. 그 곳은 그를 만든 신(神)이 마지막 새끼 손가락을 떼인 자리인 것만 같았다.
도영(倒映)되는 가로등(街路燈)과 ‘헷드라이트’는 눈물에 젖은 그의 눈 속에 이중적(二重的)으로 재현되어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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