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scha Heifetz [870531] · MS 2019 (수정됨) · 쪽지

2022-04-21 09: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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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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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아도 닦아도 유리창에는 성에가 슬었다. 그럴수록 그는 자주 닦았고 자주 닦으면 성에는 자꾸 슬었다. 그래도 그는 얼마든지 닦았다. 


승강장 찬바람 속에 옷고름을 날리며 섰다가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퍽 따스하더니 그것도 삽시간(霎時間)이요 발 밑에 ‘스팀’은 자꾸 식어만 가는지 삼등객차(三等客車) 안은 가끔 소름이 끼칠만치 써늘하였다. 


가방을 겨우 다나 위에다 얹고 앉기는 앉았으나 그의 마음은 종시 앉지 않았다. 그의 눈은 유리창에 스는 성에가 닦아도 스고 또 닦아도 또 스듯이 씻어도 솟고 또 씻어도 또 솟는 눈물로 축였다[濡]. 그는 이 까닭 모를 눈물이 이상하였다. 그런 것도 그의 눈물의 원한이었는지도 모른다. 


젖은 눈으로 흐린 풍경을 보지 아니하려 눈물과 성에를 쉴 사이 없이 번갈아 닦아가며 그는 창밖을 내다보기에 주린 듯이 탐하였다. 모든 것이 이상하기만 할 뿐이었다. 


「어찌 이렇게 하나도 이상한 것이 없을까? 아!」 그에게는 이것이 이상한 것이었다.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서 그는 그의 백사지(白砂地)된 뇌와 심장을 조상하였다. 


회색으로 흐린 하늘에 소리없는 까마귀 떼가 몽롱한 북망산을 반점(斑點) 찍으며 감도는 모양― 그냥 세상 끝까지라도 닿아 있을 듯이 겹친 데 또 겹쳐 누워 있는 적갈색(赤褐色)의 벗어진 산(山)들의 자비(慈悲)스러운 곡선(曲線)― 이런 것들이 그의 흥미(興味)를 일게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도무지 이상치 아니한 것이 그에게는 도무지 이상하였다. 


이러한 가운데에도 그는 그의 눈과 유리창을 닦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남의 것을 왜― 거저 먹으려고 그리는 것일까」 


그는 ‘따개꾼’을 생각하여 보았다. 


「남의 것을 거저― 남의 것을― 거저―」 


그는 또 자기를 생각하여 보았다. 


「남의 것을 거저― 나는 남의 것을 거저 갖지 않았느냐― 비록 그 사람은 죽어서 이 세상에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의 유서(遺書)가― 그것을 허락하였다 할지라도― 그의 유산의 전부를 차지하여도 조곰도 거리낌이 없을만치 그와 나는 친한 사이였다 하더라도― 나는 그의 하고 많은 유산을 그저 차지하지 않았느냐. 남의 것을― 그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하더라도 남이다― 남의 것을 거저, 나는 그의 유산의 전부를― 사회사업(社會事業)에 반드시 바쳤어야 옳을 것을― 남의 것이다― 상속이 유언된 유산― 거저― 사회사업― 남의 것―’」 그의 머리는 어지러웠다. 


「고요한 따개꾼― 체면 있는 따개꾼!」 


그러나 그는 성에 실은 유리창을 닦는 것과 같이 그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돈의 종잇 조각― 수형을 어루만져 보기를 때때로 하는 것도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발끝에서 올라오는 추위와 피곤― 머리끝에서 내려오는 산란한 피곤― 그것은 복부(腹部)에서 충돌되어서는 시장함으로 표시(表示)되었다. 한 조각의 마른 빵을 씹어 본 다음에 그는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다. 오줌 누러 가는 것이 귀치않아서― 


먹은 것이라고는 새벽녘에도 역시 마른 빵 한 조각밖에는 없다. 그때도 역시 물은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벌써 변소에를 몇 번이고 갔는지 모른다. 절름발이를 이끌고 사람 비비대는 차 안의 좁은 틈을 헤쳐 가며 지나다니기가 귀찮았다. 이것이 괴로웠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물을 마시지 아니한 것이다. 그러나 오줌을 수없이― 그는 이것이 이 차 안의 특유인 미지근한 추위 때문이 아닌가?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다. 그는 변소에 들어서서는 반드시 한 번씩 그 수형(手形)을 꺼내어 자세히 검사하여 보는 것도 겸겸하였다. 


「오냐― 무슨 소리를 내가 듣더라도 다시 살자」 


왼편 다리가 차차 아파 올라왔다― 결리는 것처럼― 저리는 것처럼― 기미(氣味) 나쁘게―. 


「기후가 변하여서― 풍토가 변하여서―」 


사람의 배를 가르고 그 내장을 세척(內藏洗滌)하는 것은 고사하고― 사람의 썩는 다리를 절단(折斷)하는 것은 고사하고― 등에는 조고만 부스럼에 메스 한 번을 대어 본 일이 없는 슬플만치 풍부한 경험을 가진 훌륭한 의사의 그는 이러한 진단을 그의 아픈 다리에다 내려도 보았다. 그래 바지 아래를 걷어 올리고 아픈 다리를 내여 보았다. 바른편 다리와는 엄청나게 훌륭하게 뼈만 남게만은 외인편 다리는 바닥에서 솟아올라 오는 ‘풍토 다른’ 추위 때문인지 죽은 사람의 그것과 같이 푸르렀다. 거기에 몇 줄기 새파란 정맥줄이 반투명체(半透明體)가 내뵈듯이 내보이고 있었다. 털은 어느 사이에인지 다 빠져 하나도 없고 모공(毛孔)의 자국에는 파리똥 같은 깜은 점(黑點)이 위축(萎縮)된 피부 위에 일면으로 널려 있었다. 그는 그것을 ‘나의 것’이니만치 가장 친한 기분으로 언제까지라도 들여다보며 깔깔한 그 면을 맛좋게 쓸어 다듬어 주고 있었다. 


그 때에 건너편 자리에 앉아 있던 신사(紳士)(?)는 가냘픈 한숨을 섞어 혀를 한번 ‘쩍’하고 치더니 그 자리에서 일어서서 황황히 어디론지 가버렸다. 


「내리는 게로군― 저 가방― 여보시오, 저 가방」 


그는 고개를 돌이키어 그 신사의 가는 쪽을 향하여 소리 질렀다. 


「여보시오 저― 가방을 가지고 내리시오― 저」 


또 한 번 소리쳐 보았으나 그 신사의 모양은 벌써 어느 곳으로 가 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생각나서 찾으러 오도록 나는 저 가방을 지켜주리라」 이런 생각을 그는 한턱 쓰는 세음으로 생각하였다. 


「여보 인젠 그 다리 좀 내놓지 마시오」 


「아― 참 저 가방―」 


이렇게 불식간에 대답을 한 그는 아까 자리를 떠나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던 그 신사가 어느 틈에인지 다시 그 자리에 와 앉아 있는 것을 그제야 겨우 보아 알았다. 신사는 또 서서히 입을 열어 


「여보 나는 인제 몇 정거장 남지 않았으니 내가 내릴 때까지는 제발 그 다리 좀 내어 놓지 좀 마오!」 


「네― 하도 아프기에 어째 그런가 하고 좀 보았지요. 혹시 풍토가…… 」 


「풍토? 당신 다리는 풍토에 따라 아프기도 하고 안 아프기도 하고 그렇소?」 


「네― 원래 이 외인편 다리는 다친 다리가 되어서 조곰 일기가 변하기만 하여도 곧 아프기가 쉬운― 신세는 볼일 다 본― 그렇지만 이를 갈고― 」 


「하하 그러면 오― 알았소― 그 왼편―……」 


「네― 그 아플 적마다 고생이라니 어디 참―」 

「내 생각 같아서는 그건 내 생각이지만 그렇게 두고 고생할 것 없이 병신되기는 다― 일반이니 아주 잘라 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저 내가 아는 사람도 하나 그 이야기는 할 것도 없소만― 어쨌든 그것은 내 생각에는 그렇다는 말이니까 짜르라고 당신보고― 짜르라고 그러는 말은 아니오만― 하여간 그렇다면 퍽 고생이 되겠는데―」 


「글쎄 말씀이야 좋은 말씀이외다만 원 아무리 고생이 된다 하더라도 어떻게 제 다리를 자르는 것을 제 눈으로 뻔히 보고 있을 수가 있나요?」 


「그렇지만 밤낮 두고 고생하느니보다는 낫겠다는 말이지요. 그것은 뭐 어쩌다가 그렇게 몹시 다쳤단 말이오」 


「그거요 다 이루 말할 수 있나요. 이 다리는 화태(樺太)에서 일할 적에 토로에서 뛰어내리려다가 토로와 한데 뒹구는 바람에 이렇게 몹시 다친 거지요」 


「화태?」 


신사는 잠시 의아와 놀라는 얼굴빛을 보인 다음에 다시 말을 이어 


「어쩌다가 화태까지나 가셨더란 말이요?」 


「예서는 먹고 살 수가 없고 하니까 돈 벌러 떠난다는 것이 마지막 천하에 땅 있는 데는 사람 사는 곳이고 안 사는 곳이고 안 가본 데가 있나요. 이렇게 떠돌아다니는 게 올째 꼭! 가만 있자― 열 일곱 해 아니 열 다섯 핸가― 어쨌든 십여 년이지요」 


「돈만 많이 벌었으면 고만 아니오」 


「그런데 어디 돈이 그렇게 벌리나요. 한 푼― 참 없습니다. 벌기는 고만두고 굶기를 남 먹듯 했습니다. 어머님 집 떠난 지 일년도 못 되어 돌아가시고―……」 


「하― 어머님이― 어머님도 당신하고 같이 가셨습디까― 처자(妻子)는 그럼 다 있겠구려」

 

「웬걸요― 처자는 집 떠나기 전에 다― 죽었습니다. 어린 것을 나은 지― 에 그게― 어쨌든 에미가 먼저 죽으니까 죽을 밖에요. 어머님은 아우에게 맡기고 떠나려고 했지만 원래 우리 형제는 의가 좋지 못한 데다가 아우도 처자가 다 있는데다가 저처럼 이렇게 가난하니 어디 맡으려고 그럽니까」 


「아우님은 단 한 분이요?」 


「네― 그게 그렇게 의가 좋지 못하답니다. 남이 보면 부끄러울 지경이지요」 


「그래 시장 어떻게 해서 어디로 가는 모양이오」 


신사의 얼굴에는 연민(憐憫)의 빛이 보이었다. 


「십여 년을 별짓을 다하고 돌아다니다가…… 참 그 동안에는 죽으려고 약까지 타 논 일도 몇 번인지 모르지요. 세상이 다 우스꽝스러워서 술 노름으로 세월을 보낸 일도 있고 식당 쿡 노릇을 안 해 보았나 이래 보여도 양요리(洋料理)는 그래도 못 만드는 것 없이 능란하답니다. 일등 쿡이었으니까 화태에도 오랫동안 있었지요. 그때 저는 꼭 죽는 줄만 알았는데 그래도 명이 기니까 할 수 없나 보아요. 이렇게 절름발이가 되어 가면서도 여태껏 살고 있으니 그때 그 놈들(그는 누구라는 것도 없이 이렇게 평범히 불렀다)이 이 다리를 막 자르려고 뎀비는 것들을 죽어라하고 못 자르게 했지요 기를 쓰고 죽어도 그냥 죽지 내 살점을 떼내 던지지는 않겠다고 이[齒]를 악물었더니 그놈들이 그래도 내 억지는 못 이기겠던지 그냥 내버려 두었에요. 덕택에 시방 이 모양으로 절름발이 신세를 네― 가기는 제가 갈 데가 있겠습니까. 아우의 집으로 가야지요. 의가 좋으니 나쁘니 해도 한 배의 동생이요, 또 십여 년만에 고향에 돌아오는 몸이니 반가워하지는 못할지라도 그리 싫어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고향이요, 고향은 서울, 아주 서울태생이올시다. 서울에는 아우하고 또 극진히 친한 친구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저 그 사람들을 믿고 시방 이렇게 가는 길이올시다. 그렇지만 내 이를 악물고라도」 


「그럼 그저 고향이 그리워서 오는 모양이로구려」 


「네― 그렇다면 그렇지요. 그런데 하기는……」 


그는 별안간에 말을 멈추는 것같이 하였다. 

「그럼 아마 무슨 큰 수가 생겨서 우는 모양이로구려」 


어디까지라도 신사의 말은 그의 급처(急處)를 찌르는 것이었다. 


「수― 에― 수가 생겼다면― 하기야 수라도―」 


「아주 큰 수란 말이로구려 하……」 


두 사람은 잠시 쓰디쓴 웃음을 웃어 보았다. 


「다른 사람이 보면 하잘 것 없는 것일는지 몰라도 제게는 참 큰 수치요, 허고 보니.」 


「얘기를 좀 하구려. 그 무슨 그렇게 큰 순가.」 


「얘기를 해서 무엇하나요? 그저 그렇게만 아시지요 뭐― 해도 상관은 없기는 없지만……」 


「그 아마 당신께 좀 꺼리는 데가 있는 게로구려? 그렇다면 할 수 없겠소만 또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당신을 천리나 만리나 따라다닐 사람이 아니요, 또 내가 무슨 경찰서 형사(警察署刑事)나 그런 사람도 아니요 이렇게 차 속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헤어지고 말 사람인데 설사 일후에 또 만나는 수가 있다 하더라도 피차에 얼굴조차도 잊어버릴 것이니 누가 누군지 안단 말이오. 내가 또 무슨 당신의 성명을 아는 것도 아니고 상관없지 않겠소.」 


「아― 그렇다면야― 뭐, 제가 이야기 안 한다는 까닭은 무슨 경찰에 꺼릴 무슨 사기 취재(?)나 했다 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이야기가 너무 장황해서 또 몇 정거장 안 가서 내리신다기에 이야기가 중간에 끊어지면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피차 재미도 없을 것 같고 그래서―」 


「그렇게 되면 내 이야기 끝나는 정거장까지 더 가리다 그려― 이야기가 재미만 있다면 말이요―」 


「네(?) 아니― 몇 정거장을 더 가셔도 좋다니 그것이 어떻게 하시는 말씀인지 저는 도무지―」 


두 사람은 또 잠깐 웃었다. 그러나 그는 놀랐다. 


「내 여행은 그렇게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는 여행이란 말이오―」 


「그렇지만 돈을 더 내셔야 않나요」 


「돈? 하― 그래서 그렇게 놀랜 모양이로구려! 그건 조곰도 염려할 것 없소. 나는 철도국에 다니는 사람인고로 차는 돈 한푼 아니 내고라도 얼마든지 거저 탈 수 있는 사람이니까. 나는 지금 볼일로 ××까지 가는 길인데 서울에도 볼일이 있고 해서 어디를 먼저 갈까 하고 망설거리던 차에 미안한 말이지요만 아까 당신의 그 다리를 보고 그만 ××일을 먼저 보기로 한 것이오. 그렇지만 또 당신의 이야기가 아주 썩 재미가 있어서 중간에서 그냥 내리기가 아깝다면 서울까지 가면서 다 듣고 서울 일도 보고 하는 것이 좋을 듯도 하고 해서 하는 말이오」 


「네― 나는 또 철도국 차를 거저, 그것 참 좋습니다. 차를 얼마든지 거저」 


이 ‘거저’ 소리가 그의 머리에 거머리 모양으로 묘하게 착 달라붙어서는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아 그는 잠깐 동안 혼자 애쓰지 아니하면 안되었다. 억지로 태연(泰然)한 차림을 꾸미며 그는 얼른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 말마디는 묘하게 굴곡이 심하였다. 그는 유리창이 어느 틈에 밖이 조곰도 내어다 보이지 않을만치 슬은 성에를 닦기도 하여 보았다. 


「말하자면 횡재 에― 횡재― 무엇 횡재될 것도 없지만 또 횡재라면 그야― 횡재 아니라고도 할수 없지만 어쨌든 제가 고생 고생 끝에 동경(東京)으로 한 삼년 전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게서 친구 한 사람을 사귀었는데 그는 별 사람이 아니라 제가 묵고 있던 집주인입니다. 그 사람은 저보다도 더 아무도 없는 아주 고독한 사람인데 그 여관 외에 또 집도 여러 채를 가지고 있었는데 있는 동안에 그 사람과 나는 각별히 친한 사이가 되어 그 여관을 우리 둘이서 경영하여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얼마 전에 고만 죽었습니다 믿던 친구가 죽었으니 비록 남이었건만 어떻게 설은지 아마 어머님 돌아가실 때만큼이나 울었습니다. 남다른 정분을 생각하고는 장사도 제 손으로 잘 지내 주었지요. 그런데 인제 그렇거든요― 자― 그가 떠―ㄱ 죽고 보니까 그의 가졌던 재산― 무엇 재산이라고까지는 할 것은 없을지는 몰라도 하여간 제게는 게서 더 큰 재산은 여태― 그렇게 말할 것까지는 없을지 몰라도 어쨌든 상당히 큰돈(?)이니까요― 그게 어디로 가겠느냐 이렇게 될 것이 아니냐 그런 말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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