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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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에게 보내는 편지(五信)
자네의 장문의 편지 그 가운데에 오직 자네의 건강을 전하는 구절 외에는 글자 글자의 전부가 오직 나의 조소(嘲笑)를 사기 위한 외에는 아무 매력(魅力)도 가지지 아니한 것들이었네. 자네는 왜― 남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려 하는가. 남에게 의지하여 살아간다는 것은 곧 생에 대한 권리를 그 그 사람 위에 가져올 자포자기의 짓이라는 것을 어찌 모르는가. 일조일석 많은 재물을 탕진시켜 버렸다 하여 자네는 자네 아버지를 무한히 경멸하에며 나중에는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절망까지 하소연하지 아니하였는가, 그것이 자네가 스스로 구실을 꾸미어 가지고 나아가서 자네의 애를 써 잘―경―영되어 나오던 생을 구태여 부정하여 보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그것은 비겁한 동시에―모든 비겁이 하나도 죄악 아닌 것이 없는 것과 같이― 역시 죄악인 것일세.
어렵거든, 혹은 나의 말이 우의적(友誼的)으로 좋지 않게 들리거든 구태여라도 운명이라고 그렇게 단념하여 주게. 그것도 오직 자네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는 나의 자네에게 대한 무한한 사랑에서 나온 것인만큼 나는 자네에게 인생의 혁명적으로 새로운 제이차적 「스타일」을 충고치 아니할 수 없는 것일세. 그리고 될 수만 있다면 이 운명이라는 요물을 신용치 말아 주기를 바라는 것일세―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부터도 이 운명이라는 요물의 다시 없는 독신자(篤信者)이면서도―.
「운명의 장난?」
하,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나 있다면 너무도 운명의 장난이겠네.
M군! 나는 그 동안 여러 날을 두고 몹시 앓았네. 무슨 원인인지 나도 모르게, 이―원인 알 수 없는 병이 나의 몸을 산 채로 더 삶을 수 없는 데까지 삶아 가지고는 죽음의 출입구까지 이끌어 갔던 것일세. 그때에 나의 곱게 청산하여 버렸던 나의 정신 어느 모에도 남아 있지 않아야만 할 재생하기 전에 일어났던 일까지도 재생 후의 그것과 함께 죽 단렬(單列)로 나의 의식(意識) 앞을 천천히 지나가고 있는 것이었네. 그리고 나는 반 의식의 나의 눈으로 그 행렬 가운데서 숨차게 허덕이던 과거의 나를 물끄러미 바라다보고 있던 것이었네. 그것은 내 눈에 너무도 불쌍한 꼴로 나타났었기 때문에,
아― 그것들은―
「이것이 죽은 것인가 보다. 적어도 죽어가는 것인가 보다.」
이렇게 몽롱히 느끼면서도
「죽는 것이 이렇기만 하다면야.」
이런 생각도 나서 일종의 통쾌까지도 느낀 것 같으며 그러나 죽어가는 나의 눈에 비치는 과거의 나의 모양 그 불쌍한 꼴을 보는 것은 확실히 슬픈 일일 뿐 아니라 고통이었네. 어쨌든 나를 간호하던 이 집 주인의 말에 의하면 무엇 나는 잠을 자면서도 늘―울고 있더라던가…….
「이것이 죽는 것이라면―」
이렇게 그―꼴사나운 행렬을 바라보던 나의 머리 가운데에는 내가 사랑에 주려 있는 형제와 옛친구를 애걸하듯이 그리며 그 행렬 가운데에 행여나 나타나기를 무한히 기다렸던 것일세. 이 마음이 아마 어떤 시인의 병석에서 부른―.
「얼른 이때 옛친구 한 번씩 모두 만나 둘 거나.」
하던 그 시경(詩境)에 노는 것이나 아닌가 하였네.
순전한 하숙(下宿)이라고만 볼 수도 없으나 그러나 괴상한 성격을 각각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지금의 나의 사는 곳일세. 이곳 주인은 나보다 퍽 연배(年輩)에 속하는 사람으로 그의 일상생활 양(樣)으로 보아 나의 마음을 끄는 바가 적지 않았으되 자세한 것은 더 자세히 안 다음에 써 보내겠거니와 하여간 내가 고국을 떠나 자네와 눈물로 작별 한 후로 처음으로 만난 가장 친한 친구의 한 사람으로 사괴이고 있는 것일세. 그와 나는 깊이깊이 인생을 이야기하였으며 나는 그의 말과 인격과 그리고 그의 생애에 많은 경의로써 대하고 있는 중일세.
운명의 악희가 내게 끼칠 「프로그램」은 아직도 다하지 아니하였던지 나는 그 죽음의 출입구가지 다녀온 병석으로부터 다시 일어났네. 생각하면 그 동안에 내가 흘린 「땀」만 해도 말(斗)로 계산할 듯하니 다시금 푹 젖은 욧바닥을 내려다 보며 이 몸의 하잘 것 없는 것을 탄식하여 마지 않았으며 피비린 냄새 나는 눈방울을 달음박질 시켜 가며 불려 놓았던 나의 「포켓」은 이번 병으로 말미암아 많이 줄어들었네. 그러나 병석에서도 나의 먹을 것의 걱정으로 말미암아 나의 그 「포켓」을 건드리게 되기는 주인의 동정이 너무나 컸던 것일세. 지금도 그의 동정을 받고 있을 뿐이야. 앞으로도 길이 그의 동정을 받지 않으리라고는 단언할 수 없으며.
「돈을 모아 볼까.」
내가 줄기차게 살아 보겠다는 결심으로 모은 돈을 남의 동정을 받아가면서도 쓰기를 아까와하는 나의 마음의 추한 것을 새삼스러이 발견하는 것 같아서 불유쾌하기 짝이 없네. 동시에 나의 마음이 잘못하면 허무주의에 돌아가지나 아니할까 하여 무한히 경계도 하고 있었네.
M군! 웃지 말아 주게. 나는 그 동안에 의학(醫學) 공부를 시작하였네. 그것은 내가 전부터 그 방면에 취미가 있었다는 것도 속일 수 없는 일이겠으나 또 의사인 자네를 따라가고 싶은 가엾은 마음에서 그리 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도 속일 수 없는 일이겠네. 모든 것이 다―그―줄기차게 살아가겠다는 가엾은 악지에서 나온 짓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칭찬하여 주기를 바라는 것일세. 또다시 생각하면 나의 몸이 불구자이므로 세상에 많은 불구자를 동정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그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내가 불구자인 것이 사실인 만큼 내가 의학 공부를 시작한 것도 자네에게는 너무나 돌연적이겠으나 역시 사실인 것을 어찌 하겠나. 여기에도 나는 주인의 많은 도움을 받아 오는 것을 말하여 두거니와 하여간 이 새로운 나의 노력(努力)이 나의 앞길에 또 어떠한 운명을 늘어놓도록 만들는지 아직도 수수께끼에 붙일 수밖에 없네.
불쌍한 의문에 싸였던 그 「정말 절뚝발이가 될는지」도, 끝끝내는 한 개의 완전한 절뚝발이로 울면서 하던 예언에 어기지 않은 채 다시금 동경시가에 나타났네그려! 오고가는 사람이 이 가엾은 「인생의 패배자」 절뚝발이를 누구나 비웃지 않고는 맞고 보내지 아니하는 것을 설워하는 불유쾌한 마음이 나는 아무리 용기를 내어 보았으나 소제시킬 수가 없이 뿌리 깊이 박혀 있네 그려.
「영원한 절뚝발이 그러나 절뚝발이의 무서운 힘을 보여 줄 걸 자세히 보아라」
이곳에서도 원한과 울분에 짖는 단말마의 전율할 신에 대한 복수의 맹서를 볼 수 있는 것일세. 내 몸이 이렇게 악지를 쓸 때에 나는 스스로 내 몸을 돌아다 보며 한없는 연민과 고독을 느끼는 것일세. 물에 빠져 애쓰는 사람의 목이 수면 위에 솟았을 때 그의 눈이 사면의 무변대해임을 바라보고 절망하는 듯한 일을 나는 우는 것일세. 그때마다 가장 세상에 마음을 주어 가까운 사람에게 둘러싸여 따뜻한 이불 속에 고요히 누워서 그들과 또 나의 미소를 서로 교환하는 그러한 안일한 생활이 하루바삐 실현되기를 무한히 꿈꾸고 있는 것일세. 그것은 즉시로 내 몸을 깊은 「노스탤지어」에 빠뜨리어서는 고향을 꿈꾸게 하고 친구를 꿈꾸게 하고 육친과 형제를 꿈꾸게 하도록 표상되는 것일세. 나는 가벼운 고통 가운데에도 눈물겨운 향수(鄕愁)의 쾌감을 눈 감고 가만히 느끼는 것일세.
명고옥(名古屋)의 쿡 생활 이후로 전전 유랑의 칠년 동안 한 번도 거울을 들여다본 적이 없던 나는 절뚝발이로 동경에 돌아와서 처음으로 거울에 비치는 나의 모양이 나로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을 만치 그렇게도 무섭게 변한 데에 「악!」 소리를 지르지 아니할 수 없었네. 그것은 청춘―뿐이랴 인생의 대부분을 박탈당한 썩어 찌그러진 험집[傷痕] 투성이의 값없는 골동품인 나였던 것일세.
그때에도 나는 또한 나의 동체(胴體)를 꽉 차서 치밀어 올라오는 무거운 「피스톤」에 눌리우는 듯한 절망에 빠졌었네. 그러나 즉시 그것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하는 것을 가르쳐 주며 이 패배의 인간을 위로하며 격려하여 주데.
그때에
「그러면 M군도 아차 T도!」
이런 생각이 암행열차(暗行列車)같이 나의 허리를 스쳐갔네. 별안간 자네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환등(幻燈)을 보는 어린 아해의
「무엇이 나올까」
하는 못생긴 생각에 가득 찼네. 그래서 나도 자네에게 나의 근영(近影)을 한 장 보내거니와 자네도 나의 환등을 보는 어린아해 같은 마음을 생각하여 자네의 최근 사진을 한 장 보내 주기를 바라네. 물론 서로 만나 보았으면 그 위에 더 시원하고 반가울 일이 있겠나마는 기필치 못할 우리의 운명은 지금도 자네와 나, 두 사람의 만날 수 있는 아무 방책도 가르쳐 주지 않네 그려!
내가 주인에게 그만큼 나의 마음을 붙일 수까지 있었느니만큼 아직 나는 아무 데로도 옮길 생각은 없네. 지금 생각 같아서는 앞으로 얼마든지 이곳에 있을 것 같으니까 나에게 결정적 변동이 없는 한 자네는 안심하고 이곳으로 편지하여 주기를 바라네. T는 요즈음 어떠한가 여전히 적빈(赤貧)에 심신(心身)을 쪼들리우고 있다 하니 그도 한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지 않겠나.
나의 안부 잘 전하여 주게. 내가 집을 떠나 십년 동안 T에게 한 장 편지를 직접 부치지 아니한 데 대하여서는―나의 마음 가운데에 털끝만치라도 T에게 악의가 있지 아니한 것은 물론 자네가 잘 알고 있으니깐―자네의 사진이 오기를 기다리며, 또 자네의 여전한 건강을 빌며―영원한 절뚝발이 X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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