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 [870531] · MS 2019 (수정됨) · 쪽지

2022-04-15 10: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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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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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에게 보내는 편지(四信) 


태양은― 언제나 물체들의 짧은 그림자를 던져 준 적이 없는 그 태양을 머리에 이고―였다느니보다는 비뚜로 바라다보며 살아가는 곳이 내가 재생(再生)하기 전에 살던 곳이겠네. 태양은 정오(正午)에도 결코 물체들의 짧은 그림자를 던져 주기를 영원히 거절하여 있는―물체들은 영원히 긴 그림자만을 가짐에 만족하고 있지 아니하면 아니될―그만큼 북극권(北極圈)에 가까운 위경도(緯經度)의 숫자를 소유한 곳―그 곳이 내가 재생하기 전에 내가 살던 참으로 꿈 같은 세계이겠네. 원시(原始)를 자랑스러운 듯이 이야기하며 하늘의 높은 것만 알았던지 법선(法線)으로만 법선으로만 이렇게 울립(鬱立)하여 있는 무수한 침엽수(針葉樹)들은 백중천중(白重千重)으로 포개져 있는 잎새 사이로 담황색(淡黃色) 태양광을 황홀한 간섭작용(干涉作用)으로 투과(透過)시키고 있는 잠자고 있는 듯한 광경이 내가 재생하기 전에 살던 그 나라 그 북극이 아니면 어느 곳에서도 얻어 볼 수 없는 시적 정조(詩的 情調)인 것이겠네. 오로지 지금에는 꿈―꿈이라면 너무나 깊이가 깊고 잊어버리기에 너무나 감명 독(感銘毒)한 꿈으로만 나의 변화만은 생(生)의 한 조각답게 기억되네마는 그 언제나 휘발유 찌꺼기 같은 값싼 음식에 살찐 사람의 지방(脂肪) 빛 같은 그 하늘을 내가 부득이 연상할 적마다 구름 한 점 없는 이 청천을 보고 있는 나의 개인(個人) 마음까지 지저분한 막대기로 휘저어 놓는 것 같네. 그것은 영원히 나의 마음의 흐리터분한 기억으로 조곰이라도 밝은 빛을 얻어보려고 고달파하는 나의 가엾은 노력에 최후까지 수반(隨伴)될 저주할 방해물인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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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육안(肉眼)의 부정확한 오차(誤差)를 관대히 본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십 오도(25°)에는 내리지 않을 치명적 「슬로우프」(傾斜)이었을 것일세. 그 뒷둑뒷둑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궤도(軌道) 위의 바람을 쪼개고 공간을 쪼개고 맥진(驀進)하는 「토로코」 위에 내 몸을 싣는 것은 전혀 나의 생명을 그대로 내어던지려는 것과 조곰도 다름없는 것일세. 이미 부정(否定)된 생(生)을 식도(食道)라는 질긴 줄에 포박당하여 억지로 질질 끌려가는 그들의 「살아간다는 것」은 그들의 피부와 조곰도 질 것 없이 조고 만치의 윤택도 없는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그들의 메마른 인후(咽喉)를 통과하는 격렬한 공기의 진동은 모두가 창조의 신에 대한 최후적 마멸(馬蔑)의 절규(絶叫)인 것일세. 그 음울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싫다는 것을 억지로 매질을 받아가며 강제되는 「삶」에 대하여 필사적 항의를 드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오직 그들의 눈에는 천고의 백설을 머리 위에 이고 풍우로 더불어 이야기하는 연산의 봄도라지들도 한낱 악마의 우상밖에 아무것으로도 보이지 않는 것일세. 그때에 사람의 마음은 환경의 거울이라는 것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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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생으로 말미암아 생에 대한 새로운 용기와 환희를 한 몸에 획득한 것 같은 지금의 나로 변하여 있는 것일세. 그러기에 전세의 나를 그 혈사(血史)를 고백하기에 의외의 통쾌와 얼마의 자만까지 느끼는 것이 아니겠나. 내가 그 경사 위에서 참으로 생명을 내어던지는 일을 하던 그 의식 없던 과정을 자네에게 쏟아뜨리는 것도 필연컨대 그 용기와 그 기쁨에 격려된 한 표상이 아닐까 하는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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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의 나의 생에 대한 신념은―구태여 신념이 있었다고 하면 그것은 너무나 유희적이었음에 놀라지 아니할 수 없네. 


「사람이 유희적으로 살 수가 있담?」 결국 나는 때때로 허무 두 자를 입밖에 헤뜨리며 거리를 왕래하는 한 개 조고마한 경멸할 「니힐리스트」였던 것일세. 생을 찾다가, 생을 부정했다가 드디어 첨으로 귀의하여야 할 나의 과정은―나는 허무에 귀의하기 전에 벌써 생을 부정하였어야 될 터인데―어느 때에 내가 나의 생을 부정했던가……집을 떠날 때! 그때는 내가 줄기찬 힘으로 생에 매어달리지 않았던가. 그러면 어머님을 잃었을 때! 그때 나는 어언간 무수한 허무를 입 밖에 방산시킨 뒤가 아니었던가. 그 사이! 내가 집을 떠날 때부터 어머님을 잃을 때까지 그 사이는 실로 짧은 동안……뿐이랴 그 동안에 나는 생을 부정해야만 할 아무런 이유도 가지지 않았던가. 생을 부정할 아무 이유도 없이 앙감질[單足跳]로 허탄히 허무를 질질 흘려 왔다는 그 희롱적 나의 과거가 부끄럽고 꾸지람하고 싶은 것일세. 회한을 느끼는 것일세. 


「생을 부정할 아무 이유도 없다. 허무를 운운할 아무 이유도 없다. 힘차게 살아야만 하는 것이…….」 재생한 뒤의 나는 나의 몸과 마음에 채찍질하여 온 것일세. 누구는 말하였지. 


「신에게 대한 최후의 복수는 내 몸을 사바로부터 사라뜨리는 데 있다」고. 그러나 나는 「신에게 대한 최후의 복수는 부정되려는 생을 줄기차게 살아가는 데 있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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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신뢰(迅雷)와 같이 그 「슬로우프」를 나려 줄이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순간에, 어떠한 순간이었네. 내 귀에는 무서운 소리가 들려왔어. 「X야, 뛰어 내려라 죽는다……」 


「네 뒤 토로가 비었다[空] 뛰어내려라!」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네. 과연 나의 뒤를 몇 간 안되게까지 육박해 온―반드시 조종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할 그 토로 위에는 사람이 없는 것이었네. 나는 브레이크를 놓았네. 동시에 나의 토로도 무서운 속도로 나의 앞에 가는 토로를 육박하는 것이었네. 나는 토로 위에서 필사적으로 부르짖었네. 


「야! 앞의 토로야. 브레이크를 놓아라. 충돌된다. 죽는다. 내 뒤 토로에는 사람이 없다. 브레이크를 놓아라.」 그러나 앞의 토로는 브레이크를 놓을 수는 없었네. 그것은 레일이 끝나는 종점에 거의 가까이 닿았으므로 앞의 토로는 도리어 브레이크를 눌러야만 할 필요에 있는 것이었네.

 

「내가 뛰어내려 그러면 내 토로의 브레이크는 놓아진다. 그러면 내 토로는 앞의 토로와 충돌된다. 그러면 앞의 놈은 죽는다…….」 나는 뒤를 또 한 번 돌아다보았네. 얼마 전에 놀래어 브레이크를 놓은 나의 토로보다도 훨씬 먼저 브레이크가 놓아진 내 뒤 토로는 내 토로 이상의 가속도로 내 토로를 각각으로 육박해 와서 이제는 한 두 간 뒤―몇 초 뒤에는 내 목숨을 내어던져야 될 (참으로) 충돌이 일어날―그렇게 가깝게 육박해 있는 것이었네. 


「뛰어내리지 아니하고 이대로 있으면 아무리 브레이크를 놓아도 나는 뒤 토로에 충돌되어 죽을 것이다. 뛰어내려? 그러면 내가 뛰어내린 빈 토로와 그 뒤를 육박하던 빈 토로는 충돌될 것이다. 다행히 선로 바깥으로 굴러 떨어지면 좋겠지만 선로 위에 그대로 조곰이라도 걸쳐 놓인다면 그 뒤를 따르던 토로들은 이 갑빠진 토로에 충돌되어 쓰러지고 또 그 뒤를 따르던 토로는 거기서 충돌되고, 또 그 뒤를 따르던 토로는 거기서 충돌되고, 이렇게 수없는 토로들은 뒤으로 뒤으로 충돌되어 그 위에 탔던 사람들은 죽고 다치고……!」 나는 세 번째 도한 거의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다보았네. 그러나 다행히 넷째 토로부터 앞에 올 위험을 예기하였던지 브레이크를 벌써 눌러서 멀리 보이지도 않을 만큼 떨어져서 가만가만히 내려오고 있는 것이었네. 다만 화산(火山)의 분화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눈초리와 같은 그러한 공포에 가득찬 눈초리로 멀리 앞을―우리들을 바라다보고 있는 것이었네. 그때에 


「뛰어내리자. 그래야만 앞의 사람이 산다.」 내가 화살 같은 토로에서 발을 떼이려 하는 순간 때는 이미 늦었었네 뒤에 육박해 오던 주인 없는 토로는 무슨 증오(憎惡)가 나에게 그리 깊었던지 젖먹은 기운까지 다하는 단말마의 야수같이 나의 토로에 거대한 음향과 함께 충돌되고 말았네. 그 순간에 우주는 나로부터 소멸되고 다만 오랜 동안의 무(無)가 계속되었을 뿐이었다고 보고할 만치 모든 일과 물건들은 나의 정신권 내에 있지 아니하였던 것일세. 다만 재생한 후 멀리 내 토로의 뒤를 따르던 몇 사람으로부터 「공중에 솟았던」 나의 그후 존재를 신화(神話) 삼아 들었을 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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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되던 첫순간 나의 눈에 비쳐진 나의 주위에 더러운 광경을 나는 자네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네. 그것은 그런 것을 쓰고 있는 동안에 나의 마음에 혹이나 동요가 생기지나 아니할까 하는 위험스러운 의문에서―그러나 나의 주위에 있는 동무들의 참으로 근심스러워 하는 표정의 얼굴들이 두 번째로 나의 눈에 비치었을 때에 의식을 잃은 나의 전 몸뚱어리에서 다만 나의 입만이 부드럽게― 참으로 고요히― 참으로 착하게 미소하는 것을 내 눈으로도 보는 것 같았었네. 나는 감사하였네. 신에게보다도 우선 그들 동무에게―감사는 영원히 신에게 드림없이 그 동무들에게만 그치고 말는지도 몰라. 내 팔이 아직도 나의 동체(胴體)에 달려 있는가 만져 보려 하였으나 그 팔 자신이 벌써 전부터 생리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된 지 오래였던 모양이데. 나는 다시 그들 동무들에게 감사하며 환계(幻界) 같은 꿈 속으로 깊이 빠지고 말았네. 나는 어머니에게 좀더 값있는 참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하지 못한 「내」가 악마―신이 아니라―에게 무수히 매맞는 것을 보았네. 그리고 나는 「나」에게 욕하였고 경멸하였네. 그리고 나는 좀더 건실하게 살지 않았던 「쿡」 생활 이후의 「내」가 또한 악마에게 매맞는 것을 보았네 그리고 나는 나에게 욕하였고 경멸하였네. 그리고 생애 새로운 참다운 의의(意義)와 신에 대한 최후적 복수의 결심을 마음 속으로 깊이 암송하였네. 그 꿈은 나의 죽은 과거와 재생 후의 나 사이에 형상지어져 있는 과도기에 의미 깊은 꿈이었네. 하여간 이를 갈아 가며라도 살아가겠다는 악지가 나의 생애 대한 변경시키지 못할 신념이었네. 다만 나의 의미없이 또 광명없이 그대로 삭제(削除)되어 버린 과거―나의 인생의 한부분을 섧―게 조상(吊喪)하였을 따름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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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끝만한 인정미(人情味)도 포함하고 있지 아니한 바깥에 부는 바람은 이 북국에 장차 엄습하여 올 무서운 기절을 교활하게 예고하고 있는 것이나 아니겠나. 번개같이 스치는 지난 겨울, 이곳에서 받은 나의 육체적 고통의 기억의 단편들은 눈 깜박할 사이에 무죄한 나를 전율(戰慄)시키는 것일세. 이 무서운 기절이 이 나라에 찾아오기 전에 어서 이곳을 떠나서 바람이나마 인정미―비록 그러한 사람은 못 만나더라도―있는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야 할 터인데 나의 몸은 아직도 전연 부자유에 비끄러매여 있네― 그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의사하는 사람은 나의 반드시 원상대로의 복구를 예언하데마는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방문 밖에서 


「절뚝발이는 아무래도 면치 못하리라」 


이렇게 근심(?)하는 그들의 말소리를 들었네 그려― 만일에 내가 그들의 이 말과 같이 참으로 절뚝발이가 되고 만다 하면―나는 이 생각을 하며 내 마음이 우는 것을 느끼네. 


「절뚝발이」 


여태껏 내 몸 위에 뒤집어씌워져 있던 무수한 대명찰(代名札) 외에 나에게는 또 이러한 새로운 대명찰 하나가 더 뒤집어지는구나― 어디까지라도 깜깜한 암흑에 지질리워 있는 나의 앞길을 건너다 보며 영원히 나의 신변에서 없어진 등불을 원망하는 것일세. 절뚝발이도 살 수 있을까― 절뚝발이도 살게 하는 그렇게 관대한 세계가 지상에 어느 한 귀퉁이에 있을까? 자네는 이 속타는 나의 물음―아니 차라리 부르짖음에 대하여 대답할 무슨 재료, 아니 용기라도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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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국 생활 칠년! 그 동안에 나는 지적(知的)으로나 덕적(德的)으로나 많은 교훈을 얻은 것만은 사실일세. 머지 아니한 장래에 그 전에 나보다 확실히 더 늙은 절뚝발이의 내가 동경에 다시 나타날 것을 약속하네. 그곳에는 그래도 조곰이라도 따뜻한 나의 식어빠진 인생을 조곰이라도 덥혀줄 바람이 불 것을 꿈꾸며 줄기차게 정말 악마까지도 나를 미워할 때가지 줄기차게 살겠다는 것도 약속하네. 재생한 나이니까 물론 과거의 일체 추상(醜相)은 곱게 청산하여 버리고 박물관 내의 한 권의 역사책으로 하여 가만히 표지를 덮는 것일세. 모든 새로운 광채 찬란한 역사는 이제로부터 전개할 것일세. 하면서도 


「절뚝발이가?……」 


새로이 방문하여 오는 절망을 느끼면서도 아직 나는 최후까지 줄기차게 살 것을 맹세하는 것일세. 과거를 너무 지껄이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면 장래를 너무 지껄이는 것도 어리석은 일일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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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군! 자네가 편지를 손에 들고 글자 글자를 자네 눈에 통과시킬 때, 자네 눈에 몇 방울 눈물이 있으리란 추측이 그렇게 억측일까 그러나 감히 바란다면 「첫째로는 자네의 생에 대한 실망을 경계할 것이며 둘째로는 나의 절뚝발이에 대하여 형식적 동정에 그칠 것이요, 결코 자살적 비애를 느끼지 말 것들」이겠네. 그것은 나의 지금 이 「줄기차게 살겠다는」 무서운 고집에 조고마한 실망적 파동이라도 이끌어 올까 두려워서……나의 염세(厭世)에 대한 결사적 투쟁은 자네의 신경을 번잡케 할 만치 되어 나아갈 것을 자네에게 약속하기를 꺼리지 아니하네. 자네의 건강을 비는 동시에 못 면할 이 절뚝발이의 또한 건강이 있기를 빌어주기를 은근히 바라며. X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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