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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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明示)
여자란 과연 천혜(天惠)처럼 남자를 철두철미 쳐다보라는 의무를 사상의 선결조건으로 하는 탄성체던가.
다음 순간 내 최후의 취미가,
"가축은 인제는 싫다."
이렇게 쾌히 부르짖은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망각의 벌판에다 내다던지고 얄따란 취미 한풀만을 질질 끌고 다니는 자기 자신문지방을 이제는 넘어 나오고 싶어졌다.
우환!
유리 속에서 웃는 그런 불길한 유령의 웃음은 싫다. 인제는 소리를 가장 쾌활하게 질러서 손으로 만지려면 만져지는 그런 웃음을 웃고 싶은 것이다. 우환이 있는 것도 아니요, 우환이 없는 것도 아니요, 나는 심야의 차도에 내려선 초연한 성격으로 이런 속된 혼탁에서 돌아 서 보았으면 ―― 그러기에는 이번에 적잖이 기술을 요했다. 칼로 물을 베듯이,
"아차! 나는 T가 월급이군그래, 잊어버렸구나(하건만 나는 덜 배앝아 놓은 것이 혀에 미꾸라지처럼 걸려서 근질근질한다. 윤은 혹은 식물과 같이 인문(人文)을 떠난 방탄 조끼를 입었나)! 그러나 윤! 들어 보게, 자네가 모조리 핥았다는 임이의 나체는 그건 임이가 목욕할 때 입는 비누 드레스나 마찬가질세! 지금 아니! 전무후무하게 임이 벌거숭이는 내게 독점된 걸세, 그리게 자넨 그만큼 해두구 그 병정 구두 겉은 교만을 좀 버리란 말일세, 알아듣겠나."
윤은 낙조(落照)를 받은 것처럼 얼굴이 불콰하다. 거기 조소가 지방처럼 윤이 나서 만연하는 것이 내 전투력을 재채기시킨다.
윤은 내가 불쌍하다는 듯이,
"내가 이만큼꺼지 사양허는데 자네가 공연히 자꾸 그러면 또 모르네, 내 성가셔서 자네 따귀 한 대쯤 갈길는지두."
이런 어리석어 빠진 논쟁을 왜 내게 재판을 청하지 않느냐는 듯이 그레이하운드가 구두를 기껏 흔들다가 그치는 것을 보아 임이는 무용의 어떤 포즈 같은 손짓으로,
"지이가 됴스의 여신입니다. 둘이 어디 모가질 한번 바꿔 붙여 보시지요. 안 되지요? 그러니 그만들 두시란 말입니다. 윤헌테 내어준 육체는 거기 해당한 정조가 법률처럼 붙어 갔던 거구요, 또 지이가 어저께 결혼했다구 여기두 여기 해당한 정조가 따라왔으니까 뽐낼 것두 없능 거구, 질투 헐 것두 없능 거구, 그러지 말구 겉은 선수끼리 악수나 허시지요, 네?"
윤과 나는 악수하지 않았다. 악수 이상의 통봉(痛棒)이 윤은 몰라도 적어도 내 위에는 내려앉았는 것이니까. 이것은 여기 앉았다가 밴댕이처럼 납작해질 징조가 아닌가. 겁이 차츰차츰 나서 나는 벌떡 일어나면서 들창 밖으로 침을 탁 배앝을까 하다가 자분참,
"그렇지만 자네는 만금을 기울여두 이젠 임이 나체 스냅 하나 보기두 어려울 줄 알게. 조끔두 사양 헐 게 없이 국으루 나허구 병행해서 온전한 정의를 유지허능 게 어떵가?"
하니까,
"이착(二着) 열 번 헌 눔이 아무래두 일착 단 한 번 헌 눔 앞에서 고갤 못 드는 법일세, 자네두 그만헌 예의쯤 분간이 슬 듯헌데 왜 그리 바들짝바들짝허나 응? 그러구 그 만금이니 만만금이니 허능 건 또 다 뭔가? 나라는 사람은 말일세 자세 듣게, 여자가 날 싫여하면 헐수록 좋아하는 체허구 쫓아댕기다가두 그 여자가 섣불리 그럼 허구 좋아허는 낯을 단 한 번 허는 날에는, 즉 말허자면 마즈막 물건을 단 한 번 건드리구 난 다음엔 당장 눈앞에서 그 여자가 싫여지는 성질일세, 그건 자네가 아주 바루 정의가 어쩌니 허지만 이거야말루 내 정의에서 우러나오는 걸세. 대체 난 나버덤 낮은 인간이 싫으예. 여자가 한번 제 마즈막 것을 구경시킨 다음엔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밑으루 내려가서 그 남자를 쳐다보기 시작이거든, 난 이게 견딜 수 없게 싫단 그 말일세."
나는 그제는 사뭇 돌아섰다. 그만큼 정밀한 모욕에는 더 견디기 어려워서.
윤은 새로 담배에 불을 붙여 물더니 주머니를 뒤적뒤적한다. 나를 살해하기 위한 흉기를 찾는 것일까. 담뱃불은 이미 붙었는데―---
"여기 십 원 있네. 가서 가난헌 T군 졸르지 말구 자네가 T군헌테 한잔 사주게나. 자넨 오늘 그 자네 서 푼째리 체면 때문에 꽤 우울해진 모양이니 자네 소위 신부허구 같이 있다가는 좀 위험헐걸, 그러니까 말일세 그 신부는 내 오늘 같이 키네마(시네마)루 모시구 갈 테니 안헐말루 잠시 빌리게, 응? 왜 맘이 꺼림칙헝가?"
"너무 세밀허게 내 행동을 지정하지 말게, 하여간 난 혼자 좀 나가야겠으니 임이, 윤군허구 키네마 가지 응, 키네마 좋아허지 왜."
하고 말끝이 채 맺기 전에 임이 뾰루퉁하면서―---
"임이 남편을 그렇게 맘대루 동정허거나 자선하거나 헐 권리는 남에겐 더군다나 없습니다. 자― 그거 받아서는 안 됩니다. 여깄에요."
하고 내어놓은 무수한 십 전짜리.
"하 하 야 이것 봐라."
윤은 담뱃불을 재떨이에다 벌레 죽이듯이 꼭꼭 이기면서 좀처럼 웃음을 얼굴에서 걷지 않는다.
나도 사실 속으로, '하하 야 요것 봐라.' 안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도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임의 등을 어루만져 주고 그 백동화를 한움큼 주머니에 넣고 그리고 과연 윤의 집을 나서는 길이다.
"이따 파헐 임시 해서 내 키네마 문 밖에서 기다리지, 어디지?"
"단성사. 헌데 말이 났으니 말이지 난 오늘 친구헌테 술값 꿔주는 권리를 완전히 구속당했능걸!
어! 쯧 쯧."
적어도 백보 가량은 앞이 매음을 돌았다. 무던히 어지러워서 비칠비칠하기까지 한 것을 나는 아무에게도 자랑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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