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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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입반대(乞入反對)
이런 정경ㅡ마저 불쑥 내어놓는 날이면 이번 복수(復讐) 행위는 완벽으로 흐지부지하리라. 적어도 완벽에 가깝기는 하리라.
한 사람의 여인이 내게 그 숙명을 공개해 주었다면 그렇게 쉽사리 공개를 받은――참회를 듣는 신부 같은 지위에 있어서 보았다고 자랑해도 좋은――나는 비교적 행복스러웠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어디까지든지 약다. 약으니까 그렇게 거저 먹게 내 행복을 얼굴에 나타내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로직을 불언실행(不言實行)하기 위하여서만으로도 내가 그 구중중한 수염을 깎지 않은 것은 지당한 중에도 지당한 맵시일 것이다.
그래도 이 우둔한 여인은 내 얼굴에 더덕더덕 붙은 바 추(醜)를 지적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숙명을 공개하던 구실도 헛되거니와 그 여인의 애정이 부족한 탓이리라. 아니 전혀 없다.
나는 바른 대로 말하면 애정 같은 것은 희망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결혼한 이튿날 신부를 데리고 외출했다가 다행히 길에서 그 신부를 잃어버렸다고 하자. 내가 그럼 밤잠을 못 자고 찾을까. 그때 가령 이런 엄청난 글발이 날아들어 왔다고 내가 은근히 희망한다.
'소생이 모월 모일 길에서 주운 바 소녀는 귀하의 신부임이 확실한 듯하기에 통지하오니 찾아가시오.'
그래도 나는 고집을 부리고 안 간다. 발이 있으면 오겠지, 하고 나의 염두에는 그저 왕양(汪洋)한 자유가 있을 뿐이다.
돈지갑을 어느 포켓에다 넣었는지 모르는 사람만이 용이하게 돈지갑을 잃어버릴 수 있듯이, 나는 길을 걸으면서도 결코 신부 임이에 대하여 주의를 하지 않기로 주의한다. 또 사실 나는 좀 편두통이다. 오월의 교외 길은 좀 눈이 부셔서 실없이 어찔어찔하다.
주마가편(走馬加鞭)
이런 느낌이다.
임이는 결코 결혼 이튿날 걷는 길을 앞서지 않으니 임이로 치면 이날 사실 가볼 만한 데가 없다는 것일까. 임이는 그럼 뜻밖에도 고독하던가.
닫는 말에 한층 채찍을 내리우는 형상, 임이의 작은 보폭이 어디 어느 지점에서 졸도를 하나 보고 싶기도 해서 좀 심청맞으나 자분참 걸었던 것인데―― 아니나다를까? 떡 없다.
내 상식으로 하면 귀한 사람이 가축을 끌고 소요하려 할 때 으레 가축이 앞선다는 것이다.
앞서 가는 내가 놀라야 하나. 이 경우에 그러면 그렇지 하고 까딱도 하지 않아야 더 점잖은가.
아직은? 했건만도. 어언간 없어졌다.
나는 내 고독과 내 노년을 생각하고 거기는 은행 벽 모퉁이인 것도 채 인식하지도 못하는 중 서서 그래도 서너 번은 뒤 혹은 양곁을 둘러보았다. 단발 양장의 소녀는 마침 드물다.
'이만하면 유실이군?' 닥쳐와야 할 일이 척 닥쳐왔을 때 나는 내 갈팡질팡하는 육신을 수습해야 한다. 그러나 임이는 은행 정문으로부터 마술처럼 나온다. 하이힐이 아까보다는 사뭇 무거워 보이기도 하는데, 이상스럽지는 않다.
"십 원째리를 죄다 십 전째리루 바꿨지, 이거 좀 봐, 이망큼이야, 주머니에다 느세요."
주마가편이라는 상쾌한 내 어휘에 드디어 슬럼프가 왔다는 것이다.
나는 기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담하게 그럴 성싶은 표정을 이 소녀 앞에서 하는 수는 없다.
그래서 얼른, SEU VENIR!
균형된 보조가 똑같은 목적을 향하여 걸었다면 겉으로 보기에 친화하기도 하련만, 나는 내 마음에 인내를 명령하여 놓고 패러독스에 의한 복수에 착수한다. 얼마나 요런 암상은 참나? 계산은 말잔다. 애정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증거!
그러나 내 입에서 복수라는 말이 떨어진 이상 나만은 내 임이에게 대한 애정을 있다고 우길 수 있는 것이다.
보자! 얼마간 피곤한 내 두 발과 임이의 한 켤레 하이힐이 윤의 집 문간에 가 서게 되었는데도 깜찍스럽게 임이가 성을 안 낸다. 안차고 겸하여 다라지기도 하다.
윤은 부재요, 그러면 내가 뜻하지 않고 임이의 안색을 살필 기회가 온 것이기에, 'P.M. 다섯시까지 따이먼드로 오기를.' 이렇게 적어서 안잠자기에게 전하고 흘낏 임을 노려보았더니―― 얼떨결에 색소가 없는 혈액이라는 설명할 수사학(修辭學)을 나는 내가 마치 임이 편인 것처럼 민첩하게 찾아 놓았다.
폭풍이 눈앞에 온 경우에도 얼굴빛이 변해지지 않는 그런 얼굴이야말로 인간고(人間苦)의 근원이리라. 실로 나는 울창한 삼림 속을 진종일 헤매고 끝끝내 한 나무의 인상을 훔쳐 오지 못한 환각의 인(人)이다. 무수한 표정의 말뚝이 공동묘지처럼 내게는 똑같아 보이기만 하니 멀리 이 분주한 초조를 어떻게 점잔을 빼어서 구하느냐.
따이먼드 다방 문 앞에서 너무 머뭇머뭇하느라고 들어가지 못하고 말기는 처음이다. 윤이 오면 ―― 따이먼드 보이녀석은 윤과 임이 여기서 그늘을 사랑하는 부부인 것까지도 알고, 하니까 나는 다시 내 필적을, 'P.M. 여섯시까지 집으로 저녁을 토식(討食)하러 가리로다. 물경(勿驚) 부처(夫妻).' 주고 나왔다. 나온 것은 나왔다뿐이지,
DOUGHTY DOG
이라는 가증(可憎)한 장난감을 살 의사는 없다. 그것은 다만 십 원짜리 체인지(환전)와 아울러 임이의 분간 못 할 천후(天候)에서 나온 경증의 도박이리라.
여섯시에 일어난 사건에서 나는 완전히 실각했다.
가령――(내가 윤더러)
"아아 있군그래, 따이먼드에 갔던가, 게다 여섯시에 오께 밥 달라구 적어 놨는데 밥이라면 술이 붙으렷다."
"갔지, 가구말구, 밥은 예펜네가 어딜 가서 아직 안 됐구, 술은 미리 먹구 왔구."
첫째 윤은 따이먼드까지 안 갔다. 고 안잠자기 말이 아이구 댕겨가신 지 오 분두 못 돼서 드로세서 여태 기대리셨는데요――P. M. 다섯시는 즉 말하자면 나를 힘써 만날 것이 없다는 태도다.
"대단히 교만하다."
이러려다 그만두어야 했다. 나는 그 대신 배를 좀 불쑥 앞으로 내어밀고,
"내 아내를 소개허지, 이름은 임이."
"아내? 허― 착각을 일으켰군그래, 내 짐작 같애서는 그게 내 아내 비슷두 헌데!"
"내가 더 미안헌 말 한마디만 허까, 이 따위 서 푼째리 소설을 쓰느라고 내가 만년필을 쥐이지 않았겠나, 추억이라는 건 요컨대 이 만년필망큼두 손에 직접 잽히능 게 아니란 내 학설이지, 어때?"
"먹다 냉길 걸 몰르구 집어먹었네그려. 자넨 자고로 귀족 취미는 아니라니까, 아따 자네 위생이 부족헌 체허구 그저 그대루 견디게그려, 내게 암만 퉁명을 부려야 낸들 또 한번 멖다 버린 만년필을 인제 와서 어쩌겠나."
내 얼굴은 담박 잠잠하다. 할 말이 없다. 핑계삼아 내 포켓에서, DOUGHTY DOG을 꺼내 놓고 스프링을 감아 준다. 한 마리의 그레이하운드가 제 몸집만이나 한 구두 한 짝을 물고 늘어져서 흔든다. 죽도록 흔들어도 구두는 구두대로 개는 개대로 강철의 위치를 변경하는 수가 없는 것이 딱하기가 짝이 없고 또 내가 더럽다.
DOUGHTY는 더럽다는 말인가. 초조하다는 말인가. 이 글자의 위압에 참 나는 견딜 수 없다.
"아닝게아니라 나두 깜짝 놀랐네, 놀란 것이 지애가(안잠자기가) 내 댕겨 두로니까 헌다는 소리가, 한 마흔댓 되는 이가 열칠팔 되는 시액시를 데리구 날 찾어왔더라구, 딸 겉기두 헌데 또 첩 겉기두 허더라구, 종잇조각을 봐두 자네 이름을 안 썼으니 누군지 알 수 없구, 덮어놓구 따이먼드루 찾어갔다가 또 혹시 실수허지나 않을까 봐, 예끼 그만 내버려둬라 제눔이 누구등 간에 날 보구 싶으면 찾어오겠지 허구 기대리든 차에, 하하 이건 좀 일이 제대루 되질 않은 것 겉기두 허예 어째."
나는 좋은 기회에 임이를 한번 어디 돌아다보았다. 어족(魚族)이나 다름없이 뭉툭한 채 그 이 두 남자를 건드렸다 말았다 한 손을 솜씨있게 놀려, DOUGHTY DOG 스프링을 감아 주고 있다. 이것이 나로서 성화가 날 일이 아니면 죄(罪) 시인이다. 아― 아― 나는 아― 아― 하기를 면하고 싶어도 다음에 내 무너져 들어가는 육체를 지지(支持)할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도록 공부하지 않고는 이 구중중한 아― 아―를 모른 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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