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 [870531] · MS 2019 (수정됨) · 쪽지

2022-04-04 07:29:48
조회수 838

동해(1)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55973805

촉각 


촉각이 이런 정경을 도해(圖解)한다. 


유구한 세월에서 눈뜨니 보자, 나는 교외 정건(淨乾)한 한 방에 누워 자급자족하고 있다. 눈을 둘러 방을 살피면 방은 추억처럼 착석한다. 또 창이 어둑어둑하다. 


불원간 나는 굳이 지킬 한 개 슈트케이스를 발견하고 놀라야 한다. 계속하여 그 슈트케이스 곁에 화초처럼 놓여 있는 한 젊은 여인도 발견한다. 


나는 실없이 의아하기도 해서 좀 쳐다보면 각시가 방긋이 웃는 것이 아니냐. 하하, 이것은 기억에 있다. 내가 열심으로 연구한다. 누가 저 새악시를 사랑하던가! 연구중에는, 


"저게 새벽일까? 그럼 저묾일까?" 


부러 이런 소리를 했다. 여인은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하더니 또 방긋이 웃고 부스스 오월 철에 맞는 치마저고리 소리를 내면서 슈트케이스를 열고 그 속에서 서슬이 퍼런 칼을 한 자루만 꺼낸다. 


이런 경우에 내가 놀라는 빛을 보이거나 했다가는 뒷갈망하기가 좀 어렵다. 반사적으로 그냥 손이 목을 눌렀다 놓았다 하면서 제법 천연스럽게, 


"님재는 자객입늬까요?" 


서투른 서도(西道) 사투리다. 얼굴이 더 깨끗해지면서 가느다랗게 잠시 웃더니, 그것은 또 언제 갖다 놓았던 것인지 내 머리맡에서 나쓰미캉을 집어다가 그 칼로 싸각싸각 깎는다. 


"요곳 봐라!" 


내 입 안으로 침이 쫘르르 돌더니 불현듯이 농담이 하고 싶어 죽겠다. 


"가시내애요, 날쭘 보이소, 나캉 결혼할랑기요? 맹서(盟誓)듸나? 듸제?" 


또, 


"융(尹)이 날로 패아 주뭉 내사 고마 마자 주울란다. 그람 늬능 우앨랑가? 잉?" 


우리들이 맛있게 먹었다. 시간은 분명히 밤에 쏟아져 들어온다. 손으로 손을 잡고, 


"밤이 오지 않고는 결혼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 탄식한다. 기대하지 않은 간지러운 경험이다. 


낄낄낄낄 웃었으면 좋겠는데―― 아― 결혼하면 무엇 하나, 나 따위가 생각해서 알 일이 되나? 


그러나 재미있는 일이로다. 


"밤이지요?" 


"아―냐." 


"왜―― 밤인데―― 애―― 우숩다―― 밤인데 그러네." 

"아―냐, 아―냐." 


"그러지 마세요, 밤이에요." 


"그럼 뭐, 결혼해야 허게." 


"그럼요――" 


"히히히히――" 


결혼하면 나는 임(姙)이를 미워한다. 윤? 임이는 지금 윤한테서 오는 길이다. 윤이 내어 대었단다. 그래 보는 거다. 그런데 임이가 채 오해했다. 정말 그러는 줄 알고 울고 왔다. 


'애개― 밤일세.' 


"어떡허구 왔누." 


"건 알아 뭐 허세요?" 


"그래두." 


"제가 버리구 왔에요." 


"족히?" 


"그럼요!" 


"히히." 


"절 모욕하지 마세요." 


"그래라." 

일어나더니――나는 지금 이러한 임이를 좀 묘사해야겠는데, 최소한도로 그 차림차림이라도 알아두어야겠는데――임이 슈트케이스를 뒤집어엎는다. 왜 저러누―― 하면서 보자니까 야단이다. 죄다 파헤치고 무엇인지 찾는 모양인데 무엇을 찾는지 알아야 나도 조력을 하지, 저렇게 방정만 떠니 낸들 손을 대일 수가 있나, 내버려두었다가도 참다못해서, 


"거 뭘 찾누?" 


"엉― 엉― 반지―― 엉― 엉―" 


"원 세상에, 반진 또 무슨 반진구." 


"결혼 반지지." 


"옳아, 옳아, 옳아, 응, 결혼 반지렷다." 


"아이구 어딜 갔누, 요게, 어딜 갔을까." 


결혼 반지를 잊어버리고 온 신부, 라는 것이 있을까? 가소롭다. 그러나 모르는 말이다, 라는 것이 반지는 신랑이 준비하라는 것인데――그래서 아주 아는 척하고, 


"그건 내 슈트케이스에 들어 있는 게 원칙적으로 옳지!" 


"슈트케이스 어딨에요?" 


"없지!" 


"쯧, 쯧." 


나는 신부 손을 붙잡고, 


"이리 좀 와봐." 


"아야, 아야, 아이, 그러지 마세요, 놓세요." 


하는 것을 잘 달래서 왼손 무명지에다 털붓으로 쌍줄 반지를 그려 주었다. 좋아한다. 아무것도 낑기운 것은 아닌데 제법 간질간질한 게 천연 반지 같단다. 


전연 결혼하기 싫다. 트집을 잡아야겠기에, 


"몇 번?" 


"한 번." 


"정말?" 


"꼭." 


이래도 안 되겠고 간발(間髮)을 놓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고문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 윤 이외에?" 


"하나." 


"예이!" 


"정말 하나예요." 


"말 마라." 


"둘." 


"잘 헌다." 


"셋." 


"잘 헌다, 잘 헌다." 


"넷." 


"잘 헌다, 잘 헌다, 잘 헌다." 


"다섯." 


속았다. 속아넘어갔다. 밤은 왔다. 촛불을 켰다. 껐다. 즉 이런 가짜 반지는 탄로가 나기 쉬우니까 감춰야 하겠기에 꺼도 얼른 켰다. 밤이 오래 걸려서 밤이었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첫번째 댓글의 주인공이 되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