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1)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55973805
촉각
촉각이 이런 정경을 도해(圖解)한다.
유구한 세월에서 눈뜨니 보자, 나는 교외 정건(淨乾)한 한 방에 누워 자급자족하고 있다. 눈을 둘러 방을 살피면 방은 추억처럼 착석한다. 또 창이 어둑어둑하다.
불원간 나는 굳이 지킬 한 개 슈트케이스를 발견하고 놀라야 한다. 계속하여 그 슈트케이스 곁에 화초처럼 놓여 있는 한 젊은 여인도 발견한다.
나는 실없이 의아하기도 해서 좀 쳐다보면 각시가 방긋이 웃는 것이 아니냐. 하하, 이것은 기억에 있다. 내가 열심으로 연구한다. 누가 저 새악시를 사랑하던가! 연구중에는,
"저게 새벽일까? 그럼 저묾일까?"
부러 이런 소리를 했다. 여인은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하더니 또 방긋이 웃고 부스스 오월 철에 맞는 치마저고리 소리를 내면서 슈트케이스를 열고 그 속에서 서슬이 퍼런 칼을 한 자루만 꺼낸다.
이런 경우에 내가 놀라는 빛을 보이거나 했다가는 뒷갈망하기가 좀 어렵다. 반사적으로 그냥 손이 목을 눌렀다 놓았다 하면서 제법 천연스럽게,
"님재는 자객입늬까요?"
서투른 서도(西道) 사투리다. 얼굴이 더 깨끗해지면서 가느다랗게 잠시 웃더니, 그것은 또 언제 갖다 놓았던 것인지 내 머리맡에서 나쓰미캉을 집어다가 그 칼로 싸각싸각 깎는다.
"요곳 봐라!"
내 입 안으로 침이 쫘르르 돌더니 불현듯이 농담이 하고 싶어 죽겠다.
"가시내애요, 날쭘 보이소, 나캉 결혼할랑기요? 맹서(盟誓)듸나? 듸제?"
또,
"융(尹)이 날로 패아 주뭉 내사 고마 마자 주울란다. 그람 늬능 우앨랑가? 잉?"
우리들이 맛있게 먹었다. 시간은 분명히 밤에 쏟아져 들어온다. 손으로 손을 잡고,
"밤이 오지 않고는 결혼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 탄식한다. 기대하지 않은 간지러운 경험이다.
낄낄낄낄 웃었으면 좋겠는데―― 아― 결혼하면 무엇 하나, 나 따위가 생각해서 알 일이 되나?
그러나 재미있는 일이로다.
"밤이지요?"
"아―냐."
"왜―― 밤인데―― 애―― 우숩다―― 밤인데 그러네."
"아―냐, 아―냐."
"그러지 마세요, 밤이에요."
"그럼 뭐, 결혼해야 허게."
"그럼요――"
"히히히히――"
결혼하면 나는 임(姙)이를 미워한다. 윤? 임이는 지금 윤한테서 오는 길이다. 윤이 내어 대었단다. 그래 보는 거다. 그런데 임이가 채 오해했다. 정말 그러는 줄 알고 울고 왔다.
'애개― 밤일세.'
"어떡허구 왔누."
"건 알아 뭐 허세요?"
"그래두."
"제가 버리구 왔에요."
"족히?"
"그럼요!"
"히히."
"절 모욕하지 마세요."
"그래라."
일어나더니――나는 지금 이러한 임이를 좀 묘사해야겠는데, 최소한도로 그 차림차림이라도 알아두어야겠는데――임이 슈트케이스를 뒤집어엎는다. 왜 저러누―― 하면서 보자니까 야단이다. 죄다 파헤치고 무엇인지 찾는 모양인데 무엇을 찾는지 알아야 나도 조력을 하지, 저렇게 방정만 떠니 낸들 손을 대일 수가 있나, 내버려두었다가도 참다못해서,
"거 뭘 찾누?"
"엉― 엉― 반지―― 엉― 엉―"
"원 세상에, 반진 또 무슨 반진구."
"결혼 반지지."
"옳아, 옳아, 옳아, 응, 결혼 반지렷다."
"아이구 어딜 갔누, 요게, 어딜 갔을까."
결혼 반지를 잊어버리고 온 신부, 라는 것이 있을까? 가소롭다. 그러나 모르는 말이다, 라는 것이 반지는 신랑이 준비하라는 것인데――그래서 아주 아는 척하고,
"그건 내 슈트케이스에 들어 있는 게 원칙적으로 옳지!"
"슈트케이스 어딨에요?"
"없지!"
"쯧, 쯧."
나는 신부 손을 붙잡고,
"이리 좀 와봐."
"아야, 아야, 아이, 그러지 마세요, 놓세요."
하는 것을 잘 달래서 왼손 무명지에다 털붓으로 쌍줄 반지를 그려 주었다. 좋아한다. 아무것도 낑기운 것은 아닌데 제법 간질간질한 게 천연 반지 같단다.
전연 결혼하기 싫다. 트집을 잡아야겠기에,
"몇 번?"
"한 번."
"정말?"
"꼭."
이래도 안 되겠고 간발(間髮)을 놓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고문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 윤 이외에?"
"하나."
"예이!"
"정말 하나예요."
"말 마라."
"둘."
"잘 헌다."
"셋."
"잘 헌다, 잘 헌다."
"넷."
"잘 헌다, 잘 헌다, 잘 헌다."
"다섯."
속았다. 속아넘어갔다. 밤은 왔다. 촛불을 켰다. 껐다. 즉 이런 가짜 반지는 탄로가 나기 쉬우니까 감춰야 하겠기에 꺼도 얼른 켰다. 밤이 오래 걸려서 밤이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다들 새로운 계정으로 팔로우가 오네
-
몸이 이상함 휘청휘청거림 타자도 잘 안쳐져서 오타 오지게 지우고 다시 씀 .. 술약...
-
의문문을 명사절로 바꾸려면 꼭 간접의문문을 써야하나요? 예를 들어, What do...
-
당신의 선택은??
-
오히려 살이 더트는거 같아 굶거나 음식을 적게 섭취하면 코르티솔이 증가해서 그럴 수...
-
. 0
근데 22번 30번 같은 킬러도 눈으로 풀수 있을까요 문득 궁금 .. 그 경지까지...
-
기습ㅇㅈ 0
아무 사진도 안올렸는데 클릭하다니
-
요즘 뉴스에 나오는 해외주재 공관원 테러경보가 진짜 위험한 이유 2
저의 최근 글 중에 최덕근 영사 관련 글...
-
맞자 좀 마자야 정신차리지
-
작년엔 미뤄져서 4월이라 돼있었는데 올해는 애초부터 5월이엿는데
-
너의 스피커와 베이스는 찌그러져
-
들어가며 지금 뭐 하고 계신가요? 아마 이걸 보고 계시니 오르비 하고 계시는...
-
크아악 1미스
-
언매 미적 영어 (절평) 생윤 99%~100% 애도 98%고정인진 몰루 지1 이거이거 !!
-
원판 샀다 7
덤벨 7.5kg 2개랑 추감기도 샀다
-
하 나이먹고 2
모교 또 가서 수능 접수 해야하네
-
만점의 생각 오르비에서 살까 알라딘에서 살까
-
수학이 거의 노베수준에서 일주일동안 달려서 이제 수1은 일반각과 호도법 수2는...
-
256도 충분한가요 아님 512 ??
-
그동안 5월에 시행된 4월 모의고사는 몇 번 있었는데 찐 5월 모의고사는 이번이...
-
어떤 자료를 받았는데 연대가 정시 백분위 평균이 95~97이고 서성한이 94~95...
-
치명적인가요?
-
힝 난 빡대가리야
-
시대인재가는 사람은 홍은영T 수업 들어보셈 ㄹㅇ 잘가르치심 맨 처음엔 서바 30점대...
-
이번 사건으로 연세대는 서성한 라인으로 추락할까요? 21
Vs 그대로다
-
맞팔 구해요 2
ㄱㄱ
-
. 3
근데 암산도 계속 하다보면 느는것 같은 느낌 좀 긴 풀이도 암산으로 할 수...
-
맞팔구합니다
-
전에 운동선수이기도 했고.. 저랑 공부랑 안 맞는 느낌(?)이라... 체대생분들...
-
나는 1년 더 늦게 가야겠지만 너넨 꼭 삼(반)수 성공해라 ㅎㅇㅌ
-
이게 과연 노베이스 일까? 과탐 진짜 무섭다
-
생명1 2등급 뜨려면 2문제빼고 다맞춰야 하나요? 노베가 남은 190일동안 2등급...
-
내가 생각한 투기 방법은 복권이다
-
공부하기 싫으면 연세대 MT 영상 보고 다시 힘내자~ 0
편집 10시간 걸린 듯 ㅋㅋㅋ
-
100점 만점에 평균 32점 하위 25% 점수 16.75 본인 49점 맞고 백분위 75 넘음 ㅋㅋㅋ
-
06 고3 지방 일반고 현역입니다 정시 내신 반영 점수 최하점 받으면 타격 큰가요?...
-
내일5모 화이팅
-
어 형이야 2
형은 영과고생을 뚫고 서울대에서도 25% 안에 들어
-
더 모으도록 하자
-
공허한 날인데 0
생2 교재살까? 도파민 터질거 같은데?
-
길고긴 개때잡여행이 끝이 보인다…
-
고난도 문학 대비로 어떤가요??
-
근데 교과서 예제 수준으로 내서 ㄱㅇㄷ이면 뭐함 이미 전에 다 맞은 문제인데…
-
단어만 완~~벽 하게 한다면 몇등급까지 올릴수 있을까요?
-
이렇게 진행하고있는데 개 ㅆㅅㅌㅊ인거같은데 ㅇㄸ?
-
이거 들어봐 1
이게 진짜 지림
첫번째 댓글의 주인공이 되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