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방랑(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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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사람들은 모두 잠이 들어 있다.
그것이 나에겐 아무래도 이상스럽기만 하다.
어째서 앉은 채 사람들은 잠자는 것일까?
그러한 사람들의 생리조직이 여간 궁금하지 않다.
저 여학생까지도 자고 있다. 검은 드로어즈가 보인다.
허벅다리 언저리가 한결 수척해 보인다.
피는 쉬고 있나 보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얼굴은 몹시 창백하다.
슬픈 나머지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기차는 황해도 근처를 달리고 있는 모양이다.
가끔가끔 터널 속에 들어가 숨이 막히곤 했다. 도미에의 〈삼등열차〉가 머리에 떠올랐다.
나는 고양이처럼 말똥말똥해서 단정히 앉아 있었다.
이따금 포즈를 흐트려 잠잘 수 있을 만한 자세를 해본다.
하지만 그것은 부질없이 뼈마디를 아프게 하는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체념한다. 해저에 가라앉는 측량기처럼 나는 단정히 앉아 있다.
창밖은 깊은 안개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
능형(菱形)으로 움직이는 차창의 거꾸로 비친 그림자에 풀 같은 것들의 존재가 간신히 인정된다.
내가 앉아 있는 쪽으로 이건 또 누구일까,
다가오는 기척이 난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그쪽으로 돌린다.
지극히 키가 큰 사람이다. 중대가리다.
입을 한일자로 다물고 있다.
눈엔 독기를 띠고 있는 것 같기만 했다.
옆에까지 온 그 사람은,
별안간 무엇을 떨어뜨리기나 한 것처럼 커다란 소리를 내었다.
나는 오싹했다. 하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지나가는 무슨 악귀처럼 그 사람의 맞은편 도어를 열고 다음 찻간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저 금융조합 사나이가 가지고 있던 진도 모양의 단장(短杖)을 넘어뜨렸던 것이다. 그 는 잠이 깨지는 않았다.
이건 또 어찌 된 일일까.
사람들은 답답한 숨들을 쉬었다.
개중엔 커다라니 입을 벌리고 있는 사람조차 있었다.
폐들은 풀무처럼 소리내어 울렸다.
탁한 공기는 빠져나갈 구멍을 잃고 있다.
송사리떼 같은 세균의 준동이 육안에도 보이는 것만 같다.
나는 코를 손가락으로 집어 봤다.
끈적거리면서 양쪽 벽면은 희미한 소리마저 내면서 부착했다.
나는 더 숨을 쉴 수가 없다.
정신이 아찔했다.
안면은 순식간에 빨갛게 물들어 갔다.
다시마가 집채같은, 콘크리트 같은 파도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일순간 그들 다시마는 뱀장어로 변형돼 갔다.
독기를 품은 푸르름이 나의 육체를 압착했다.
나를 내부로 질질 끌고 갔다. 이제 완전히 나는 선머슴애가 되고 말았다.
세월은 나의 소년의 것이다. 나는 가련한 아이였다.
풀밭이 먼 데까지 펼쳐져 있다. 언덕 너머 목초 냄새가 풍겨 온다.
빨간 지붕이 보였다. 여기는 대체 어디란 말인가?
나의 강막(綱膜)에 거대한 괴물이 비쳤다.
그것은 점점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놀라지 않는다.
이렇게 내 손은 희다.
이 사나이는 또다시 저 진도처럼 생긴 단장을 넘어뜨렸던 것이다.
이 무슨 경망스런 작자일까.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아까 넘어졌던 그걸 일으켜 단정히 세워 놓은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그것을 보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것은 얌전하게 서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치인 것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또 나는 이 무슨 환상의 풍경을 눈앞에 본 것일까. 나는 그만 꾸벅꾸벅 졸았던 모양이다. 그러는 동안에 어쩌면 누군가가 내 옆을 지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저 단장을 일으켜 놓은 모양이다. 저 사나이는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다.
몹시 두드려대는(도어를) 소리로 해서 나의 의식은 한층 또렷해졌다. 내 앞에서 저 진도처럼 생긴 단장이 뒹굴어 있다. 나는 반쯤 조소로써 그것을 응시하고 있다. 그것은 어째 알맹이가 없는 그저 그런 장님 진도인 것 같다. 사람들은 저런 걸 사는 것이다. 이걸 만든 사람은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바로, 저 얼토당토않은 물건을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짚어 보았다. 나는 단장 휘두르기를 좋아한다. 머리가 민짜인 그 단장은 휘두를 수는 없다. 나는 발밑 풀을 후려쳐 쓰러뜨리는 그런 시늉을 해 보았다.
풀을 건드리지 않고 단장은 날카롭게 공기를 베었다. 나는 또 그 끝으로 흙을 눌러 보았다. 시뻘건 피 같은 액체가 아주 조금 배어 나왔다. 나는 몸에 가벼운 그러나 추위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고귀한 양복을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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