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도 1등급인데... [1032483] · MS 2021 · 쪽지

2022-03-28 21: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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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2에는 낭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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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 생김새는, 통로보다 조금 높게 교사들이 앉아 있고, 수험생은 왼편에서 들어와서 바른편으로 빠지게 돼 있다. 네 사람의 일반고 교사와, 국민복을 입은 교무 부장이 한 사람, 합쳐서 다섯 명. 그들 앞에 가서, 걸음을 멈춘다. 앞에 앉은 교사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한다.




"동무, 앉으시오."




물붕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동무는 어느 과목으로 가겠소?"




"물리학Ⅱ."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교사가,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동무, 물리학Ⅱ도, 마찬가지로 물리학이요. 고인물과 물수능이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물리학Ⅱ."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자랑스러운 권리를 왜 포기하는 거요?"




"물리학Ⅱ."




이번에는, 그 옆에 앉은 교사가 나앉는다.




"동무, 지금 지구과학Ⅰ에서는, 만점 표준점수가 하늘을 찌르오. 동무는 누구보다도 먼저 1등급을 가지게 될 것이며, 인민의 영웅으로 존경받을 것이오. 전체 인민은 동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소. 지구과학Ⅰ의 초목도 동무의 개선을 반길 거요.




"물리학Ⅱ."




그들은 머리를 모으고 소곤소곤 상의를 한다. 처음에 말하던 교사가, 다시 입을 연다.




"동무의 심정도 잘 알겠소. 오랜 물리학 생활에서, 대깨물들의 간사한 꼬임수에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용서할 수 있소. 그런 염려는 하지 마시오. 지구과학은 동무의 하찮은 잘못을 탓하기보다도, 동무가 조국과 인민에게 바친 충성을 더 높이 평가하오. 일체의 통수 행위는 없을 것을 약속하오. 동무는……"




"물리학Ⅱ."




교무 부장이, 날카롭게 무어라 외쳤다. 설득하던 교사는, 증오에 찬 눈초리로 물붕이를 노려보면서, 내뱉었다.




"좋아."




눈길을, 방금 도어를 열고 들어서는 다음 수험생에게 옮겨 버렸다.




아까부터 그는 교사들에게 간단한 한마디만을 되풀이 대꾸하면서, 지금 다른 천막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을 광경을 그려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도 자기를 세워 보고 있었다.




"자넨 어디 출신인가?"




"……"




"음, 서울이군."




설득자는, 앞에 놓인 서류를 뒤적이면서,




"물리학Ⅱ라지만 막연한 얘기요. 지구과학보다 나은 데가 어디 있겠어요. Ⅱ과목이나 물리학을 해 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지만, 밖에 나가 봐야 지구과학이 소중하다는 걸 안다구 하잖아요? 당신이 지금 가슴에 품은 울분은 나도 압니다. 교육과정평가원이 과도기적인 여러 가지 모순을 가지고 있는 걸 누가 부인합니까? 그러나 지구과학엔 자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유가 소중한 것입니다. 당신은 물리학 생활과 Ⅱ과목 생활을 통해서 이중으로 그걸 느꼈을 겁니다. 인간은……"




"물리학Ⅱ."




"허허허,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 나라 내 민족의 한사람이, 난이도조절좆망에 선택자 수 꼴등 과목에 가겠다고 나서서, 동족으로서 어찌 한마디 참고되는 이야길 안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남한 2천만 동포의 부탁을 받고 온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건져서, 지구과학의 품으로 데려오라는……"




"물리학Ⅱ."




"당신은 고등교육까지 받은 지식인입니다. 지구과학은 지금 당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위기에 처한 백분위와 표준점수를 버리고 떠나 버리렵니까?"




"물리학Ⅱ."




"지식인일수록 불만이 많은 법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제 몸을 없애 버리겠습니까? 종기가 났다고 말이지요. 당신 한 사람을 잃는 건, 무식한 사람 열을 잃은 것보다 더 큰 민족의 손실입니다. 당신은 아직 젊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나는 당신보다 나이를 약간 더 먹었다는 의미에서, 친구로서 충고하고 싶습니다. 지구과학의 품으로 돌아와서, 조국을 재건하는 일꾼이 돼주십시오. 낯선 과목에 가서 고생하느니, 그쪽이 당신 개인으로서도 행복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대단히 인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뭐 어떻게 생각지 마십시오. 나는 동생처럼 여겨졌다는 말입니다. 만일 지구과학에 오는 경우에, 개인적인 조력을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물붕이는 고개를 쳐들고, 반듯하게 된 천막 천장을 올려다본다. 한층 가락을 낮춘 목소리로 혼잣말 외듯 나직이 말할 것이다.




"물리학Ⅱ."




설득자는, 손에 들었던 연필 꼭지로, 테이블을 툭 치면서, 곁에 앉은 평가원장을 돌아볼 것이다. 평가원장은, 어깨를 추스르며, 눈을 찡긋 하고 웃겠지.





나오는 문 앞에서, 서기의 책상 위에 놓인 명부에 이름을 적고 천막을 나서자, 물붕이는 마치 재채기를 참았던 사람처럼 몸을 벌떡 뒤로 젖히면서,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찔끔찔끔 번지고, 침이 걸려서 캑캑거리면서도 그의 웃음은 멎지 않았다.



-물2갤 문학 명작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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