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y Lake: 李箱 [870531] · MS 2019 · 쪽지

2022-03-27 08:5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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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 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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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삼(記三)


복화술(複話術)이란 결국 언어의 저장창고의 경영(經營)일 것이다.


한 마리의 축생(畜生)은 인간이외의 모든 뇌수(腦髓)일 것이다.


나의 뇌수(腦髓)가 담임(擔任) 지배하는 사건의 대부분을 나는 황의 위치에 저장했다ㅡ냉각되고 

가열되도록


ㅡ나의 규칙을ㅡ그러므로ㅡ리트머스지(紙)에 썼다.


배ㅡ그 속ㅡ의 결정(結晶)을 가감(加減)할 수 있도록 소량의 리트머스액(液)을


나는 나의 식사에 곁들일 것을 잊지 않았다.


나의 배의 발음은 마침내 삼각형의 어느 정점을 정직하게 출발하였다.




기사(記四)


황의 나신(裸身)은 나의 나신(裸身)을 꼬옥 닮았다. 혹은 이 일은 이 일의 반대일지도 모른다.


나의 목욕시간은 황의 근무시간 속에 있다.


나는 천의(穿衣)인채 욕실에 들어서 가까스로 욕조로 들어간다.


ㅡ벗은 옷을 한 손에 안은채ㅡ


언제나 나는 나의 조상(祖上)ㅡ육친(肉親)을 위조(僞造)하고픈 못된 충동에 끌렸다.


치욕(恥辱)의 계보(系譜)를 짊어진채 내가 해부대(解剖臺)의 이슬로 사라질 날은 그 어느 날에 올 

것인가?



피부는 한 장 밖에 남아 있지 않다.


거기에 나는 파랑잉크로 함부로 근(筋)을 그렸다.


이 초라한 포장 속에서 나는 생각한다


ㅡ해골에 대하여......묘지에 대하여


영원한 경치(景致)에 대하여.



달덩이 같은 얼굴에 여자는 눈을 가지고 있다.


여자의 얼굴엔 입맞춤할 데가 없다.


여자는 자기 손을 먹을 수도 있었다.



나의 식욕은 일차방정식같이 간단하였다.


나는 곧잘 색채(色彩)를 삼키곤 한다.


투명한 광선 앞에서 나의 미각은 거리낌없이 표정(表情)한다.


나의 공복(空腹)은 음향(音響)에 공명(共鳴)한다ㅡ예컨대 나이프를 떨군다ㅡ



여자는 빈 접시 한 장을 내 앞에 내어 놓는다ㅡ


(접시가 나오기 전에 나의 미각은 이미 요리을 다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여자의 구토는 여자의 술을 뱉어낸다.


그리고 나에게 대한 체면마저 함께 뱉어내고 만다(오오 나는 웃어야 하는가 울어야 하는가)


요리인(料理人)의 단추는 오리온좌(座)의 약도(略圖)다.


여자의 육감적인 부분은 죄다 빛나고 있다.


달처럼 반지처럼.


그래 나는 나의 신분에 걸맞게시리 나의 표정을 절약하고 겸손하고 하는 것이었다.


모자(帽子)ㅡ나의 모자. 나의 병상(病床)을 감시하고 있는 모자.


나의 사상(思想)의 레텔. 나의 사상(思想)의 흔적. 너는 알 수 있을까?


나는 죽는 것일까. 나는 이냥 죽어가는 것일까.


나의 사상(思想)은 네가 내 머리 위에 있지 아니하듯 내 머리에서 사라지고 없다.


모자 나의 사상(思想)을 엄호해 주려무나!


나의 데드마스크엔 모자는 필요 없게 된단 말이다!


그림달력의 장미가 봄을 준비하고 있다.



붉은 밤. 보라빛 바탕.


별들은 흩날리고 하늘은 나의 쓰러져 객사(客死)할 광장(廣場).


보이지 않는 별들의 조소(嘲笑).


다만 남아 있는 오리온좌(座)의 뒹구는 못(釘)같은 성원(星員).


나는 두려움 때문에.


나의 얼굴을 변장하고 싶은 오직 그 생각에 나의 꺼칠한 턱수염을 손바닥으로 감추어본다.



정수리 언저리에서 개가 짖었다. 불성실한 지구를 두드리는 소리.


나는 되도록 나의 오관(五官)을 취소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을 포기한 나는 기꺼이


ㅡ나는 종족의 번식을 위해 이 나머지 세포를 써버리고 싶다.


바람 사나운 밤마다 나는 차차로 한 묶음의 턱수염 같이 되어버린다.


한줄기 길이 산(山)을 뚫고 있다.


나는 불 꺼진 탄환처럼 그 길을 탄다.


봄이 나를 뱉어낸다. 나는 차거운 압력을 느낀다.


듣자 하니ㅡ아이들은 나무 밑에 모여서 겨울을 말해버린다.


화살처럼 빠른 것을 이 길에 태우고 나도 나의 불행을 말해버릴까 한다.


한 줄기 길에 못이 서너개ㅡ땅을 파면 나긋나긋한 풀의 준비ㅡ봄은 갈갈이 찢기고 만다.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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