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등잡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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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求景)
전문(專門)한 것이 나는 건축인 관계상 재학 시대에 형무소 견학을 간 일이 더러 있다. 한번은
마포(麻浦) 벽돌 공장을 보러 간 일이 있는데 그것은 건물을 보러 간 것이 아니라 벽돌 제조의 여러
가지 속을 보러 간 것이니까 말하자면 건축 재료 제조 실제를 연구하는 한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죄인들의 생활이라든가 혹은 그들의 생활에 건물 제조를 어떻게 적응시켰나를 보러 간 것이 아니고 다만 한 공장을 보러 간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까 직공들은 반드시 죄인들일 필요도 없거니와 또
거기가 하국(何國)의 형무소가 아니어도 좋다. '클래스' 전부라야 열두 명이었는데 그날 간 사람은
겨우 칠팔 명에 불과하였다고 기억한다.
옥리(獄吏)의 안내를 받아 공장 각 부분을 차례차례 구경하기로 되었다. 구경하기 전에 옥리는
우리들에게 부디부디 다음 몇 가지 점에 주의해 달라고 일러 주는 것이었다. 즉 담배를 피우지 말 것, 그들에게 무슨 필요로든 결코 말을 건네지 말 것, 그네들의 얼굴을 너무 차근차근히 들여다보지 말 것 등이다. 차례대로 이윽고 견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벽돌 제조 같은 것에는 추호의
흥미도 가지지는 않았다. 죄인들의 생활, 동정(動靜)의 자태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견학이 나로
하여금 즐겁게 하여 주는 이유의 전부였다. 나는 일부러 끝으로 좀 쳐지면서 그 똑같이 적토색(赤土色) 복장을 몸에 두르고 깃에다 번호찰(番號札)을 붙인 이네들의 모양을 살피기로 하였다. 그런데 과연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끝없는 증오의 시선을 우리들에게 던지는 것이 아니냐. 나는 놀랐다. 가슴이
두근두근해 왔다. 그리고 제출물에 겁이 나서 얼굴이 달아 들어오는 것을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너무나 똑똑이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들을 나는 차마 바로 쳐다보는 재주가 없었다.
자기의 치욕의 생활의 내면을, 혹 치욕이라고까지 하지는 않더라도 결코 남에게 떠벌려 자랑할 것이 못 되는 제 생활의 내면을 어떤 생면부지 사람들에게 막부득이(莫不得已) 구경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누구나 다 싫어하리라. 앙불괴어천 부천쾌어인(仰不愧於天 俯天快於人), 이런 심경에서 사는
사람이라도 그런 일점(一點)의 흐린 구름이 지지 않은 생활을, 남이 그야말로 구경거리로 알고 보려
달려들 때에는 저으기 불쾌할 것이다. 항차(況此) 죄인들이 자기네들의 치욕적 생활을 백일(白日)
아래서 여지없이 구경거리로 어떤 몇 사람 앞에 내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에 그들의 심통함이 또한 복역의 괴로움보다 오히려 배대(倍大)할 것이다.
소록도(小鹿島)의 나원(癩院)을 보고 온 이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리 석존(釋尊) 같은 자비스러운
얼굴을 한 사람이 내도(來到)하여도 그들은 그저 무한한 증오의 눈초리로 맞이할 줄 밖에 모른다 한다. 코가 떨어지고 수족이 망가진 자기네들 추악한 군상을 사실 동류 이외의 어떤 사람에게도 보이기
싫을 것이다. 듣자니 그네들끼리는 희희낙락하기도 하며 때로는 연애까지도 할 듯싶은 일이 다 있다 한다.
형무소 죄인들도 내가 본 대로는 의외로 활발하게 오히려 생활난에 쪼들려 헐떡헐떡하는
사파(娑婆)의 노역군들보다도 즐거운 듯이 일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만 그러면서도 남의 어떤 눈도
싫어하는 까닭은 말하자면 대등의 지위를 떠난 연민, 모멸, 동정, 기자(忌恣), 이런 것을 혐오하는 인정 본연의 발로가 아니고, 다름없는 것이 아닐까 한다.
가령 천형병(天刑病)의 병원(病源)을 근절코자 할진대 보는 족족 이 병 환자는 살육해 버려야 할는지도 모르지만 기왕 끔찍한 인정을 발휘해서 그들을 보호하는 바에는 될 수 있는 대로 그들의 심정을
거슬려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하다면 그들이 제일 싫어하는 '구경'을 절대로 금해야 할 것이다. 형무소 같은 것은, 성(盛)히 구경시켜서 써 죄과(罪過)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좋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좀처럼 구경을 잘 시키지 않는 것은 역시 죄수 그들의 심정을 건드리지 않도록 하는 깊은 용의(用意)에서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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