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想 [870531] · MS 2019 · 쪽지

2022-02-25 08:2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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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망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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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동에 배꽃이 피었다는 동리에는 마른나무에 까마귀가 간수처럼 앉아 있을 뿐이었다. 


비탈에서는 적톳빛 죄수들이 죄토를 헐어낸다. 느끼하니 냄새 풍기는 진창길에 발만 성가시게 적시고 그만 갈 바를 

잃었다. 


강으로나 가볼까 ― 울면서 수채화 그리던 바위 위에서 나는 도(度) 없는 안경알을 닦았다. 바위 아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삼월 강물이 충충하다. 시원찮은 볕이 들었다 났다 하는 밤섬을 서(西)에 두고 역청 풀어 놓은 것 같은 물결을 나는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내려다보았다. 


 

 


   향방(鄕邦)의 풍토는 모발 같아 

   건드리면 새빨개진다 


 

갯가에서 짐 푸는 소리가 한가하다. 개흙 묻은 장작더미 곁에서 낮닭이 겨웁고 배들은 다 돛폭을 내렸다. 벌써 

내려놓은 빨래방망이 소리가 얼마 만에야 그도 등 뒤에서 들려왔다. 나는 별안간 사람이 그리워졌다. 


갯가에서 한 짐 목로를 들렀다. 손이 없다. 


무명조개 껍질이 너덧 석쇠 놓인 화롯가에 헤뜨러져 있을 뿐. 목로 뒷방에서 아주먼네가 인사 없이 나온다. 손 베어질 것 같은 소복에 반지는 끼지 않았다. 


얼큰한 달래 나물에 한잔 술을 마시며 나는 목로 위에 싸늘한 성모를 느꼈다. 아픈 혈족의 '저'를 느꼈다. 


 

 


   향방의 풍토는 

   모발 같아 

   건드리면 

   새빨개진다 


 

그러고 나서는, 


 

 


   혈족이 저물도록 

   내 아픈 데가 닿아서 

   부드러운 구두 속에서도 

   일마다 아리다 


 

밤섬이 싹을 틔우려나 보다. 걸핏하면 뺨 얻어맞는 눈에 강 건너 일판이 그냥 노오랗게 헝클어져서는 히늑히늑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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