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식

연기형 [542584] · MS 2014 · 쪽지

2014-12-13 01:33:24
조회수 1,065

이현경 수기 (1)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5243371

입시철에 약간 뜬금없지만


대충 미래가 정해졌기때문에


오랫동안 숙원이었던 수기를 올리겟음 


1일 단위로 올림


지금 뭐 반응을 기대하는건 아니고


두고두고 게시판에 남아 


먼 후배들에게까지도 많은 영감을 주길 기대함 



나는 어렸을 때부터 똑똑했다


나는 장남이었고 부모님은 두 분 다 선생님이었다


게임을 굉장히 좋아했지만 부모님은 내가 게임을 못하게 막으셨고


그 때문에 나는 초등학교시절부터 하루 종일 책을 읽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장르는 가리지 않고 읽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역사책이 많았다


메일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고 집에 가면서, 학원에 가는 길에서도 걸으면서 책을 읽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엄마한테 혼나기도 했지만.


한번은 내가 하도 책만 읽어서 아빠가 내가 읽던 책을 숨긴 적도 있었다.

 


학원얘기가 나와서 얘기하자면


부모님은 나에게 어떤 학원을 억지로 다니게 한 적은 없었고


그덕분에 피아노나 태권도처럼 내가 원하는 것만 골라 다녔다. 


수학/영어는 안다니다가 5~6학년이 되어서야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 객관적으로 공부를 굉장히 잘하는 수준이었는데,


초등학교성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마는,


그냥 모범생 하면 딱 떠오르는 정도였다. 물론 당시의 나는 몰랐지만 (나중에 만난 친구들이 그랬다카더

라)


물론 노력파와는 거리가 멀었고, 천성적으로 타고난 머리 +‘할 때는 하자!’ 였다.

 


당시 나는 꿈이 피아니스트였는데


나이에 비해 객관적으로 굉장히 잘 쳤던 것 같다.


5학년 때 나간 콩쿠르에서 쇼팽 즉흥환상곡을 상당한 수준으로 연주했으니.


(지금도 당시 내가 쳤던 콩쿠르 영상을 보며 감탄하곤 한다.)


(지금의 나보다 잘친다)


하지만 부모님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내가 피아니스트가 되려는 것에 굉장히 부정적이셨고,


결정적인 사건이 위에서 말했던 콩쿠르 때 터지는데


콩쿠르가 끝나고 아빠는 나에게 ‘그게 뭐냐’ ‘그따위로 할거면 관둬라!’ 라는 등의 말들을 쏟아내셨고


어린 나이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물론 내가 못쳐서 실망하셨던 것은 절대 아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설마 얘가 이러다가 진짜 피아니스트가 된다고 하면 어쩌지?’하는 생각에


미리 싹을 잘라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했던 말이었을 것이다.


당시 2등을 했는데,


당연히 1등을 기대했던 선생님마저도 적잖게 실망하시고. 


아무도 나에게 ‘수고했다’라는 말조차 해주지 않아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그 길로 나는 피아니스트의 꿈을 관두게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이사를 가게 된다


당시 입학하면서 치렀던 전국단위 시험에서 올백을 맞았다


중1때는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의 성적을 유지하다가


학년이 올라가면서 20등 정도 까지 떨어졌다. 왜냐면 공부를 열심히 해본 적이 없기 때문


그냥 수업 때 안자고 필기 성실하게 하고 시험기간 때 공부하는 정도. 그래도 난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중학교 때 있었던 일 하나만 추려 말하면


당시 영어 학원을 다녔는데


여기에서 굉장히 빡세게 가르쳤다


중2때 처음 들어갔을 때 입학시험이라고 본 게 고등학교 모의고사..


학원에서도 천일문 풀고, 하루에 단어 300개씩 외우고, 수능 고난도유형 풀고... (물론 당시에는 뭔지도 모르고 풀었다)

 



또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검사라는 꿈을 꾸게 된다.


그 이유는 단순히 내가 논리적이었고, 논술을 잘했기 때문이다. zz


논술을 잘한다 라는 사실을 억지로 연결시키려다보니 검사라는 직업이 나왔을 뿐


하지만 ‘나는 꼭 검사가 되겠어!!’라는 생각은 없었고


그냥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식의 꿈이었을 뿐이었다 (자꾸 꿈이 머냐고 물어기 때문에;;_-)



졸업할 때 즈음 외고에 입학할 정도의 성적이 나왔지만


당시 외고 인식이 안 좋았던 터라


집근처의 나름 괜찮은 일반고에 진학하게 된다


 


내가 진학한 고등학교는 한 해에 서울대를 1~2명 정도 보내는


그래도 대전 일반고 중에는 좋다는 수준의 학교였다


또한 처음 본 모의고사에서 전교권에 들어서 학교에서 따로 관리해주는 특별반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 나는 대학교에 별 관심이 없었다.


나는 노력파라기보단 두뇌파였고


그런 나에게 선생님이 알려주신 것만 달달 외우는 내신은 영 맞지 않았다


 


한 가지 생각나는 일화를 말해주자면


한국사 주관식 중에 3.1 운동이 끼친 영향을쓰시오 가 있었는데


내가 중국의 5.4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라고 썼는데


교과서에 그대로 나와 있음에도


선생님이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틀렸다고 한 일이 있었다.


이 일로 나는 내신을 ‘선생님의 비위에 맞춰야 하는 시험’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흥미를 잃었다.


(물론 수업은 열심히 들었다. 단지 내신이란 것을 싫어했을 뿐)


 

반대로 모의고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건 나에게 약간의 쇼크를 안겨주었다


이전까지 ‘공부를 잘한다 = 공부를 열심히 한다’ 였다면


모의고사는 ‘공부를 잘한다 = 머리가 좋다’ 라는 생각을 나에게 가지게 해주었다. 마치 IQ테스트 같이.


내신 = 단순암기 라면, 모의고사 = 사고력 이었다


이런 특성들 때문에 모의고사는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모의고사 보는 날에는 열심히 두뇌를 굴렸고


성적 연연하지 않고 굉장히 즐겁게 풀었던 걸로 기억한다.


1~2 학년 때 모의고사 성적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별로 큰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국어 영어는 98%정도 되고 수학은 아는 것만 푸는 수준으로 기억한다


(지금 보니까 국 영 1등급, 수학 1~2등급, 사탐 1~2등급 정도)


 


또 한가지로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검사’라는 꿈이 구체화되었는데


당시 담임선생님께서 나에게 법과 관련된 이런저런 대외활동을 안내해주셨고


이것들을 하면서 꿈에 대해 확고한 목표의식을 가지게 된다.


그렇기에 고2때 당연하게도 문과로 진학하였고


드디어 고2 겨울방학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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