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비 문학 극작품 -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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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부분의 줄거리]
'반수생'이라는 동물들이 '현역 마을'을 부수고 다니며 마을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다. 이에 촌장은 망루를 세워 파수꾼에게 반수생의 침입을 감시하게 한다. 하지만 '파수꾼 다'는 반수생이 잘하든 못하든 현역마을을 위협할 수는 없으며 '될놈될 안될안'임을 깨닫는다. 또한 촌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어 촌장에게 편지를 보낸다.
등장 인물 :해설자, 파수꾼 가, 파수꾼 나(노인), 파수꾼 다(소년)
파수꾼 ‘나’는 확신 있게 양철북을 두드린다. ‘다’는 여느 때와는 달리 침착하게 일어선다. 그리고 담요를 벗어 네모 반듯하게 갠 다음 식탁 위에 놓는다. 그는 북을 두드리는 나를 바라보면서 몹시 안타까운 표정이 된다.
가 : 북소리 중지! 반수생 떼는 물러갔다.
다 : 정말 현역을 위협하는 반수생이 있다구 믿으세요?
나 : 보렴, 방금도 오질 않았니? 그렇지 않다면 내가 왜 양철북을 치며 평생을 보냈겠느냐? 서운하다. 아무리 아픈 애라지만 너무 심한 말을 하는구나.
다 : 죄송해요. 하지만 어쩜 그 많은 나날을 단 한 번도 의심없이 보내셨어요?
나 : 넌 그렇게도 무섭니, 반수생이?
다 : 오히려 반수생이 있다고 믿었던 때가 좋아던 것 같아요. 그땐 숨기라도 했으니까요. 땅에 엎드리며 아늑하게 느껴졌어요. 지금은요, 반수생 떼가 없으니 땅에 엎드려야 아무 소용없구요, 양철북도 쓸모가 없게 됐어요. 오직 이제는 제가 본 그 사실만을 말하고 싶어요.
해설자, 촌장이 되어 등장. 검은 옷차림. 이해심이 많아 보이는 얼굴과 정중한 태도.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한다.
촌장 : 수고하시는군요, 파수꾼님.
나 : 아, 촌장님. 여긴 웬일이십니까?
촌장 : 추억을 더듬으러 왔습니다. 이 황야는 내가 현역 시절 점수를 따러오곤 했던 곳이지요. 그땐 반수생이 무섭지도 않았나 봐요. 여기저기 덫이 깔려 있고 망루 위의 파수꾼이 외치는데도 어린 난 점수 따기에만 열중했었으니까요. 그 즐거웠던 옛 추억, 오늘 아침 나는 그 추억을 상기시켜 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곳엘 찾아온 거예요.
*점수 : 과일. 마을의 특산물이다.
나 : 잘 오셨습니다, 촌장님.
촌장 : 오다 보니까 저쪽 덫에 반수생이 치어 있습디다.
나 : 반수생이요? 어느 쪽이죠?
촌장 : 저쪽요, 저쪽. 찔레 덩쿨 밑이던가요…….
나 : 드디어 잡는군요!
파수꾼 ‘나’ 퇴장. 촌장은 편지를 꺼내 ‘다’에게 보인다.
촌장 : 이것, 네가 보낸 거니?
다 : 네, 촌장님.
촌장 : 나를 이곳에 오도록 해서 고맙다. 한 가지 유감스러운 건, 이 편지를 가져 온 운반인이 도중에서 읽어 본 모양이더라. ‘반수생 떼는 없구, 흰 구름 뿐.’ 그 수다쟁이가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있단다. 조금 후엔 모두들 이 곳으로 몰려올거야. 물론 네 탓은 아니다. 넌 나 혼자만을 와달라구 하지 않았니? 몰려오는 사람들은 말하자면 불청객이지. 더구나 어떤 사람은 도까까지 들고 온다더라.
다 : 도끼를 왜 들고 와요?
촌장 : 망루를 부순다고 그런단다. ‘반수생 떼는 없구, 흰 구름 뿐.’ 이것이 구호처럼 외쳐지구 있어. 그 성난 사람들만 오지 않는다면 난 너하구 점수라도 따러 가고 싶다. 난 어디에 점수가 많은지 알고 있거든. 반수생 떼를 주의하라는 팻말 밑엔 으레히 점수를 딸 기회가 가득하단다.
다 : 촌장님은 반수생이 무섭지 않으세요?
촌장 : 없는 걸 왜 무서워하겠니?
다 : 촌장님도 아시는군요?
촌장 : 난 알고 있지.
다 : 아셨으면서 왜 숨기셨죠? 모든 사람들에게, 저 덫을 보러 간 파수꾼에게, 왜 말하지 않는 거예요?
촌장 : 말해 주지 않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다 : 거짓말 마세요, 촌장님! 일생을 이 쓸쓸한 곳에서 보내는 것이 더 좋아요? 사람들도 그렇죠! ‘반수생 떼가 몰려 온다.’ 이 헛된 두려움에 시달리는데 그게 더 좋아요?
촌장 : 얘야, 현역을 위협할 반수생은 처음부터 없었다. 없는 걸 좀 두려워한다는 것이 뭐가 그렇게 나쁘다는 거냐?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반수생에게 물리지 않았단다. 마을은 늘 안전했어. 반수생이 있으나 없으나 공부를 못한단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반수생 떼에 대항하기 위해서 단결했다. 그들은 질서를 만든 거야. 질서, 그게 뭔지 넌 알기나 하니? 모를 거야, 너는. 그건 마을을 지켜 주는 거란다. 물론 저 충직한 파수꾼에겐 미안해. 수천개의 쓸모 없는 덫들을 보살피고 양철북을 요란하게 두들겼다. 허나 말이다. 그의 일생이 그저 헛되다고만 할 순 없어. 그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고귀하게 희생한 거야. 난 네가 이러한 것들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만약 네가 새벽에 보았다는 구름만을 고집한다면, 이런 것들은 모두 허사가 된다. 저 파수꾼은 늙도록 헛북이나 친 것이 되구, 마을의 질서는 무너져 버린다. 얘야, 넌 이렇게 모든 걸 헛되게 하고 싶진 않겠지?
다 : 왜 제가 헛된 짓을 해요? 제가 본 흰 구름은 아름답고 평화로웠어요. 저는 그걸 보여 주려는 겁니다. 이제 곧 마을 사람들이 온다죠? 잘 됐어요. 저는 망루 위에 올라가서 외치겠어요.
촌장 : 뭐라구?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킨 후에 웃으며) 사실 우습기도 해. 반수생? 그게 뭐냐? 있지도 않는 그걸 이 황야에 가득 길러 놓구, 마을엔 가시 울타리를 둘렀다. 망루도 세웠구, 양철북도 두들기구, 마을 사람들은 무서워서 떨기도 한다. 아하, 언제부터 네가 이런 거짓놀이에 익숙해졌는지 모른다만, 나도 알고는 있지. 이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다는 걸 말이다.
다 : 그럼 촌장님, 저와 같이 망루 위에 올라가요. 그리구 함께 외치세요.
촌장 : 그래, 외치마.
다 : 아, 이젠 됐어요!
촌장 : (혼자말처럼) …… 그러나 잘 될까? 흰구름, 허공에 뜬 그것만 가지구 마을이 잘 유지될까? 오히려 반수생이 더 좋은 건 아닐지 몰라.
다 : 뭘 망설이시죠?
촌장 : 아냐. 아무 것두……난 아직 안심이 안 돼서 그래. (온화한 얼굴에서 혀가 낼름 나왔다가 들어간다.) 지금 사람들은 도끼까지 들구 온다잖니? 망루를 부순 다음엔 속은 것에 더욱 화를 낼 거야! 아마 날 죽이려구 덤빌지도 몰라. 아니 꼭 그럴 거다. 그럼 뭐냐? 지금까진 반수생에게 물려 죽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는데, 흰구름의 첫날 살인이 벌어진다.
다 : 살인이라구요?
촌장 : 그래, 살인이지. (난폭하게) 생각해 보렴, 도끼에 찍힌 내 모습을. 피가 샘솟듯 흘러내릴 거다. 끔직해. 얘, 너는 그런 꼴이 되길 바라고 있지?
다 : 아니에요, 그건!
촌장 : 아니라구? 그렇지만 내가 변명할 시간이 어디 있니? 난 마을 사람들에게 왜 반수생 떼를 만들었는지, 그걸 알려 줘야 해. 그럼 그들도 날 이해해 줄거야.
다 : 네 그렇게 말씀하세요.
촌장 : 허나 내가 말할 틈이 없다. 사람들이 오면, 넌 흰구름이라 외칠 거구, 사람들은 분노하여 도끼를 휘두를 테구, 그럼 나는, 나는…… (은밀한 목소리로) 얘, 네가 본 그 흰구름 있잖니, 그건 내일이면 사라지고 없는 거냐?
다 : 아뇨. 그렇지만 난 오늘 외치구 싶어요.
촌장 : 그것 봐. 넌 내 피를 보고 싶은 거야. 더구나 더 나쁜 건, 넌 흰구름을 믿지도 않아. 내일이면 변할 것 같으니까, 오늘 꼭 외치려구 그러는 거지. 아하, 넌 네가 본 그 아름다운 걸 믿지도 않는구나!
다 : (창백해지며) 그건, 그건 아니에요!
촌장 : 그래? 그럼 너는 내일까지 기다려야 해. (괴로워하는 파수꾼 다를 껴안으며) 오늘은 나에게 맡겨라. 그러면 나도 내일은 너를 따라 흰구름이라 외칠테니.
다 : 꼭 약속하시는 거죠?
촌장 : 물론 약속하지.
다 : 정말이죠. 정말?
촌장 : 그럼. 정말 약속한다니까.
(중략)
나 : (관객석 쪽으로 돌아보다가 흠칫 놀라며) 웬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오죠?
촌장 : 마을 사람들이지요.
나 : 마을 사람들요?
촌장 : (관객들을 향해) 어서 오십시시오, 주민 여러분. 이 애가 그 말을 꺼낸 파수군입니다. 저기 방긋 웃고 있는 식량 운반인. 이 애가 틀림없지요? 네. 그렇다고 확인했습니다. 이리 떼인지 이니면 흰구름인지, 직접 이 아이의 입을 통하여 들어 봅시다.
파수꾼 다, 쓰러질 것 같은 걸음으로 망루를 향해 걸어간다. 나가 근심스럽게 쫓아간다.
나 : 얘야, 괜찮겠니?
다 : …… 네.
나 :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구나. 넌 반수생 떼란 말만 들어도 벌벌 떠는 겁쟁인데. 망루 위에 올라가서 엎드리면 안 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널 보러 오지 않았니? 얼마나 큰 영광이냐. 이 기회에 말이다, 넌 너 자신이 파수꾼이라는 걸 힘껏 자랑해야 한다. 알았지, 응?
파수꾼 다는 망루 위에 올라간다. 긴 침묵. 마침내 부르짖는다.
다 : 반수생 떼다! 반수생 떼가 몰려온다!
다음 작품은 은퇴작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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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하 : http://orbi.kr/0005089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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