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비 문학 새작품 - 태평천하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5089333
"동경서 전보가 왔는데요……."
지체를 바꾸어 윤주사를 점잖고 너그러운 아버지로, 윤직원 영감을 속 사납고 경망스런 어린 아들로 둘러 놓았으면 꼬옥 맞겠습니다.
"동경서? 전보?"
"종학이놈이 +1수를 한다구요?"
"으엉?"
외치는 소리도 컸거니와 엉덩이를 꿍― 찧는 바람에, 하마 방구들이 내려앉을 뻔했습니다. 모여 선 온 식구가 제가끔 정도에 따라 제각기 놀란 것은 물론이구요.
윤직원 영감은 마치 묵직한 몽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양, 정신이 멍―해서 입을 벌리고 눈만 휘둥그랬지, 한동안 말을 못 하고 꼼짝도 않습니다.
그러다가 이윽고 으르렁거리면서 잔뜩 쪼글트리고 앉습니다.
"거, 웬 소리냐? 으응? 으응……? 거 웬 소리여? 으응? 으응?"
"그놈 동무가 꼬드겼나 본데, 전보가 돼서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윤주사는 조끼 호주머니에서 간밤의 그 전보를 꺼내어 부친한테 올립니다. 윤직원 영감은 채듯 전보를 받아 쓰윽 들여다보더니 커다랗게 읽습니다. 물론 원문은 일문이니까 몰라 보고, 윤주사네 서사 민서방이 번역한 그대로지요.
"종학, 물수능으로 재종반에 입학……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다냐?"
"종학이가 물수능으로 재종반에 붙잽혔다는 뜻일 테지요!"
"물수능이라니?"
"그놈이 +1수에 참예를……."
"으엉?"
아까보다 더 크게 외치면서 벌떡 뒤로 나동그라질 뻔하다가 겨우 몸을 가눕니다.
윤직원 영감은 먼저에는 몽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같이 멍했지만, 이번에는 앉아 있는 땅이 지함을 해서 수천 길 밑으로 꺼져 내려가는 듯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단코 자기가 믿고 사랑하고 하는 종학이의 신상을 여겨서가 아닙니다.
윤직원 영감은 시방 종학이가 +1수를 한다는 그 한 가지 사실이 진실로 옛날의 드세던 부랑당패가 백길 천길로 침노하는 그것보다도 더 분하고, 물론 무서웠던 것입니다.
진(秦)나라를 망할 자 호(胡:오랑캐)라는 예언을 듣고서 변방을 막으려 만리장성을 쌓던 진시황, 그는, 진나라를 망한 자 호가 아니요, 그의 자식 호해(胡亥)임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죽었으니, 오히려 행복이라 하겠습니다.
"+1수라니? 으응? 으응?"
윤직원 영감은 사뭇 사람을 아무나 하나 잡아먹을 듯 집이 떠나게 큰 소리로 포효(咆哮)를 합니다.
"……으응? 그놈이 +1수를 허다니! 으응? 그게, 참말이냐? 참말이여?"
"허긴 그놈이 작년 여름방학에 6평 성적표 나왔을 때버틈 그런 기미가 좀 뵈긴 했어요!"
"그러머넌 참말이구나! 그러머넌 참말이여, 으응!"
윤직원 영감은 이마로, 얼굴로 땀이 방울방울 배어 오릅니다.
"……그런 쳐죽일 놈이, 깎어 죽여두 아깝잖을 놈이! 그놈이 점수 맞춰 입학 허라닝개루, 생판 쳐놀다가 뎁다 재종반에 잽혀? 으응……? 오―사 육시를 헐 놈이, 그놈이 그게 어디 당헌 것이라구 지가 +1수를 히여? 부자놈의 자식이 무엇이 대껴서 부랑당패에 들어?"
아무도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섰기 아니면 앉았을 뿐, 윤직원 영감이 잠깐 말을 그치자 방 안은 물을 친 듯이 조용합니다.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오죽이나……."
윤직원 영감은 팔을 부르걷은 주먹으로 방바닥을 땅― 치면서 성난 황소가 영각을 하듯 고함을 지릅니다.
"학벌주의가 있더냐아? 아님 공부가 어렵더냐……? 공부를 해봐야 점수는 안나오고, 탐구가 4과목이던 말세넌 다 지내가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대학생이요, 골골마다 공명헌 원서질,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물수능을 치게 혀서, 우리 조선 학생 보호히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 점수 지니고 앉아서 편안허게 입학할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자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 지가 떵떵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 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 지가 몽주니어여 으응? "
땅― 방바닥을 치면서 벌떡 일어섭니다. 그 몸짓이 어떻게도 요란스럽고 괄괄한지, 방금 발광이 되는가 싶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모여 선 가권들은 방바닥 치는 소리에도 놀랐지만, 이 어른이 혹시 상성이 되지나 않는가 하는 의구의 빛이 눈에 나타남을 가리지 못합니다.
"……착착 깎어 죽일 놈……! 그놈을 내가 핀지히여서, 백 년 지녁을 살리라구 헐걸! 백 년 지녁 살리라구 헐 테여…… 오냐, 그놈을 삼천 석거리는 직분〔分財〕하여 줄라구 히였더니, 오―냐, 그놈 삼천 석거리를 톡톡 팔어서, 기숙학원으다가 답없는 놈 잡어 가두는 기숙학원으다가 주어 버릴걸! 으응, 죽일 놈!"
마지막의 으응 죽일 놈 소리는 차라리 울음 소리에 가깝습니다.
"……이 태평천하에! 이 태평천하에……."
쿵쿵 발을 구르면서 마루로 나가고, 꿇어앉았던 윤주사와 종수도 따라 일어섭니다.
"……그놈이, 만석꾼의 집 자식이, 세상 망쳐 놀 N수생 부랑당패에, 참섭을 히여. 으응, 죽일 놈! 죽일 놈!"
연해 부르짖는 죽일 놈 소리가 차차로 사랑께로 멀리 사라집니다. 그러나 몹시 사나운 그 포효가 뒤에 처져 있는 가권들의 귀에는 어쩐지 암담한 여운이 스며들어, 가뜩이나 어둔 얼굴들을 면면상고, 말할 바를 잊고, 몸둘 곳을 둘러보게 합니다. 마치 장수의 죽음을 만난 군졸들처럼……
여름에 떠올랐던 아이디어를 이제야 쓰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 보러가기 (N수몽) - http://orbi.kr/0004721216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호날두 포트트릭 간다 1 1
-
곧 경기 시작하네요 1 1
정배는 스페인 승리긴한데, 뭔가 그래도 오래 봐왔던 날두가 한건해서 이겨서 8강...
-
노트북 바꿨는데 2 0
맘에드네
-
빅매치 17분전 5 1
포르투갈 1대0승으로 번복하겠습니다 노연장
-
동경은 가장 먼 7 2
수도야 부에노스아이레스로부터
-
아빠 안잔다 2 0
채널 돌려라
-
영어 n제 1 0
요즘 난이도 보면 풀어야하나 1등급 필요하긴한데
-
방 ㅇㅈ 9 0
-
안 졸리나 1 1
졸리
-
인터넷에서 쓰는건 인터넷밈이니까 그러려니하겠는데 현실에서 입밖으로 꺼내는거 보면...
-
탁월 두개 만들었슨 5 0
경기는 물론 짐..
-
하..심심해 4 1
하...
-
애니프사뗀지두달쯤됐나 3 1
살짝비십덕이 된 느낌이
-
식품공장 알바 다녀왓는데 4 0
그나마 제일 쉬운일 걸린듯 사람 많고 바쁜 분위기라 특별하게 감시하면서 재촉하거나...
-
방 ㅇㅈ 4 1
완전 돼지우리가 따로 없다능
-
소고기사준다하고 도움을 청해볼까..
-
호날두vs 스페인 2 0
어디가 이길까
-
처박혀있던 고1때 만든 문제 0 1
답도 기억안나긴함
-
방인증 15 0
星川 かわいい
-
사람 패면 감빵가나요? 7 0
개패고 싶은 사람 있는데 cctv 엄ㅅ는곳에서 몰래 패도 되겠죠?
-
안녕히주무세요 7 1
열공!
-
자러 갑니다 3 2
다들 잘자요
-
작년 9모의 악몽 4 1
화2 1컷 50 47 2컷 진짜 하루종일 화2 1컷 50은 지랄 시발만 몇번을...
-
전작은 199만원이었는데 아이폰18프맥은 인상된다길래 그냥 그돈으로 데스크탑 견적...
-
1호선 타고 통학할때 10 0
성대역 지날때마다 저도 모르게 위축되었던 기억이… 정말 가고 싶었던 학교..
-
생독재하면 4 0
매순간마다 극기하면서 공부해야하는게 너무 힘들다
-
자?작 12 0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두 방법으로 풀 때마다 각 1000덕 드림 한 방법은...
-
ㄹㅇ올라갔네..
-
예쁜 사람은 25 1
예뻐서 좋겠다
-
오듣노 36일차 2 0
Mrs. Green Apple - ア・プリオリ (A Priori)...
-
근데 9모 망쳐야 수능 잘봄 11 0
나 작년에 6모 커하찍고 풀어져서 9모 커로 찍었는데 9모까지 잘봤었다면 진짜...
-
제가 개발점 스텝업 절반정도는 혼자서 풀고 나머지 인강들으면 이해 되는데 지금...
-
오르비 굿나잇 11 0
-
걍 데스크탑 맞춰야지 9 1
흠
-
내가 간절한 게 맞는걸까 8 0
호날두 경기 볼지 말지 고민하다 현타옴
-
축구 누가 이기는게 정배임? 7 0
-
요즘 하루 순공이 6 0
2시간정도임
-
즐거운 편지황동규Ⅰ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
이더운날에 두각까지가서 선과제를 받아가라고? 당장 구글드라이브로 올리도록...
-
전자기파트에서 살짝 정체 1 0
전위라는게 있단말이야
-
스팸김볶마렵네 7 0
김치 한팩 사서 팬에 기름두르고 밥넣고 김치넣고 스팸다지고 고춧가루 넣고 잘볶아서 입에 딱 넣으면
-
대학 오고 안간절한 공부하니까 8 0
집중도 안되고 자꾸 하기싫어지네 이제 하루 10시간 공부 이런거는 시험 하루전 인생...
-
스페인 이기더라도 1 0
은퇴하는 신두형한테 가드오브아너 함 해주자
-
영어 실모 추천 가능할까요? 0 0
이명학 아카이브는 샀고 마피 풀었고 덕모 풀었고 V 모의고사 풀었습니다. 93~97...
-
오늘 신두형 라댄임? 3 0
축구 평소엔 안보지만 이건 ㄹㅇ 봐야겠지
-
나를 못 믿겠다 8 1
이러다가 또 허무하게 끝나버릴 것 같아요,,
-
아 뭐먹지 하다가 4 0
롯데리아 감자튀김 먹는상상하면 음 그냥 오늘도 롯데리아 가야갰다 그렇게됨
-
얼레 3 0
슬기로운 대학생활 사라졌구나 뭐이리 빨리닫아
-
하루쯤 day off 하고 가고싶은 학교 탐방해봐요 저는 작년에 수능 3주 남았을...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좋아요
이분필력이 ㅋㅋㅋ N수몽이 대박이네요
오르비 문학집 안 내시나요 ㅋㅋㅋ?
N수몽이 ㄹㅇ최고걸작ㅋㅋㅋ
미친 필력ㅋㅋㅋㅋ
아미칰ㅋㅋㅋㅋ ㅋㅋㅋ
깨알 몽주니어ㅋㅋ
ㅋㅋㅋㅋ몽주니엌ㅋㅋㅋ
미쳤다 진짜 여태까지것중에 최고인듯ㅋㅋㅋㅋ ㅋㅋㅋ ㅋㅋ ㅋㅋㅋㅋ ㅋㅋㅋ
ㅋㅋㅋㅋ탐구가 4과목이던 시절ㅋㅋㅋ
아진짜ㅋㅋㅋㅋㅋ
오르비에 천하제일소설자랑대회 열면 1등하실 듯. ㅋㅋㅋ
탐구가 4과목이던 말세ㅋㅋㅋㅋㅋ
진짜 동엽오빠 최고에요! N수몽부터 진짜 재밌게 보고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