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재수 문학 - 오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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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기출을 손에 쥔 재수생은 던져지듯이 털썩 택시 안에 쓰러졌다.
“어디로 가시죠?”
택시는 벌써 구르고 있었다.
“빰!빰!빰!빰! 나는 간다 신촌으로!”
자동차는 스르르 속력을 늦추었다. 연세대로 가자면 수능도 잘쳐야 하는 까닭이었다.
운전수는 줄지어 달려오는 수험생의 사이가 생기기를 노리고 있었다. 저만치 수험생의 행렬이 좀 끊겼다.
운전수는 핸들을 잔뜩 비틀어 쥐었다. 몸을 한편으로 기울이며 마악 원서접수를 하려는 때였다. 뒷자리에서 재수생이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한양대로 가.”
재수생은 갑자기 자신의 등급을 생각했던 것이다. 운전수는 다시 홱 핸들을 이쪽으로 틀었다. 운전수 옆에 앉았던 조수 애가 한번 재수생을 돌아보았다.
재수생은 수험장 한 구석에 가서 몸을 틀어박은 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때에 또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시립대로 가.”
눈을 감고 있는 재수생은 경쟁률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학교장추천은 이미 끝났는데 하고 이번에는 다행히 차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 그냥 달렸다.
“시립대입니다. 손님.”
“가자.”
재수생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어디로 갑니까?”
“글쎄, 가.”
“하, 참 딱한 재수생이네.”
“…….”
“망했나?” 운전수가 재수생을 쳐다보았다.
“그런가 봐요.”
“어쩌다 오발탄같은 재수생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게.”
운전수는 기어를 넣으며 중얼거렸다. 재수생은 까무룩히 잠이 들어가는 것 같은 속에서 운전수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멀리 듣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혼자 생각하는 것이었다― 아들 구실, 학생 구실, 남자 구실, 재수생 구실, 해야 할 구실이 너무 많구나. 너무 많구나.
그래, 난 네 말대로 아마도 조물주의 오발탄인지도 모른다. 정말 갈 곳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건 가긴 가야 한다―
재수생은 점점 더 졸려 왔다. 논술을 망친 것처럼 머리의 감각이 차츰 없어져 갔다.
“가자.”
재수생은 또 한 번 귓가에 조수 애의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하며 푹 모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차가 정시에 다다랐다. 앞에 교통 신호에 발간 불이 켜졌다. 차가 섰다. 또 한 번 조수 애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디로 가시죠?”
그러나 머리를 푹 앞으로 수그린 재수생은 아무 대답도 없었다.
따르릉 벨이 울렸다. 긴 수험생들이 일제히 추가합격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재수생도 목적지를 모르는 대로 행렬에 끼어서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재수생의 입에서 흘러내린 논술볼펜 잉크가 흥건히 그의 가슴을 적시고 있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채 잉크 밑으로 그의 전화기는 떨어졌다.
전엔 그냥 웃으면서 읽은건데 지금 원서접수하다 진짜 이 글이 생각나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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