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테스 [464284] · MS 2013 · 쪽지

2014-08-07 07: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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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98 치열한 자세를 위해, 차선이 아닌 최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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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수능이 며칠 안 남았습니다. 오르비 접속을 일년에 2,3번 하는데 오늘이 그 날이군요. 디데이 백일이 깨졌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이제 98일 남았군요. 느끼는 시간적 체감이 저마다 다를 겁니다. 옛날 일이긴 합니다만 지나가면서 한마디 해보자면, 저는 고2 겨울방학 두달 간 100점 좀 넘게 올리고 고3 여름방학 한 달 동안 모의고사 점수 20점 정도 올린 것 같습니다. 개중 겨울방학은 고시원에서 살면서 하루 13~15시간 매일같이 했습니다. 공부도 결국 생활 습관의 일종입니다. 처음에만 죽을 것 같고 힘들고 한계가 보이죠. 그런데 자꾸 하다 보면 순탄하게, 무난하게 잘 풀리는 것 같습니다. 공부의 양도 하다 보면 느는 법이죠. 대신 매일 꾸준히 해야 합니다. 하루 쉬면 그날 하루만 날리는 게 아니라 그동안 해왔던 며칠 간의 지식과 실력과 직관이 사라진다는 마음으로 말이죠.

그런데 제딴에는 열심히 하는데 되려
옆에서 이런 얘기를 했죠. '너만 공부하는 게 아니다, 다들 열심히 하기에 네가 암만 해봤자 바뀌는 게 없다.' 하지만 남들보다 10%더, 10분 더, 1문제 더 하다 보면 분명히 바뀌는 게 있습니다.

같은 98일이지만 누구는 이 시간을 200일 같이 살 것이며 누구는 30일 같이 보낼 것입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요기 베라의 식상한 경구를 들먹거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백명 중의 한두명은 오기로, 의지로, 독기로 자기 신화를 만들어볼 수 있을 겁니다.

두 편의 글을 소개합니다. 두 글 모두 일침을 가하는 자극적 글입니다. 한편에서는 이런 글 볼 시간에 공부해라,  몇 문제 더 풀어라 말하기도 합니다. 일각에는 이미 공부 잘 하는 이들은 자극적 글을 안 찾는다, 이런 시간이 없다 이렇게 얘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학생들 모두 나약한 면모를 품고 있는 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본인을 믿지 못해서 남의 글을 찾으며 위안 받고 재충전하는 식으로 공부를 한 사람 중에서 명문대 간 이도 많이 봤습니다. 저도 학생 시절에 오르비에 글을 많이 썼고 3~4개 정도의  게시글이 추천수 백 이상 받고 당시 특별게시판에 갔었습니다. 그때 어떤 글은 D-30 정도 남기고 쓴 글로 당시 얼마 안 남아 있는 시간과 관련하여 일침을 가하는 글이었습니다. 그 글을 보고 덧글로 눈물이 났다, 고맙다라며 글을 남긴 여학생이 있었는데 수능을 끝나서 나중에 보니 그 학생은 서울법대로 진학했더군요.
스스로 발화하며 연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타인이나 외부의 것에 의해 불타오르는 사람도 있지요. 제가 올리는 두 편의 글이 의욕 생성이나 투쟁심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동기부여가 되고 의욕 충전에 도움만 된다면 밑에 있는 이런 글을 보는 것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이문열 <젊은 날의 초상> 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이 부분은 나름 유명한 구절입니다.
2.한 지인이 2004년 당시 오르비에 썼던 글입니다. 그 후 그는 서울법대 05학번으로 합격했습니다.
(참고로 그는 고2때 수능공부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공부하다가 잠 온다고 방망이로 자신의 팔을 때리면서 잠을 깰 정도로 독종입니다. 이건 극히 개인적인 사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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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 시험은 유희가 아니라... 진작도 나는 그렇게 말해 왔지만, 이제야말로 이 시험은 내가 반드시 풀어야 할 삶의 과제이며 넘어야 할 운명의 산맥이다. 내 정신을 학대하는 압제자이며 나를 가두는 벽이며 이것을 극복하지 않고는 결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사슬이다. 이 시험은 너무 깊이 들어와서 되돌아갈 수 없는 미로(迷路)이며 나는 도망칠 권리조차 없는 필사의 전사(戰士)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체의 잡념은 버릴것이다. 상상력의 과도한 발동은 억제할 일이다. 음과 색에 대한 지나친 민감을 경계할 것이다. 언어와 그것의 독특한 설득 형식에는 완강할 것이다. 감정의 분별없는 희롱, 특히 그것의 왜곡이나 과장은 이제 마땅히 경멸할 일이다.

시계의 초침 소리를 듣는 데 소홀하지 말아라. 지금 그 한 순간 순간이 사라져 이제 다시는 너에게 돌아올 곳 없는 곳으로 가버리고 있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해라. 한 번 흘러가버린 강물을 뒤따라 잡을 수 없듯이 사람은 아무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떠날 수 없다. 더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초침 소리에 관대할 수 없으니, 허여된 최대치는 이미 낭비되고 말았으니.

너는 말이다. 한번쯤 그 긴 혀를 뽑힐 날이 있을 것이다. 언제나 번지르르하게 늘어놓고 그 실천은 엉망이다. 오늘도 너는 열여섯 시간분의 계획을 세워놓고 겨우 열 시간분을 채우는 데 그쳤다.
쓰잘 것 없는 호승심(好勝心)에 충동된 여섯 시간을 낭비하였다.

이제 너를 위해 주문을 건다. 남은 날 중에서 단 하루라도 그 계획량을 채우지 않거든 너는 이 시험에서 떨어져라. 하늘이 있다면 그 하늘이 도와 반드시 떨어져라. 그리하여 주정뱅이 떠돌이로 낯선 길바닥에서 죽든 일찌감치 독약을 마시든 하라.

_이문열 <젊은 날의 초상> 중에서


2.내가 이 글을 쓰고 있을 때에도, 혹은 당신들이 이 글을 읽고 있을 때에도. 나는 인터넷 강의 평가 하나를 들추면서, 혹은 문제집 평가 하나를 들추면서, 그러다가 일기장에 가서 남의 일기를 기웃 거리면서. 왜 그렇게 시간을 소비해야만 하는가? 또한 나 스스로에게 뻔히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 하면서도 왜 또 다시 그렇게 하는 자기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가? 중독이 되었다? 그러한 말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것인가? 결국 그러한 모습은 나의 나태한 자세요, 나의 불확실한 미래에 더욱 불확실한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면서 왜 그렇게도 치열하지 못한 자세로 이 글을 읽으면서 다짐할 나나 당신들의 결심 마저도 또 다시 더럽히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무엇을 얻었는가? 무엇을 잃었는가? 삶이라는 것은 결국 無에서 無로 돌아간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서 그렇게 허무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변명을 해 보고 싶은건가? 혹은 내가 1시간동안 열심히 공부 했으니까? 혹은 내가 어젯 밤에 죽으라고 공부 했으니까? 진심으로 공부를 하는 데에 있어서 나 자신이 이 곳에 몸담고 있으면 되는 시간은 하루에 한번, 10분만으로 아니 그 이하만으로도 족하다. 필요하면 규칙적으로 해도 되는 것을, 무엇이 그렇게 이 곳에 집착을 하고, 이 곳에서 그 무언가를 찾으려 하는가? 내가 찾는 그것은 이곳에 없다. 이 곳에 있는 수 많은 내용들은 그 것을 얻기 위해 조금 더 빠른 길을 제시해 줄 뿐이다. 아니, 지금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오히려 더 멀어지고 있다. 내가 알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무언가 하나 알았다는 생각에 더 우쭐해 지지 않는가? 아닐 수도 있다.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미칠듯이 죽을듯이 나 자신의 영혼을 깨우고, 나 자신에게 분노해야 한다.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채찍질 할 수 있어야 하며, 나 자신에게서 나 자신의 모자람에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한다. 이 곳에서 말하는 1%나 2%뿐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라 함은 공부의 "방법"이 아니다. 그 안의 "자세"가 더 중요하며, 그 "의지"와 그 "노력"에 더 의미가 있는 법이다. 그 가능성 안에 나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힘과 노력, 그리고 그렇게 치열하게 눈물나게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그 눈물마저도 뛰어넘어서 나 자신을 찾으려 노력하는 의지가 있어야만 한다. 치열해야 한다. 치열해야 한다. 나는 오늘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왜 지나온 과거나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원인으로 말해질 수 있는가? 나 자신의 나약함과 오만함,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아닌 자만감의 결과이다. 차라리 쓰러져라. 무너져버려라. 그리고 다시 일어나라. "가장 위대한 승리는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공자께서 말하셨다. 1분만에 내가 무너질 놈이라면 1분에 한번씩 반성하라. 2분에 무너진다면 2분만에 반성하라. 그렇지 않은가? 왜 자꾸 나 자신을 속이는가? 왜 자꾸 나 자신에게 치열하지 못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결국 눈물나게 아픈 길만이 가장 웃을 수 있는 길임을 알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포기할 수 있는 의지로 살아가야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왜 자꾸 방황하고 번뇌하는가? 이 나약한 짐승아. 그렇게 해서 무엇을 승리로 얻을 수 있겠는가? 왜 자꾸 이 곳의 의미를 더럽히는가? 이 곳에서 방황하다가 패전한 전사가 되었을 때, 이 곳에서는 너를 반겨주지 않는다. 넌 또 한 번의 좌절과 방황을 이 곳에서 해야 할 뿐이다. 난 저 잘난 490점대의 신화를 이룬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난 490점대의 신화를 이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난 그리고 그 신화를 이룩하기 위해서 달려가면서. 이미 많은 것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나 자신에게 최선을 다 했을 때. 그것이 진정 490점보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점수가 나의 신념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점수는 나의 신념의 뒤에 따라오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는가!!!

나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는가?

그 가능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는가? 절제다 절제. 절제와 인내. 고통을 견뎌내는 힘이 바로 나의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어 낼 뿐이다.

"포기하지 말라!!"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데, 왜 벌써 나 자신을 포기하는가?? 왜. 왜 나는 남들
이 이루는 신화의 대열에 동참할 수 없다는 생각부터 하면서 나 자신을 대하는가??

미친듯이 살아라. 미친듯이 살아라. 죽을듯이 미친듯이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라. 어차피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말일 뿐, 나의 삶도 어떠한 것도 포기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결국 난 그 의지로 남은 시간을 보낸다면 되는 것인데.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서 나의 앞에 남아있는 백 걸음 정도만 더 가면 되는 길을 이렇게 방황하면서 보내고 있는가?? 이것이 나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왜 나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방황하는가?? 무엇이 나의 길인가?? 무엇이 내가 가야 할 길인가??

오늘 하루에 모든 것을 걸어라. 그것이 나를 이기는 길이다. 미래에 대한 꿈은 원대하게 꾸어라. 그것은 나를 지탱할 힘이다. 그러나, 나 자신에 대한 평가를 나 지신의 가능성에 두지 말아라. 나 자신에 대한 평가는 내가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그 상태의 가능성에 두는 것이다. 지금 이 나태한 자세를 자꾸 가능성으로 바꾸는 가장 바보같은 짓을 하지 말란 말이다! 왜 아직도 모르겠는가. 난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는가?? 그 뼈아픔을. 이미 수 없이 겪어온 길 아닌가? 이젠 아니다. 이젠 단 한번에 모든 것을 끝내야 하는 것 아닌가??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 자신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가 보다 결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내가 내 자신에게 어떠한 사람인가??? 한번만 다시 돌아보아라. 그래.. 이거다. 바로 이것이다. 이 나약하고 비참한 태도. 이 치열함을 다짐하면서 또 한번 무너지는 태도. 버려라. 버려라.

그렇게 강해지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이젠. 더 이상 변명하지 마라. 아직 기적의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 이제부터는 모두 나의 몫이다. 변명이라는 것은 가장 나약한 순간에 할 수 있는 스스로를 합리화 하는 가장 쓰라린 상처를 낳게하는 독일 뿐이다. 이미 많이 겪어 본 것 아닌가. 이제.. 더 무엇을 바라는가?

나 자신을 속이고 합리화 시키는 것이 즐거운가?? 순간적인 즐거움에 모든 것을 버리고 싶나?? 스스로가 모자라다면 스스로를 강화시키지 못하고, 남의 치열한 기록의 결과를 보고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는가? 왜 자꾸 나 자신에게 제대로 된 길을 걸어가도록 채찍질하지 못하는가??

또 어디에 핑계를 대는가?? 나 자신이 치열하지 못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또 어디에 핑계를 대는가? 대봐라 대봐라 마음껏 대봐라. 대 보면 답이 나오는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핑계를 댈 시간 동안 나 자신을 다시 추스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아직도 그 합리화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대는가??

한번만.

단 한번만이라도 난 오늘 하루에 목숨을 걸고 살아보았는가?

단. 한. 번. 만. 이. 라. 도?

해 보았다면 왜 못하는 것인가????? 왜. 그날의 그 힘겨웠지만 웃을 수 있는 순간처럼 다시 스스로를 찾고 싶지 않는가?

해보지 못했다면 왜 못하는 것인가? 깨어지는 아픔 없는 새로운 세상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면서도 왜 스스로를 가두는가??

단 한번이라도 나의 이름을 되찾고 싶다면.

치열하게. 미칠듯이. 죽을듯이. 눈물나게 살아라.

그것이 지금 나를 찾을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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