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雪梨) [466359] · MS 2013 · 쪽지

2014-07-09 06:11:48
조회수 412

달변가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4684763

지금도 나를 꼬마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보다 더 꼬꼬마일 시절 초등학교 6학년때 나는 어떻게하면 논리적으로 말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를 고민했었다.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진실만을 말하자는 것이었다. 꾸미지말고 알맹이에만 집중해서 가감없이 솔직하게 말하다보면 내 주장이 진실을 가리키고 있는 이상 절대 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만약 내 주장이 틀릴 경우 그냥 인정하고 바꾸면 되는거니까 그것도 손해가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 꼬마는 곧 그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우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나에겐 뭐가 진실인지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 신념에 확신이 있더라도 현란하게 꾸며 거짓을 포장하는데 능숙한 어른들을 당해낼 재간은 없었다. 언뜻 듣다보면 그럴싸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뭔가 아닌거 같은데 왠지 반박할 수는 없는 그런거 말이다. 내 능력이 부족한 탓인가? 그들이 너무 뛰어난 탓인가 .. 전자라면 그거 참 큰 문제지만 후자면 더욱 더 큰 문제가 된다.
진실만을 외치면 된다니. 진실이 존재하긴 하는건지도 의문이지만 진실을 제대로 아는건 너무나도 힘든 일이어서 차라리 상대방 논리의 허점을 잡아 비아냥대는게 훨씬 쉬운 것이다. 나는 그런식으로 당장의 말싸움에서 이기고 싶은게 아니다. 그렇지만 이젠 그럴싸한 논리로 아닌걸 옳(아 보이)게 만들어내는 역겨운 달변가들 앞에서 나는 차라리 '야이 똥꾸멍아' 라고 외치는게 최선이 되었다.
그런고로 나는 논리를 믿지 않는다. 아니 논리적인 것 처럼 보이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 꼬인 논리 속에 무언가 허점이 분명 존재할테지만 나는 그걸 알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더 자라 많은걸 알게되면 논리를 훌륭한 도구로 사용하여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이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하플 · 505036 · 14/07/09 07:00 · MS 2014

    꽤나 공감되는군ㅋㅋ

  • 1펀치3강냉이 · 434973 · 14/07/09 08:14 · MS 2012

    많은 걸 알게 된다고 해도 논리적인 사람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 김무빈♡ · 429588 · 14/07/09 08:49 · MS 2012

    저 글을 한 문장으로 풀어쓰면 "나는 바보다"
    ㅜㅠㅜ

  • 설리(雪梨) · 466359 · 14/07/09 22:25 · MS 2013

    들켯다 헷..

  • 냥꾼의 무기 · 243365 · 14/07/09 10:16

    똥꾸멍이라 죄송.

  • 냥꾼의 무기 · 243365 · 14/07/09 10:17

    뿌직뿌직뿌직뿌직뿌직뿌직뿌직뿌직뿌직

  • 설리(雪梨) · 466359 · 14/07/09 22:25 · MS 2013

    되게 발랄한 똥꾸멍이네...

  • 솔로깡 · 330158 · 14/07/09 23:47

    발랄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 솔로깡 · 330158 · 14/07/09 22:04

    논리에 허점이 있다고 해서 논리 모듈 자체를 거부하는 패러다임은 오류가 많아서.......
    포스트 모더니즘이나, 논리를 차용한듯한 유사과학, 유사논리, 유사수학, 유사철학등에 덮여져 그것을 논리라고 받아들이는 것 또한 실제로 논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것을 배척하는 행위와 다름없을 것 같아요.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존재하지만, 그 사이에서 존재하는 가치관적 논의에 대해서는 충분히 논리가 통용됩니다. 어디까지나 논리의 맹신을 경계해야지, 논리체계 자체의 거부는 곧 이성에 대한 거부로밖에 해석되지 않아요.

    가장 좋은 방법은 여전히 진실만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취합하여 스스로 판단내리는 것입니다. 남을 비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잘못된 행위를 짚어주면 될 일. 똥이 더럽다고 하여 화장실을 안 가면 탈이 생깁니다.

    스스로 [그럴싸한 논리로 아닌걸 옳(아 보이)게 만들어내는 역겨운 달변가] 짓을 한 적이 전혀 없다고 자신할 수 없습니다만, 그런 행태로 인해 논리 자체의 불신으로 가기에는 너무나도 극단적인 일반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 솔로깡 · 330158 · 14/07/09 22:08

    단순히 말 싸움에서 논리적으로 이기는 것과 실제 진실은 다를 떄도 많지요. 허나, 그렇다고 해서 논리의 틀이 부정되거나, 논리 자체의 불신이 이를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논리 자체의 불신이 '논리적으로 말하는 달변가들 중에 역겨운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그래서 논리 자체를 불신한다' 는 것은 결국 '도덕 자체를 외치면서 도덕적으로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을 많이 보았고, 그래서 나는 도덕을 불신한다.'는 것이랑 다를 것이 없다고 봅니다.

  • 솔로깡 · 330158 · 14/07/09 22:09

    뭔가 아닌 것 같은 직관과, 실제로 아닌 진실은 개인의 영역. 이를 이성의 영역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논리적으로 올바른가'는 잣대가 필요합니다. 단순히 스스로 옳지 않다고 행동하여 이를 논리에 의한 필터링 없이 주장하다가는 논리에 대한 불신 그 자체를 불신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 설리(雪梨) · 466359 · 14/07/09 22:35 · MS 2013

    와 댓글 짱길게 달아줬다 감동... 님진짜글잘쓰네요 읽으면서 감탄함.

    제가 불신하는거는 '꼬인 논리' 그리고 '논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말' 이에여. 또한 제가 원하는건 제대로된 논리와 꼬인 논리를 구별할수있는 눈을 가지게 되는거죠 논리자체를 부정할생각은 없어여 제가글을 못쓰나봐요...ㅠㅠ

  • 냥꾼의 무기 · 243365 · 14/07/10 19:20

    저기, 혹시 반해도 될까요

  • Venu · 488173 · 14/07/10 12:32 · MS 2014

    어쩌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