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tty girl♡ [1760] · MS 2002 · 쪽지

2014-02-19 00: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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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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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영상을 만들면서 공일오비의 '이젠 안녕'이라는 노래를 몇 백번은 들은 것 같은데,
이제 진짜로 안녕- 이 되었구나.
너희들.. 나 많이 힘들게 해서 울지 않을 꺼라 생각했는데,
한명 한 명 졸업장을 받으러 나오는 모습에 정말 하염없이 눈물만 흐르더라..

우리 1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
너희 데리고 경주 수학여행 같이 갔던 것도.
서울랜드. 축제. 컵라면 파티
특히 너희가 스승의 날에 깜짝 파티 해준 거, 모두가 부러워했던^^
잊지 못해. 어떤 프로포즈도 이보다 로맨틱할 순 없을거야.

이렇게 즐거웠던 기억도 많았지만,

놀다가 팔 부러진 거..(정말 속상해. 다치지 말아라)
요리수업하다가 교실에서 불 날 뻔해서 내가 소화기로 껐던 건 정말 평생 잊지 못하겠지.
덕분에 소화기 사용 태어나서 처음 해 봤단다.

학부모님에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민원이 들어왔을 때는 많이 속상하고, 너희까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단다. 교사의 교육적 의도를 몰라주는 엄마들이 밉기도 했고...
그러나 오늘은 그 학부모님과도 웃으면서 그동안 감사했다고- 진심으로 인사했단다.
지난 1년간 더 성숙하고 자란 건 너희들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구나. ^ ^

얘들아, 2학기가 되니 남학생 중 절반 이상이 야동을 보는 걸 알고 처음엔 많이 놀랐단다.
나중엔 차차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ㅎㅎ
적당히 보렴.


또... 정말 미안한 것이 있다면,
샘이 얼마전 이별을 겪을 때 너희에게 신경 많이 못 써준 게 맘에 많이 걸리는구나.
그때 너무 내 문제에 골몰해 있어서, 너희가 좋은수업 받도록 준비도 많이 못 했고, 너희 개개인에게 관심을 기울여주지 못했단다.
그땐 밥도 못 먹고 울기만 하느라 사실 학교에 오는 것도 고역이었거든.
미안해. 얘들아.. ㅠ.ㅠ.



사람이 분명 힘들거나 안 좋았던 기억이 많음에도 '그래도 좋았었지.'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인간은 망각을 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때로는 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보고, 너희 졸업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던 날이 있었는데..ㅎㅎ 오늘 담임선생님은 너희의 졸업영상을 무한반복해 보면서 혼자 울컥하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구나.

추억은 미화되고, 아름다운 기억만 남는가봐. ^^


너희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난 텅빈 교실에 혼자 앉아, 지난 시간들을 되새겨 보지만
이제 나도 또 다시 새로운 아가들을 만나 새로운 인연들에 적응하느라 우왕좌왕 하겠지.
그러다 가끔 출근길에서- 인근 중학교로 등교하는- 어색한 교복을 입고 슬리퍼를 직직 끌고 가는 너희와 반갑게 인사하는 날이 오겠구나.


연인과의 이별이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연락하고 안부묻고 집에 잘 들어갔냐고 묻고- 주말엔 데이트를 하고- 그런 어느정도 패턴화된 일상들을 갑자기 잃어버리게 되는 것.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얼굴들을 보던 그 일상도 이제 추억 언저리로 사라지게 되는 걸 받아들여야 할 거야. 또 그게 익숙해지고...새로운교실과 새로운아이들에 익숙해지고...
그 아이들과 새로운추억을 쌓아 또 1년 후엔 같은 이별을 맞이하고...
또 애써 마음 추스리며 보낼 준비를 해야겠지.

경력이 얼마쯤 쌓여야 이런 과정이 익숙해질 지 모르겠지만 나란 사람은 10년이 지나도 가슴 아플 것 같아.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 그리고 축하해. 앞으로도 행복하게 잘 꾸려가길 바란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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