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트인 [834163] · MS 2018 · 쪽지

2022-01-23 23:38:23
조회수 1,782

2021 히토츠바시대학 본고사 세계사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43363303

해당 문항들의 저작권은 히토츠바시대학에 있고, 

해당 해설들의 저작권은 요요기제미날에 있습니다.

문제원본: https://juken.hit-u.ac.jp/admission/info/ito_21.html

해설원본: https://sokuho.yozemi.ac.jp/sokuho/k_mondaitokaitou/9/gaihyou/1332123_5367.html

2번이나 3번이나 참 글이 어려워서 오역이 많을 것 같은... 히토츠바시대 세계사입니다 ㅠㅠ

1번 문제는 하기아 소피아 성당이 지닌 의미의 변화 과정

2번 문제는 괴테의 시대와 렘브란트의 시대의 비교

3번 문제는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과 4가지 근대화

가 주제였습니다

요제미는 2번 문제가 특히 어렵다고 평했네요


히토츠바시 대학의 출제 의도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1문

6~9세기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를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치세, 성상파괴운동과 그 영향을 중심으로 적절히 정리할 수 있는지, 또 비잔티움 제국, 오스만 제국, 터키 공화국으로 체제가 변화하면서 종교시설 및 문화재 건축이 갖는 의미가 변모했음을 이해하고 있는지 묻는다.


제2문

렘브란트(1606-1669년)를 중심으로 하는 17세기 네덜란드 문화와 괴테(1749-1832년)를 중심으로 하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독일 문화의 특성의 차이를 렘브란트와 괴테의 작품인 그림 사료 및 문헌 사료를 이용하여 해당 시대 양 지역의 사회적 문맥을 대비시켜 설명할 것이 요구된다.
포인트가 되는 것은, 다음의 2가지이다. 첫째, 사료 1의 렘브란트의 작품에서 시민층의 초상이 모티브가 되고 있는 것처럼 상공업 발전을 통해 유럽에서의 경제적 패권을 확립시킨 17세기 네덜란드에서의 부유한 시민층이 사회적 영향력을 증대시켰을 뿐만 아니라 문화면에서도 주요한 담당자가 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는지 묻는다. 둘째, 괴테의 자전적 작품인 사료 2에서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개된 합리적 이성을 중시하는 계몽사상에 대항하여 감정의 해방과 생명력의 발로를 중시한 문학사상 질풍노도(슈트름 운트 드랑) 운동의 특징을 파악한 후, 이 운동이 이후의 낭만주의에 어떻게 파생되어 갔는지를 신성로마제국 말기의 상황에 비추어 설명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덧붙여 본문은 1977년에 동양경제신보에서 출판된 무라마츠 고이치로(1898-1984년)의 저작 「경제와 문화」에 수록되어 있는 논고 「렘브란트 시대와 그 사회경제적 배경」(초출 1957년)에서 인용했다. 무라마츠는 히토츠바시대학 서양사학 연구의 기초를 닦은 미우라 신시치(1877-1947년)에 사사하여 도쿄상과대학 시절부터 오랫동안 본교에서 서양경제사를 연구해 온 역사가이다.  


제3문

문제는, 중국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이른바 개혁·개방 정책이 개시된 1980년 초두 전후의 중국 역사에 대해서, 시기별 정세를 근거로 하면서 적절히 이해하고 있는지를 물은 것이다. 관련 용어를 정확히 쓰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정합적으로 논술할 것을 요구했다. 논점은 다음과 같다. 전반엔 ①마오쩌둥 등 급진적 사회주의 추진파와 류샤오치 등 현실적 계획경제 추진파(실권파)와의 대립, ②마오쩌둥이 발동한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대중 동원이었던 것, ③동원의 목적이 실권파의 당 간부나 지식인의 타도였던 것, ④10년에 걸친 문화대혁명이 중국사회에 심각한 혼란을 가져왔는 것. 후반엔 ①'네 가지 현대화'가 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의 4분야라는 점, ②이것이 개혁과 개방노선이라고 총칭할 수 있는 정책이라는 점, ③급격한 경제개혁으로 지배체제에 대한 불만이 학생과 지식인 사이에 확산되었다는 점, ④그 결과 1989년의 천안문 사건으로 이어진 것이다.


요제미의 모범답안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1문

6세기, 지중해 제국의 부흥을 목표로 한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재건해 크리스트교 세계의 중심으로 삼았다. 8세기에는 크리스트교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황제 레온 3세가 성상 금지령을 내리는 등, 성상 파괴 운동이 벌어졌다. 그러나, 9세기 중반에는 운동이 부정되고, 모자이크의 명판이 설치되었다. 성상 파괴 운동의 영향으로 동서 교회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성당은 그리스 정교의 중심으로서의 의미를 지녔으나, 13세기 라틴 제국 성립 당시에는 일시적으로 가톨릭의 지배하에 놓였다. 그 후, 오스만 제국이 1453년 비잔티움 제국을 멸망시키자, 성당은 미나렛이 세워져 모스크가 되었고 정복의 상징이 되었다.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 터키 공화국이 성립되자 무스타파 케말에 의한 세속화정책의 일환으로 박물관으로 전환되어 세속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지난해, 모스크로 되돌아가 터키의 이슬람주의 세력 확대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제2문

「렘브란트 시대」의 17세기 네덜란드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전쟁을 거치며 칼뱅파가 사회의 핵심이 되어 종교적으로 관용적인 사회였다. 또한, 황폐화된 플랑드르를 대신해 상업의 중심지가 되며, 동인도회사가 광범위하게 활동하는 등 무역에 의한 패권국가가 되었다. 이렇게 상업이 발전하는 상황에서 시민사회가 성장하고 있었기에, 「렘브란트 시대」는 문화도 시민층의 요구에 부합하게 되었다. 「괴테 시대」인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의 독일에선, 상류층 사람들이 프랑스 문화를 보편적인 것으로 수용했으며 프랑스 혁명의 성과가 나폴레옹의 군사행동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프랑스 문화에 대한 반발도 낳아, 내셔널리즘을 자극했다. 괴테는 고전주의적 형식을 유지한 한편, 「질풍노도」의 문학운동으로 인간 감정의 자유로운 발로를 목표로 했다. 또한, 독일 고유의 문화를 중시하는 등, 낭만주의의 선구가 되어 「괴테 시대」는 그 변혁기가 되었다.


제3문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류사오치나 덩샤오핑은 시장 경제를 일부 도입했다. 1966년 시작된 「제1차 문화대혁명」에선 복귀를 꾀하는 마오쩌둥이 그들을 실권파라고 비난하고 홍위병들의 공격으로 실각시켰다. 문혁 중에는 투쟁으로 사회가 혼란하였다. 저우언라이는 경제 재건을 위해 덩샤오핑을 복권하고 「4가지 근대화 건설」을 주창하였다. 1976년에 저우언라이가 사망한 후, 제1차 천안문 사태가 일어나며 덩샤오핑은 재실각하였다. 같은 해에 마오쩌둥도 사망했고, 후계자인 화궈펑이 장칭 등 문혁 추진파 「4인방」을 체포해 문화대혁명을 종식시켰다. 덩샤오핑은 재복권하여 「4가지 근대화 건설」을 내세우면서 마오쩌둥 노선을 지킨 화궈펑을 물리치고 지도적 입장에 올랐다. 덩샤오핑은 「4가지 근대화 건설」을 바탕으로 개혁·개방책을 추진하였고, 인민공사 해체나 경제특구 설치 등을 실시해 경제의 자유화를 도모하였다. 이런 풍조는 민주화 요구 운동을 뒷받침하여, 제2차 천안문 사태가 일어났다. 덩샤오핑은 동정파 자오쯔양을 해임하고 탄압을 실시해, 공산당 독재체제를 견지했다.


글이... 좀 많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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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움쿠헨 · 879881 · 22/01/23 23:39 · MS 2019

    수고하셨습니다! 세계사시간에 수능공부했어서 아무것도 모름 ㅜㅜ
  • 레스트인 · 834163 · 22/01/23 23:48 · MS 2018

    그럴 수 있따
    아는게 있으면 모르는게 있기 마련이니까요
  • 한궈야옹이 · 994453 · 22/01/23 23:40 · MS 2020

    잇쿄대

  • 레스트인 · 834163 · 22/01/23 23:48 · MS 2018

    일교대학

  • oωo · 972735 · 22/01/23 23:40 · MS 2020

    이제 힛츠차례 응응
  • 레스트인 · 834163 · 22/01/23 23:49 · MS 2018

    세계사만 해본 응응

  • 소프레소르페 · 1098199 · 22/01/23 23:47 · MS 2021

    일교 다음에는 아마 공업 하시나요?

  • 레스트인 · 834163 · 22/01/23 23:50 · MS 2018

    동공은 수학 영어 물리 화학만 본고사를 봐서요
    물리랑 화학은 번역 시간은 긴데 범위가 너무 달라서 손도 못대시는 분들이 많아서..ㅠㅠ

  • No.99 Aaron Judge · 919199 · 22/01/24 11:02 · MS 2019

    첫번째 문재는 아마 성상파괴령으로 파괴되었던 이콘을 복구한건가보네요..? 이단에 의해 파거ㅣ되었던거를 복구팼다고 한 걸 보니까
    그게 이제 비잔티움 멸망하면서 오스만 제국 시기에 우상숭배를 엄금하는 제국에 의해 덮어졌던거일테고...

  • No.99 Aaron Judge · 919199 · 22/01/24 11:08 · MS 2019

    2번째 문제는 손도 못 대겟네요...문화적 전성기 시대인것같은데 둘다, 근데 렘브란트랑 괴테가 어느시기 사람인지 감도 안와요..ㅋㅋㅋ 렘브란트는 대강 알프스 이북 르네상스, 그러니까 16세기쯤?사람일 테고, 괴테는 언제사람일려나..17세기 사람인가...
    렘브란트는 네덜란드 출생이죠..그 시기 네덜란드는 무역과 플랑드르의 모직물 산업으로 흥성하고 있던 시기로 기억해요..물론 이후 크롬웰이 집권한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괴테..는 '제국'이라는 걸 볼때 신성로마제국 시기의 사람인것같고, 그러면 19세기 초 이전의 사람이네요
    아 ㅋㅋㅌ 대충 경제가 융성해지면 문화도 발전한다 이렇게 정리해볼수있겠지만, 으 ㄹㅇ 잘 모르겟네요 문화사 어렵당

  • No.99 Aaron Judge · 919199 · 22/01/24 11:13 · MS 2019

    오 이건 걍 틀렷네요
    엌ㅋㅋㅋㅋ 시대부터 잘못잡앗다

  • No.99 Aaron Judge · 919199 · 22/01/24 11:12 · MS 2019

    3번째 문제는 그나마 아는거네요 ㅋㅋㅋ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진행되었던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이 대약진 운동의 실패와 경제의 추락 이후 점점 실권을 잃어가자, 이를 되찾기 위해 벌였던 운동이죠..조반유리 등의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학생들을 홍위병으로 만들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숙청하면서 마오쩌둥이 다시 권력을 잡았던 시기로 알고 있어요
    마오쩌둥의 사망 이후 그의 후계자가 된 화궈펑이 문혁의 지속을 주장했지만( 그 역시 문혁의 피바람 속에서 출세했던 사람이엇기에) 덩샤오핑에게 파워게임에서 밀리고, 결국 덩샤오핑이 중국의 최고 권력자가 되죠
    덩샤오핑은 이후 흑묘백묘론과 4대 개혁노선을 주장하면서 중국의 개혁개방과 해안도시의 현대화, 중국의 부강을 목표로 했고 그걸 이뤄냈어요. 하지만 덩샤오핑의 개혁노선에 반대하고 민주화를 주장한 학생들을 천안문에서 무자비하게 진압하기도 했죠

  • 레스트인 · 834163 · 22/01/24 17:13 · MS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