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창욱★ [408254] · MS 2012 · 쪽지

2014-01-10 08: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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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얘기도 한번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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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3수능을 치고 재수해서 14수능을 본 94년생 이과 입니다.



현역때는 6평:221,  9평:131,  수능:331  을 받았고 수시에서  연고서성한 을 올킬당하는 바람에  재수를 하게되었습니다.



사실 정시를 넣긴했지만 그다지 마음이 가지않은 학교, 학과였습니다. (이대 , 중앙대 -혹시 재학생 분이 계시면 정말 죄송합니다.)



결과적으로 대학은 둘다 우선선발로 합격을 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마음이란게 참 간사하게도, 정시 합격을 하고나니 평소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학교였는데도 왠지 친숙해지고, 마음속으로 '그래도 중앙대, 이대 정도면 괜찮지...' 이런생각이 들더군요. 우습지만 그동안 흔한 문화생활 한번 못해보고 공부만했던 저였기에 한번쯤 대학 생활을 즐기고 싶었습니다.



 결국 철없게도 저는 어머니께 "중대라도 괜찮으니 재수만은 하기 싫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저희 어머니께서는 교육열이 굉장히 강한 분 이셨고,  저에게 "최소한 서성한 이라도 가야하지 않겠느냐. 내가 너 중앙대 보내려고 고등학교때 그렇게 공부시킨 거 아니다." 라며 끝내 재수를 권하셨습니다. 



 재수를 성공할 자신은 없었지만, 그렇게 저를 설득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죄송한 마음에 일단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강대에 등록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도 저는 겨울에했던 사랑니 발치 수술 때문에 부작용이 생겼고, 매일 항생제를 복용하고, 그 부작용으로 매일 설사를 하며 밤에는 고열에 시달리고 응급실까지 가는등 면역력이 매우 약해졌습니다.



 2월 초에 개강한 정규반이었지만 각종 질병에 시달리던 저는 이틀에 한번 꼴로 학원을 빠졌고, 공부또한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중 이상하게도 중앙대에서 계속 신입생 안내문자가 왔고, 선배에게서 OT에 참석하라는 전화까지 받았습니다. 그 전화를 받을 당시 아버지께서 옆에 계셔서, 왜 이런 전화가 왔는지 참 이상하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아버지는 그냥 무시하라고 선배들이 합격했으니까 그냥 전화한거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지만 당시 저는 대학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라 부모님 말을 철썩 같이 믿었죠ㅋㅋ)



그러나 중앙대에선 계속 신입생 안내문자가 왔고, 저는 이상해서 결국 중대입학처에 전화를 했습니다. 



"혹시 ×× 학과 ×××이 입학 등록이 되어있나요?"  



"네 등록금이 납부되어 있습니다"





".....!  그럼 혹시 누가 등록금을 내줬는지 명의 확인이 가능한가요?"



 "그건 은행쪽에서 알아보셔야 할것 같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도대체 누가 등록금을 내줬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등록금은 약 400만원 정도 였는데, 저희집은 넉넉한 형편이 아닌데다가 고3때 무리하게 학원을 다니는 바람에 재수학원 비용도 부담스러운 지경이었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등록금을 내셨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날 집에가서 부모님께 '어떤 사람이 내 등록금을 대신 내줬다.'라고 말씀드리자, 어머니께선 결국 '아빠 회사에서 빌린 돈으로 우리가 냈다. 너가 자꾸 아파서 재수에 실패하게 될까봐 한번 넣어본 거다. 등록금은 환불이 가능하니 걱정마라'고 말씀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말나온김에 학교에 신입생 평가 고사(placement test)가 있으니 한번 보러 가자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안간다고, 이제와서 뭐하는 짓이냐고 화를 내며 버텼지만, 어머니는 계속 가자고, 너 이렇게 아픈데 재수해서 중대도 못 가면 어쩔거냐고, 등록금은 환불가능하니 한번만 시험만 봐달라고 주장하셨고, 당시 몸살 감기 설사 종합세트로 아프던 저는 마음이 약해져서 환불한다는 말만 철썩 같이 믿고 결국 학교까지 가서 시험을 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얼마뒤 몸이 조금씩 나아져서 다시 학원에 자주 나가게 되었고, 3월 대성 모의에서 놀랍게도 학원 전체 30등을 했습니다. (시험이 쉬웠던 탓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도 당시의 일은 하늘이 도운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 일로 인해 저는 공부에 자신감을 얻었고,  어릴적부터 목표로 하던 경희대 한의예에 다시 도전 해보자. 라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부모님 께서도 그 성적을 보시고 기뻐하셨고 자연스럽게 중앙대는 제 머릿속에서 잊혀져 갔습니다.





그뒤로 30등까지는 아니었지만 제가 원하는 대학에 갈 충분한 성적은 계속 나왔고, 그뒤로 저는 현역때 저보다 대학 잘간 아이들을 생각하며 이를갈고 돌부처처럼 공부했습니다. 



 여름에는 학원에서 집으로 오가는 시간이 아까워 노량진쪽으로 학원을 옮겼습니다. 하지만 그 학원은 강대보다 분위기가 좋지않았고, 이미 패거리가 형성되어 편입생인 저를 견제하는 분위기 였습니다. 심할때는 제가 수능완성 한시간에 몇 문제 푸는지, 점심시간, 저녁시간에 밥은 먹으러가는지, 심지어는 같은반 애들한테 "저 여자애 존× 징그럽게, 토나오게 공부해." 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당시 제가 좀 공부를 열심히 하기는 했죠.. 밥먹는것도 아까워서 10분을 안넘기게 시간을 쟀고 10분 넘기면 아무리 맛있는 반찬이라도 다 갖다 버렸습니다. 화장실 갔다오는 시간도 쟀습니다. 2분30초.. 매일 매일이 저 스스로 만든 공부 지옥의 연속이었습니다. 결국 걔네는 저보다 안좋은 대학에 갔더군요....) 지속되는 거의 왕따시키는 수준의 견제때문에 저는 학원을 다시 옮겼습니다. 



 그후 9평을 보았고, 너무 쉬워서 인지 성적이 좀 떨어졌습니다. 채점을 하고 그날밤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이따위 성적을 받으려고 공부한게 아니다. 너무 억울해서 살 수없다. 최소한 ××들 보다는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 이런 질낮은 마음 가짐이 의외로 저에게 의지를 주더군요. 다시 스스로 공부지옥을 만들었습니다. 이번 수능에선 영어가 큰 변별력을 가질것 이라고 생각하고 쉬는 시간에는 계속 ebs만 풀었습니다.



10월에는 마무리를 하기위해 독재를 했습니다. 학원에서 나오니 저는 다시 해이해졌고, 10월 교육청 모의에서 수학 81점 이라는 충격적인 점수를 받았습니다. 이대로는 작년과 같아진다 라는 생각에 아찔해져서 세번째로 또다시 스스로 압박하는 공부지옥을 만들었습니다. 매일 아침8시부터 밤12시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낮잠은 정말 한순간도 자지 않았습니다.  화장실은 정해진 시간에만 갔습니다.



그리고 수능 전날, 너무 긴장해서 편두통이 심해졌고, 설상가상으로 생리까지 터졌습니다. 결국 저녁에 급하게 병원에가서 두통약을 먹었고 그럭저럭 잠이 들었습니다. 





  수능 당일..



국어: 별 생각 없이 풀었 습니다. CD문제가 조금 어렵더군요. 마지막까지 생각이 안나서 대충 대입법으로 기계적으로 풀었습니다.



수학: 10월 모의의 충격때문에 약간 마음을 비우고 풀었습니다. 정확히 29,30만 빼고 다 풀었습니다. 그 두문제를 버린 덕분에 10번의 방부등식 계산실수를 발견할수 있었습니다.



영어: 5번 정독한 ebs를 믿고 풀었습니다. 시험 시작종이 4분 늦게 쳤습니다. 헷갈리는 문제가 2문제  있었는데 육감을 믿고 풀었습니다. 나중에 추가시간을 주긴 했지만 딱히 필요는 없었습니다.





화학1: ...... 난생 처음으로 멘붕을 겪었습니다. 정말 그동안 푼 어떤 시험도 이처럼 어렵지 않았는데... 계산은 꼬이고, 문제도 거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맨 뒷장은 정말. 풀수 있는게 거의 없더군요..  결국 5문제 찍었습니다.



생명과학1: 제일 자신있고, 50점을 밥먹듯이 맞은 과목이었지만 화학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로 풀었습니다. 8번쯤인가 유전에서 다시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떠오르는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대로는 난 삼수한다. 그것만은 막아야해.' 이생각으로 정신을 잡고 건너뛰고 쉬운 것부터 풀었습니다. 다행히 감이 다시 살아나 15분 정도 남기고 다 풀었습니다.  당시 '남은시간에 화학문제를 풀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던 기억이 나네요.





수능을 마치고 채점을 하는데 과학 답이 늦게떠서 궁금해 미치는줄 알았습니다. 화학 때문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습니다.

채점결과는

97 92 100  38  50



오르비에서 쪽팔린 점수지만 저에겐 그 무엇보다도 값진 결과였습니다. 한심하지만 20년 인생에서 제가 해낸것 중에 제일 가치있는 일이었습니다.



한동안 원서영역으로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어릴적부터 경희한의예를 간절히 원했지만 막상 힘들게 재수를 하니, 더 안정적인 의사에 더 마음이 갔습니다. 그래도 결국 넣었고 현재 우선선발로 합격한 상태입니다.



 영어쌤께서는 저보고 작년 언수외 331주제에 인생 역전 했다고, 니가 승리자라고 하십니다. 저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정말 놀랍고 감사할 뿐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께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 넌 지금 서류상으로 중앙대 ××과 학생이다. 내가 혹시나 너 수능 못 볼까봐 걱정되서 등록했었어."



"네? 등록금 환불했다면서요?"



" 등록금을 어떻게 환불하니?ㅋㅋ 시험까지 봤는데."



"....! 그럼 수강신청 같은건 누가 했는데요?"



"누가 하긴, 니 아버지랑 나랑 둘이 했다."



" 시험 성적은요? 저 시험도 안보고 출석 하나도 안했잖아요?"



"올F학점에 학사경고 받았지뭐..."





......그렇습니다. 어머니께선 끝까지 저에게 아무 말씀 안하시고, 심지어 수강신청까지 두분이서 저 몰래 하셨더군요. 저는 아직도 중앙대 ××과 학생입니다.





어머니께 물어봤습니다. 왜 끝까지 저에게 사실을 숨기셨냐고.



제가 마음이 약해질까봐, 처음에 중대라도 가겠다고 고집부리던 제 모습이 생각나서 그랬다고. 하시더군요.



저로인해 누군가는 중대에 떨어졌겠죠. 정말 미안합니다. 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원망하지는 말아주세요.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자식을 위해서 400만원을 버리는일.. 부모님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 이었을 겁니다.

저는 그저 한없이 죄송하고 죄송할 뿐입니다.









아침부터  부담스러운 긴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냥 지금 이 얘기 안하면 평생 후회할것 같아서 이렇게 쓰게 되었네요.





 뜬금없지만 모두들 좋은 한해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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