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서울과학기술대학생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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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지원이다 뭐다, 취업이 어떻다, 서울지역 초등교사 임용 티오가 개판이다, 시끌벅적한 때에 문득 옛 생각이 나서 씁니다. 어느 빙충뱅이의 단상이니 그냥 참고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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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해는 15학번입니다. 아해가 중학교 3학년일 때, 같은 반 동급생 하나(이하 ‘A군’)가 있었습니다. A군의 가정은 그리 유복하지는 않았습니다. 20평 될까 말까 한 경기도 어느 중소도시 아파트.
우리가 살던 곳은 고교 비평준화가 유지되고 있었는데, A군은 그 지역에서 가장 좋은 고등학교를 갔습니다. 외고나 특목고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지역에서는 알아주는 학교였지요.
당시는 국회의원들이 의정 활동의 하나로, 수능 평균 2등급 이상 받는 학생들의 비율을 학교별로 공개했습니다. A군이 진학한 학교에서 수능 평균 2등급 이상 받는 학생은 13% 정도였습니다. 강남 서초 양천 등을 제외한 서울 여타 지역의 평균(수능 평균 2등급 이상 비율)이 4% 대였고요.
A 군의 고교 성적표를 보지는 못했지만, 내신을 아주 잘 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긴 사교육 받을 돈도 없어서 인강으로 공부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묵묵히 성실하게 공부하는 것 같다고 제 아해는 말하더군요.
그리고 치른 15학년도 수능.(참고로, 제 아해는 고교 1년 2학기 때 중퇴한 뒤 검정고시를 쳤습니다. 서울 목동에서 대입학원을 다니면서요. 내신이 워낙 ‘훌륭해서’ 수시로는 답이 없었기에, 제가 그렇게 권했습니다. 아비 덕분에 아해는 ‘대입에 실패하면 나는 중졸로 끝난다’는 공포에 시달렸지요. 돌이켜 보면 참 나쁜 아비입니다.)
수능을 마치고 만났더니 A군이 수능 점수를 묻더랍니다.
아해는 아무 생각 없이 자기 점수를 말해주었는데, A 군은 그저 듣고만 있었다고 합니다. 2014년 겨울 당시에도 만 19세 미만에게는 소주 판매가 금지돼 있었지만, 해당 소도시에는 그런 게 희박했나 봅니다. 소주 한 잔 들이키면서 제 아해가 말했다지요.
“A야, 내가 만약 너보다 수능 점수가 높다면 그건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내가 사교육의 혜택을 너보다 훨씬 더 받아서일 거야. 너는 그 자체로 훌륭해.”
A군은 그 해에 수시로 국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MSDE(미케니컬 시스템 디자인 공학)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서울과기대에서 ‘밀어주는’ 학과라고 들었습니다.
서울의 어느 지역교대(!)에 입학한 제 아해는 종종 A군을 만난다고 했습니다. 여전히 성실하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2년인가 재학 뒤 A군은 군대를 갔고, 아해는 2018년부터 임용 시험으로 정신이 없어서인지 A군 소식을 전해주지 못하더군요.
그러던 2021년 봄, 아해가 소식 하나를 들려주었습니다.
“아부지, A 알지? 최근 삼성전자에 입사했대. 곧 동탄으로 이사한대. 만나기로 했어.”
그리고 며칠 뒤, 아해는 소주 한 잔 걸치고 들어와서 말하더군요.
“아부지, A랑 오늘 술 한 잔 했어. 그 친구가 한우에 술 한 잔 거하게 샀다. 성과급과 초과 수당 등 이것저것 합치면 연봉이 8000만 원은 된대.(미필에, 학급 담임을 맡은 초임 초등교사 연봉은 이것저것 합치면 4000만 원이 약간 안 됩니다.) 역시 성실한 애라서 성공하는 것 같아. 부모 님도 무척 좋아하신대. 나도 정말로 기쁘더라.”
저 역시, 자연스레 미소가 흘렀습니다. 그래, 이래야 살 맛 나는 세상인 것이지.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A군이지만, 저는 A군의 삶이 항상 평안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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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군과 아해가 술 한 잔 나누고 돌아온 그 날, 아해와 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인문대학이나 사회대학의 취업에 대해, 집값 걱정하는 젊은 세대의 고민에 대해. 현재 20대의 결혼과 육아에 대해.
만약 A군이 해당 성적으로 문과를 갔다면 어떠했을까요? 물론 A군은 성실하니까 공무원이든 공기업 시험이든 붙었을 거라는 생각은 합니다만...
요즘 존경하던 옛 동료의 자제 분 입시 때문에 오르비와 모의지원 판을 자주 기웃거립니다. 오늘(12월 13일) 이른 오후에, 어느 회원 님이 올리신 “그리도 문과를 무시하더니 대학 급간 올리려고 문과를 침공하는 이과생들, 비겁하다”는 내용의 글을 읽었습니다.(지금은 삭제됐습니다.)
그 글과, 거기에 달린 댓글을 읽으면서 ‘요지경’이라는 생각만 들더군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슬펐습니다.
수학 좀 잘 하지 그랬어.
너도 미적 과탐해...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이기에 10대 후반의 학생끼리 이리 치고 받아야 하는 것인지.
그냥 술 한 잔 생각만 나더군요. 갑자기 A군 생각도 났고요.
지금도 술 한 잔 집에서 혼자 홀짝거리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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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나름대로 인생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거 같은데 태생부터 잘못태어난건 구제하기 힘든가보다
슬픈 현실입니다. 작금의 상황이 갈수록 서로간의 갈등만을 부추기고 치열한 현실에서 경쟁만 가득한 세상이 되어가는게 정말 슬픕니다.
기성세대로서, 그저 유구무언입니다.
이 모든 것도 어쩌면 베이비 붐 세대가 은퇴하고.. 물론 정년은 늦어지고 있지만 은퇴할 것으로 예상되는 10년 내에는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거라고 낙관적인 생각은 해봅니다. 다만 현재의 박살난 실업률과 성별갈등, 그리고 출산율이 크게 변동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잘 아시듯, 일본은 지금 젊은 세대 기준으로 '완전고용' 상태라고 하지요. 예비 한의사 선생님의 지적대로요. 저도 빨리 그나마 숨통이라도 트였으면 합니다.
언제나 좋은 칼럼 감사합니다. 사회 선배분들의 좋은 글들 덕분에 시야가 조금이나마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에이. 제 글이 무슨... 그저 미래 세대들에게 '선배 세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발전해 나아가기를 바라면서' 글을 씁니다. 저희 세대의 단점을 제발 딛고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진심입니다. 항상 평안하시고, 좋은 한의사 선생님이 되시기를 빕니다.
등단하십쇼
허걱... 감사합니다. 항상 평안하시고 건승하소서.
선생님 내용과는 별개로 글을 정말 잘 쓰시는 것 같습니다 또 내용 역시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네요
선생님과 자제분, 그리고 지인들의 안녕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글은 못 쓰지만, 그냥 답답해서 썼습니다. 귀하께서도 항상 평안하소서.
8000 정도 받으면 세금이 37프로네요 아무리 ds 반도체총괄로 들어가도 신입이 성과급 포함 8000은 힘들고요 연차가 올라갈수록 연구개발쪽(이과계열) 학력과 학위취득 여부가 영향을 미쳐요
님과같은 앞에 8단 학번 세대들은 삼전에 거의 남아있지도 않고 자식을 공대보단 교대에 보내려고하죠
실제로 스카이 석사마치고 들어와서 30대초반 퇴사하고 교대 진학한 분도 많았어요
걍 자식문제로 답답하신가본데 공대도 요샌 장밋빛만은 아닙니다 ot 많이하면 경고장도 날아오고 시간당 오티수당이 최저시급이랑 비슷해요 ㅎㅎ
삼전 초임 연봉이 8000 만원 받는 게 사실인지 여부는 사실 제가 검증 못합니다. 다만 그 친구가 평소 바른 행실을 했기에 믿는 것이죠. 지금도 님보다는 그 친구 이야기를 믿습니다. 삼전 다니는 사람이 그리 말하는데 안 믿을 이유가 있으려고요.
"자식 문제로 답답하신가 본데"라 하셨는데, 답답함 느끼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나 아해 모두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으니까요.
이 글을 쓴 이유는 교차 지원이다 뭐다 해서 문이과 학생들이 '약간의 다툼 양상'을 보이고, 게다가 서울 초등 임용이 힘들다는 얘기를 오르비언들과 이전 게시글로 나누던 중 아해 친구 얘기가 생각나서 썼을 뿐입니다.
얼마나 나이가 드셨고, 또 얼마나 똑똑하신지는 제가 알 바 아니나 '상대의 글을 쉽게 재단하는 태도'는 그리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본인의 믿음이 틀릴수 있고 본인이 한 가정을 토대로 글을 써나가시기에 적어봤습니다 풍자하는듯한 님 글도 오류와 편견으로부터 시작된것 같아 그리 좋아보이지 않아 몇자 적어봤네요
해당 회사에 이십년 이상 연구직으로 몸담았고 님이 말한 가정이 틀렸음을 알려드리고 싶었을뿐입니다 :)
무슨 말인가요? 삼전 직원이 한 말을 옮긴 것을 '가정'이라니요? 님은 '가정'이 무슨 뜻인지 모르시나요?
또한 '풍자하는 듯한 님 글도 오류와 편견으로 시작된 것 같아'라고 하셨는데 뭐가 풍자였나요? 제가 풍자(satire)의 뜻을 제대로 모르는 건가요? 아니면 님이 풍자의 뜻을 제대로 모르는 건가요? 이 글에서 도대체 어떤 문장이 풍자인가요? 퓽자가 satire의 번역어인 건 아실 터이니, 영어사전에서 satire의 뜻부터 알고 오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도대체 어떤 제 문장이 오류와 편견인가요? 적시하시죠?
님은 문장 중 제 가정이 틀렸다고 했으니 어떤 게 틀렸는지 적시하세요. '적시'가 뭔 뜻인지 아시죠?
저는 삼전 직원의 말을 문장에서 옮겼습니다. '전언'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더블 쿼트 표시까지 했고요. 전언은 진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문기사에서 어떤 이의 말을 더블 쿼트로 표시하면, 그것은 그 사람의 주장이라는 뜻이지요. 그 말 자체가 사실인지 여부는 다시금 따져봐야 하는 것이고요. 한데 님은 그 전언이 잘못된 것이라고 했으니 님이 그 말의 진위 여부를 증명하면 됩니다. 그렇죠?
그러니 저에게 오류네 편견이네 말하지 마시고, 증명을 하세요. 배울 만큼 배운 분이 증명할 생각은 않고, 편견이네 오류네 이야기하는 게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라고 보입니까?
삼전에서 귀하가 20년 이상 몸 담았다는 사실이, 2020년에 삼전에 들어간 직원이 온갖 수당과 성과급을 합쳐 연봉 8000만을 받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반대 증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귀하는 귀하 회사의 특정 부서(귀하가 일하지 않는 부서) 초임 최종 연봉을 다 아시나요? 귀하가 그 회사의 임금 업무를 총괄 담당했다면 모를까, 연구직이 무슨 재주로 귀하가 다니는 부서도 아닌 신입사원의 성과급까지 속속들이 아나요?
다시 말합니다.
귀하는 저에게 '자식 문제로 답답하신가본데'라고 하셨죠? 해서 저는 귀하에게 상대의 글을 쉽게 재단하지 말라고 했죠? 한데 귀하는 여전히 저에게 풍자니 오류니 편견이니 들먹이며 제 글이 잘못됐다고 이여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말씀 드립니다.
제 글에서 어떤 오류와 편견 그리고 잘못된 편견이 있었나요? 삼전 직원의 말은 '절대적 진실'에 대한 자적이 아니라, 더블 쿼트를 통한 전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글 어떤 부분에서 자식 문제에 대한 답답함이 있었나요? 적시하세요!
삼전에서 귀하가 20년 이상 몸 담았다는 사실이, 2020년에 삼전에 들어간 직원이 온갖 수당과 성과급을 합쳐 연봉 8000만을 받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반대 증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귀하는 귀하 회사의 특정 부서(귀하가 일하지 않은 부서) 초임 최종 연봉을 다 아시나요? 귀하가 그 회사의 임금 업무를 총괄 담당했다면 모를까, 연구직이 무슨 재주로 귀하가 근무하지도 않았던 부서 신입사원의 성과급과 수당을 포함한 1년 총 벌이를 압니까?
삼전 연구직으로 20년 이상 몸 담았다 하셨죠?
저는 관악산 아래 있는 '그리 나쁘지는 않은' 대학을 나와, 광화문에 있는 어느 일간지 기자를 20년 했으며, 북악 아래에 있는 어느 국가 조직에서 글 쓰는 일을 했던 사람입니다. 제 이전 글을 보시면 제 이름도 알 수 있고 네이버에 인명 검색 정도는 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님보다 똑똑하지는 못해도 님보다 그리 떨어지는 사람도 아닐 겁니다. 그러니 "내가 이런 사람이기에 이 정도는 안다"는 식의 말보다는, 내 말이 이래서 옳다고 증명하셨으면 합니다.
답 기다립니다.
글이 1000자가 넘다보니 한 번에 오르지 못해 두 개로 나눠 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눠 실은 댓글 중 첫 번째 것에서 종종 보이는 오타는 수정을 못 하네요. 댓글이 달리면 '수정 불가'가 되는 게 오르비의 특징이니...
독해를 방해하는 오타는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